5. 홍계관의 예언
방안에서 잠시 자신의 신수를 점쳐보던 홍계관은 얼굴빛이 어두었다.
‘어허, 이런 억울한 일이....!’
한숨을 쉬던 홍계관은 또 한 번 신중하게 점을 쳤다.
‘옳거니, 나를 살려줄 사람은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구나!’
홍계관은 사람의 앞날을 예측하는 신통한 능력으로 종종 사람의 화를 면하게 해주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날은 홍계관 스스로 자신의 신수를 점쳐 보았는데 훗날 자신이 사형당할 운세라는 점괘가 나왔던 것이다.
‘황씨 중에 형조판서에 오를 만한 인물을 찾아봐야겠구나.’
홍계관은 다음날부터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다녔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황씨들 중에는 형조판서에 오를 만한 인물이 없어 매번 실망에 실망만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희 정승에게 아들이 여럿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홍계관은 그 길로 황정승 댁을 찾아갔다.
홍계관은 황정승을 찾아뵙고 아드님들의 신수를 봐주러 왔노라 공손하게 아뢰었다.
홍계관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황 정승은 곧 아들들을 불러모았다.
황정승은 큰아들부터 차례로 신수를 살피던 홍계관은 셋째 아들 황수신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홍계관은 황수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하며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께서는 앞으로 형조판서의 자리에 오르시게 될 것이옵니다. 그런데 그때 분명 소인이 사형당할 처지에 놓여 도련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오니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살려 주시겠다는 각서를 한 장만 써주십시오.”
황수신과 다른 형제들은 홍계관의 엉뚱한 말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가 이 나라 제일가는 명복이라 들었거늘 그것이 헛소리인가 보이, 우리들 중 그 누가 벼슬을 한단 말인가?”
“아니옵니다. 분명 벼슬기에 나가실 것이옵니다. 하오니 소인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홍계관은 형제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서를 써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황수신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홍계관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황 정승이 아들을 꾸짖었다.
“홍계관의 점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놓고 그리 간청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냉정하게 대한단 말이냐! 그것이 선비의 도리란 말이냐?”
이리하여 홍계관은 황 정승의 도움으로 황수신에게 각서 한 장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 세월이 흐른 후 홍계관의 소문은 대궐까지 알려졌고, 마침내 세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세조는 원래 미신을 믿지 않을뿐더러 무당이나 점쟁이를 흑세무민하는 자들이라 하여 경계했다.
그런 세조에게 홍계관의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세조는 마침내 홍계관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임금 앞에 끌려온 홍계관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래, 네가 점을 잘 친다는 홍계관이냐?”
세조가 근엄하게 물었다.
“소인의 점이 잘 맞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이름이 홍계관인 것은 맞사옵니다.”
홍계관은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세조는 내관들에게 미리 준비해 둔 헝겊 주머니를 가져와 홍계관 앞에 내놓으라고 명했다.
“그렇다면 이 주머니에 무엇이 몇 개나 들어 있는지 맞춰보아라.”
“......”
홍계관은 잠시 중얼거리더니 아뢰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며 때때로 도둑질을 하고,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구멍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쥐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수는 셋이옵니다.”
홍계관이 쥐라는 것을 맞추자 세조는 내심 놀랐으나 그 수가 틀리자 홍계관을 다그쳤다.
“분명, 이 속에 쥐가 세 마리 있단 말이냐? 만일 틀릴 경우 네 목숨이 온전치 못할 것이니라!”
“소인의 말이 맞지 않다면 전하께 거짓을 아뢴 죄로 어찌 목숨이 아깝다 하겠사오니까?”
홍계관이 자신있게 말하자 세조는 내관에게 헝겊 주머니를 열게 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는 쥐가 한 마리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이런 사악한 놈 같으니! 네놈이 무슨 명복이라고 백성들을 현혹 시키고 과인을 속인단 말이냐! 당장 능지처참하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로다!”
세조는 홍계관을 형조로 즉시 넘겨 참형을 처하라고 명했다. 홍계관은 졸지에 죽은 목숨이 되었다.
옥에 갇힌 홍계관은 조용히 자신의 앞날을 점쳐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형조판서가 홍계관을 문초하기 위해 왔다.
홍계관은 주머니 속에 고히 간직해 온 각서 한 장을 꺼냈다.
“나리, 전날 약조를 기억하시겠는지요?”
형조판서는 느닷없는 각서에 의아했으나 곧 그것이 지난날 자신이 홍계관에게 써준 것임을 기억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홍계관을 문초하러 온 형조판서는 다름 아닌 황수신이었던 것이다.
“허허, 과연 놀랍기는 하오만 오늘은 분명 홍계관의 점괘가 틀리지 않았소?”
“전하, 혻 쥐가 암컷일지 모르니 뱃속을 확인하여 보옵소서.”
황수신의 말에 세조 또한 일리가 있다고 여겨 내관에게 쥐의 배를 갈라보라고 명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쥐의 뱃속에는 새끼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세조는 홍계관의 점괘에 감탄하여 즉시 그를 방면하였고, 자신의 과오를 막아 준 황수신을 신임하여 더 높은 벼슬을 제수했다.
이렇듯 홍계관의 점괘는 정확하기로 유명하였으나 틀리는 점괘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의 수명이었다.
하루는 상진 상 정승이 홍계관을 찾아와 물었다.
“지난날 자네가 내 수명을 말해 주기를 모년 모월이라 하지 않았는가? 헌데 그날이 한참 지나도록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자네 점이 틀리지 않았는가?”
“나리, 인명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옵니다. 혹 나리께서 덕을 베푸신 일은 없으신지요?”
홍계관이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내가 무슨 덕을... 지난날 길을 가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금잔을 주워서 주인을 찾아준 적이 있었지.
그 주인 말이 자신은 대전수라간별감(大殿水刺間別監)인데 자식의 혼사가 있어 어배(御盃) 한쌍을 몰래 갖다 쓰고는 돌려놓으러 가던 중 잃어버려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이라 하면서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감사하다고 한 적이 있었지.”
“나리,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신 일이니 그 정도면 충분히 수명을 연장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