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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3: 12 사랑 받는 자처럼 ( 상 )
3. 성도의 생활원칙 ( 3: 12 - 17 )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 12 사랑 받는 자처럼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이 말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사람"을 입었으니, 마땅히 이행해야 할 바가 있다는 결론을 소개하는 말이다.
1] 그러므로 ··· 옷 입고
옷 입고의 헬라어 ‘엔뒤사스데’(*)는 부정 과거 명령법으로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의 덕목들을 지속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Vaughan, Lenski).
2]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이 문구는 원문대로 직역하면, "택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하심을 입는 자들"이다. 이들은 물론 그리스도의 성도들이니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었다.
그 택하심을 입은 결과로
(1) 그들은 거룩하게 되었다.
(2)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영원히 입는 것이다.
성도는 자기도 남과 다름없이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감격함에 넘쳐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봉사하려는 동기를 품는다.
그러므로 자기가 남달리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는 것을 바로 인식하는 성도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방심하지 않고 도리어 열심을 품어 선을 행한다.
자기도 성도(聖徒)임을 알고서야 어떻게 불의를 행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계속적으로 받는 부요(富饒)한 자임을 알고서야 어떻게 이 세상 것들 때문에 남과 다툴 수 있으랴?
'하나님의 택하신 자'와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는 동격이다(Lohse).
하나님의 택하신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 롬 16: 13 -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 고전 1: 26-27 -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벧전 1: 1-2 -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을 지칭한다.(O' Brien, Lohse)
* 시 33: 12 -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는 택하신 자를 설명하는 어구이다. 복음서에서 이 호칭은 예수께 사용되고 있다. 예수는 '거룩한 분'으로 불리며
* 막 12: 24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 눅 4: 34 -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 요 6: 69 -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의 메시야적 칭호로 '사랑하는'이 사용되고 있다.
* 마 12: 18 -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 마 17: 5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처럼'의 헬라 원어는 '로서'라고 개역되어 '사실 그대로'라는 의미를 나타내야 된다. 즉,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
3]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 긍휼
긍휼이란 말은 직역하면, "긍휼의 감정"이니 인격의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불쌍히 여기는 열정을 말한다.
영적으로 부요한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의 가련한 정형(情形)을 살피는 데 민감하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플랑크나', '오이크티르무'(*)이다.
'오이크티르무'는 70인 역(LXX)에서 하나님이 '가엽게 여기는 자'로 묘사되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연민'을 나타낸다.
* 롬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고후 1: 3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스플랑크나'는 문자적으로 '감정의 자리 즉 '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 두 단어의 합성어인 '스플랑크나오이그티르무'는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나타내는 사랑으로 '동정어린 마음' 혹은 '자비로운 마음'을 의미한다.
(2) 자비
자비란 말은 성격의 인자함을 의미하는 바, 엄위(嚴威)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 롬 11: 22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런 성격은 위에서 말한 긍휼을 근원으로 하여 대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이는 '친절', '상냥'을 의미한다. 이것은 70인 역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 백성에게 보여준 친절함을 나타낸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가리킨다.
* 롬 2: 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 롬 11: 24 -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 엡 2: 7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 딛 3: 4 -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새 사람을 옷 입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인자하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타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친절함을 보여야 한다(Carson).
(3) 겸손
겸손은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 빌 2: 3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면,
(1)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며,
(2) 높고 낮은 것을 판결하시는 때는 현재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남보다 우수한 줄로 자인(自認)하고 머리부터 상석(上席)을 택하는 것은 너무도 외람된 일이다.
눅 14: 8-10의 비유에서 보여주는 대로, 현세에 있는 교회의 복음 전파는 사람들을 연회에 초청함과 같다.
* 눅 14: 8-10 -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이 교회 생활(연석을 차지하는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면, 그것은 연회에 초청된 객으로서 연주(演奏)인 하나님의 하실 일을 월권하는 무례한 행동이다.
차라리 말석(末席)을 차지하는 것이 예법에 정당하다.
본서 내에서 '겸손'은 두 번 나타난다(2: 18, 23). 2장에 언급된 '겸손'은 골로새에 있던 거짓 교사들이 범한 금욕주의적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본 절에서 언급된 '겸손'은 새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이며, 타인들을 섬기는 자세이다.
* 행 20: 19 -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 엡 4: 2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빌 2: 3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벧전 5: 5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4) 온유
이것은 겸손과 함께 이방 세계에서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한다(Vaughan).
반면에 구약에서 '온유'는 비양심적인 착취로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며, 메시야를 설명하는데도 사용되었다.
* 시 25: 9 -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 슥 9: 9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또한 신약에서 이 용어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을 가져다주신 예수의 메시야적 왕의 역할을 나타낸다.
* 마 21: 5 -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를 고린도 인들에게 모범의 예로 제시하였다.
* 고후 10: 1 -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온유는 비그리스도인은 물론 죄를 범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 지녀야 할 자세이다.
* 빌 4: 5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딛 3: 2 -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 고전 4: 21 -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 갈 6: 1-2 -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딤후 2: 25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온유란 말에 대하여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그것은 베는 듯하고 쏘는 듯하고 찌르는 듯한 것과 반대되는 것이며, 남에게서 손해와 방해를 받고도 격부 되거나 원한을 품거나 반동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이고, 대인접물(對人接物, 예를 들면 사람을 교훈하거나 사업을 경영함과 같은 것)에 있어서는 조급, 경솔, 조포(粗暴), 열광, 잔인, 속단, 흥분등과 정반대되는 인내, 시중, 화순(和順), 조절, 포용, 유화(柔和), 침착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5) 오래 참음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은 물론 비그리스도인에게까지 보이신 하나님의 속성이다.
* 눅 18: 7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 롬 2: 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 벧후 3: 9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 속성으로 인해 심판의 날을 연기하셨다.
* 롬 9: 22 -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이러한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성령의 열매로서 보복을 행하지 않고 중상모략을 견디며 사랑으로 용서하는 자세이다(vaughan, Lenski).
* 갈 5: 22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오래 참음은 나를 괴롭게 하는 시험거리로 인하여 변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지만, 특히 남이 해하거나 혹은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노하지 않고 변함없이 덕행(德行)을 계속함을 의미한다.
구약의 잠언에 오래 참는 덕을 칭찬하여 말한 구절이 많다.
* 잠 14: 29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 잠 15: 18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 잠 16: 32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 17: 27 -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에서 볼 수 있고, 인간이 인간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권면은 딤전 1: 16. 딤후 4: 2에 있다.
* 딤전 1: 16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딤후 4: 2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5: 22)에서 오래 참는 덕의 필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탄은 그가 시험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정복할 수는 없으므로 같은 시험을 오랫동안 계속함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질그릇과 같아서 계속적 시험에는 넘어가는 줄 사탄이 알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렸다. 이와 같이 장기적 시혹(試惑)을 이기려면 우리는 오래 참는 덕을 소유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