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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1: 21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벧전 1: 25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 21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중에서 살리셔서 부활의 영광을 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두어야 한다.
1] 너희는 ...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에이스 데온)은 문자적으로 '하나님 안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
* 요 1: 18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켰기 때문이다(Blum, Kelly).
* 고후 5: 19 -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베드로는 본 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를 이룬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로 진술한다.
(1)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분이시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Stibbs,Blum).
(2)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에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Stibbs).
* 롬 8: 17-30 - ⑰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⑱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⑲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⑳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히 2: 10 -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2]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호스테 텐 피스틴 휘몬카이 엘피다 에이나이 에이스 데온)
본문을 헬라어 구문상으로 해석할 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본문을 '의도문'으로 본다(Robertson).
이유는 본 절이 직설법로 쓰였기 때문이다. 비록 '호스테' 다음에 부정사가 따르면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지라도 문장 전체가 명령법이 아니고 직설법일 때는 '의도'로 해석한다는 주장이다.
Ⓑ 본문을 '결과문'으로 본다(Robertson).
그 이유는 헬라어에서 '호스테' 다음의 부정사가 따르면 일반적으로 '결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비록 서술적 용법일 때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라도 그것은 문법적 규칙이 아니기에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문맥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로 그리스도인들을 안위하기 위함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Michaels).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믿음과 소망'에 대한 견해도 두 가지이다.
Ⓐ '믿음'에 '소망'이 종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Moffatt).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믿음'에는 정관사가 있지만 '소망'에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러므로 너희 믿음이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게 한다'(Kuhl)라고 해석해야 한다.
Ⓑ '믿음과 소망'은 병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Bigg).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실의 두 가지 의미를 반복적으로 기술하여 강조적 효과를 나타내며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서 배경적 설명을(3-9절) 해왔기 때문이다(Michaels, Selwyn).
벧전 1: 22 진리를 순종함으로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진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깨끗케 되었고 우리의 마음도 깨끗케 되어 거짓이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성도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다.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된 새 계명을 주셨다. 이미 실천하고 있는 대로,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1]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깨끗하게 하여'(헤그니코테스)는 완료 시상으로 회개로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낸다(Michaels).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이러한 정결(淨潔)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Selwyn).
(1)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의 화육,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본 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이렇게 진리를 통해 죄로 부터 온전히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형제애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깨끗하게 하여'와 관련된 의식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깨끗하게 하여'가 구약 시대의 정결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Bigg)
Ⓑ '깨끗하게 하여'가 세례를 암시한다(Blum).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비록 '세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시상으로 과거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2]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라'(아가페사테)는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시상은 과거의 행위와 뚜렷한 차이를 나타냄과 동시에 행위의 시작을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反目)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 요일 3: 14-18 - ⑭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⑮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⑯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⑰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⑱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벧전 1: 23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우리가 얻은 거듭남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되었다. 그 구원의 생명은 실제로 거룩한 순종과 뜨거운 사랑으로 계속 나타난다.
1] 너희가 거듭난 것은 ...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난'(아나게겐네메노이)는 완료 분사로 앞 절의 '깨끗하게 하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회심된 상태를 시사한다.
'씨'(스포라스)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Michaels, selwyn).
Ⓑ '말씀'을 가리킨다(Blum,Cranfield, stibbs).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중 다른 곳에서도 '씨'는 '말씀'에 비유되고 있다.
* 막 4; 14 -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 눅 8: 11 -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문맥상 이어지는 설명에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진술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Stibbs).
* 시 33: 9 -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 사 55: 10-11 - ⑩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⑪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 히 4: 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2]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썩지 아니할 씨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다. 그 말씀이 사람들의 영혼에 심겨질 때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듭나는 영적 출생, 곧 중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썩어질 씨는 육적 출생에 의한 비유이다. 모태에서 태어나는 육신들은 잠시 후면 썩어 흙으로 돌아 갈 운명인 것이다.
벧전 1: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모든 육체는 풀같이 쇠하고 그 모든 영광은 꽃같이 다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삶이다.
이것이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세상에 나서 일생을 사는 모든 사람들, 즉 모든 죄인들의 공통적인 삶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결과로 이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허무한 삶인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전도서가 강조하여 교훈한 바이며 모든 사람이 일생을 마칠 때 즈음에 절감하는 일이다.
1]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본 절은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인 사 40: 6-8의 인용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 본문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에게(1절) 위로될 뿐만 아니라(Blum) 모든 육체의 영광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하며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다(Selwyn, Stibbs, Blum).
벧전 1: 25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또한 그의 말씀은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새 생명도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은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깨끗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1]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본 절은 사 40: 8(LXX)의 인용이다. 여기서 '주의 말씀'(토 레마 퀴리우)이나 70인 역에는 '토 레마 투 데우'(하나님의 말씀)로 되어있다. 인용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 베드로 자신의 의도적인 해석 때문이다(Kelly).
Ⓑ 사본상의 변화를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Hort).
Ⓒ 베드로가 신약 성경의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인용했기 때문이다(Michaels).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토레마 퀴리우'에 나타난 속격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주격적인 속격'으로 예수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이다(Michaels).
* 막 13: 31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눅 21: 33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하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께서 전한 말씀인 복음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됨을 진술하고 있다(Selwyn).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죄인이었던 우리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
이 말씀을 우리가 받았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는 복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자.
둘째, 다시 오실 예수를 소망하자.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 때 받을 은혜 곧 영광스런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온전히, 간절히 소망하면서 늘 깨어 있는 생활을 하자.
셋째, 성도는 말씀에 항상 순종하자.
순종하는 자식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자.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조상 때로부터 물려받은 헛된 행실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이 씻음 받자. 왜냐하면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넷째, 성도는 서로 사랑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 영혼의 깨끗함을 얻었으므로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