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7)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2:4–5)
1. 두 세계의 분수령: 이 땅의 나그네와 천상의 시민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 제2부(후반부)에 이르러 저작 전체의 사유를 가장 숭고한 영원성의 지평으로 끌어올립니다.
오웬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방식에 우주적 질서의 거대한 전환점이 존재함을 규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세에서 성도가 믿음(Faith)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과 "장차 영광의 세계(천국)에서 시각(Sight)으로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하여 바라보는 것" 사이의 대조입니다.
이 두 가지 '봄'은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봄은 씨앗이며, 시각으로 봄은 그 씨앗이 활짝 피어난 만개한 꽃입니다.
이 땅에서 복음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영혼은, 내세에 가서도 결코 시각으로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오늘 비록 희미할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바라본 자는, 장차 눈부신 천상의 정오의 빛 속에서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직시(Visio Dei)하게 될 것입니다.
2.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의 정밀한 헬라어 원어 해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선언한 대조는 오웬의 구분을 여는 결정적 열쇠입니다.
"βλέπομεν γὰρ ἄρτι δι᾽ ἐσόπτρου ἐν αἰνίγματι, τότε δὲ πρόσωπον πρὸς πρόσωπον·
ἄρτι γινώσκω ἐκ μέρους, τότε δὲ ἐπιγνώσομαι καθὼς καὶ ἐπεγνώσθην."
(1) 디 에솝트루 (δι᾽ ἐσόπτρου, Di' esoptrou) : 거울을 통하여
고대 지중해 세계의 거울은 오늘날의 정밀한 유리 거울이 아니라, 구리나 청동을 두드려 만든 금속 거울이었습니다. 사물이 반사되기는 하나 금속의 굴곡과 탁함 때문에 왜곡되고 어른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거울'은 현세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들(성경 말씀, 설교, 성례)입니다. 이 수단들은 거룩하고 참되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을 피조물의 유한한 이해력 속에 완충하여 비추어 주는 '간접적 매개체'입니다.
(2) 엔 아이니그마티 (ἐν αἰνίγματι, En ainigmati) : 수수께끼같이 희미하게
영어 '에니그마(Enigma, 수수께끼)'의 어원입니다.
진리가 모호하거나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시된 진리는 완전하지만, 우리의 지각과 수용 능력이 죄의 잔재와 육체의 연약함에 갇혀 있기에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더듬거리며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리킵니다.
(3) 프로소폰 프로스 프로소폰 (πρόσωπον πρὸς πρόσωπον) :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중간 매개체인 거울(은혜의 방편)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פָּנִים אֶל־פָּנִים, 파님 엘 파님)" 이야기했던 것처럼(출 33:11), 어떠한 가림막이나 굴절 없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찬란한 인격의 얼굴을 직접 맞닥뜨리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직관(Immediate Intuition)'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4) 에피그노소마이 (ἐπιγνώσομαι, Epignosomai) : 온전한 앎
현세의 앎은 *기노스코(ginōskō)*이자 "부분적인 앎(ἐκ μέρους, 에크 메루스)"입니다.
그러나 내세의 앎은 접두어 *에피(epi)*가 붙어 강화된 형태인 에피기노스코(ἐπιγινώσκ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남김없이 꿰뚫어 아시는 것처럼, 성도의 영혼도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의 비밀을 조금의 오해나 가림 없이 밝히 꿰뚫어 알게 되는 '충만하고 온전한 앎'입니다.
3. '믿음으로 봄'과 '시각으로 봄'의 4대 본질적 비교
오웬은 본서에서 두 상태의 영적 차이를 네 가지 차원에서 명확한 대조표로 정리합니다.
| 비교 영역 | 1. 믿음으로 봄 (현세의 나그네 길) | 2. 시각으로 봄 (천상의 영원한 본향) |
| 인식의 방식 | 간접적(Mediate): 말씀, 성례, 신학적 명제를 통한 거울의 반사 | 직접적(Immediate):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본체를 맨눈으로 직시 |
| 인식의 명료성 | 어스름한 새벽빛: 수수께끼(아이니그마) 같고 부분적이며 수고로운 이해 | 정오의 태양빛: 일체의 그림자와 의심이 사라진 완전한 빛과 확신 |
| 영혼의 상태 | 전쟁과 영적 긴장: 육신의 정욕, 사탄의 유혹, 죄책감과 끊임없이 싸움 | 완전한 안식과 무죄(Impeccabilitas): 죄의 가능성조차 소멸된 절대적 순결 |
| 기쁨의 지속성 | 간헐적이고 파도침: 때로는 은혜의 절정을 맛보나 이내 구름에 가려짐 | 영원히 마르지 않는 대양: 단 1초의 중단도 없이 영원토록 솟구치는 환희 |
4. 믿음의 역할과 한계: 영광의 세계를 향한 예행연습
오웬은 현세의 '믿음으로 봄'이 지닌 독특한 위상과 영광을 결코 격하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이야말로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자궁(Womb)과 같다고 역설합니다.
(1) 믿음의 위대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ὑπόστασις)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ἔλεγχος)"라고 정의합니다.
육신의 눈은 오직 흙으로 돌아갈 물질과 가시적인 세상만을 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은 육신의 눈을 감고도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피 묻은 공효를 실재하는 현실로 확신하는 영적 감각입니다.
(2) 현세의 불가피한 한계와 갈망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바울, 요한, 아브라함)라 할지라도, 현세 육신 속에 갇혀 있는 한 피로와 슬픔, 영적 시력의 흐려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성도에게 '천국의 맛보기(Foretaste)'를 주지만, 결코 '잔치의 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결핍과 갈증 때문에 성도는 신음하며 탄식합니다: "내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을 더욱 원하는도다!" (고후 5:8). 믿음의 희미함은 성도로 하여금 내세의 시각을 애타게 사모하게 만드는 거룩한 원동력이 됩니다.
5. 관주 성경으로 해부하는 직시(Visio Dei)의 영광[관주 1] 요한일서 3장 2절: 봄으로써 닮아가는 완성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ὀψόμεθα αὐτὸν καθώς ἐστιν)'"
*카토스 에스틴(καθώς ἐστιν)*은 '그분이 실제로 존재하시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현세에서는 우리의 연약함에 맞추어 완충된 형태로 보았으나, 내세에서는 그분의 존귀하신 본 모습을 가감 없이 직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직시의 순간, 거룩한 빛이 성도의 영혼을 완전히 관통하여, 성도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전혀 없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영원히 고정(Glorified)됩니다.
[관주 2] 시편 17편 15절: 다윗이 기다린 궁극적 만족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אֶשְׂבְּעָה בִתְמוּנָתֶךָ, 에스베아 비트무나테카)"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재물과 자손의 번성으로 배를 채우는 삶을 경계하며, 자신의 영혼이 누릴 참된 배부름의 순간을 선언합니다.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 "주의 얼굴을 직접 뵙고, 주의 형상 그 자체로 영혼이 흠뻑 배부르게 되는 것", 이것이 구약과 신약 성도 전체가 품었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6. 제9강의 요약
인식의 두 단계: 성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는 방식은 현세의 '믿음(Faith)으로 봄'과 내세의 '시각(Sight)으로 봄'이라는 두 가지 연속적이면서도 질적으로 차원 높은 단계로 나뉩니다.
거울과 대면의 차이: 현세에서는 복음의 말씀이라는 거울(에솝트론)을 통해 수수께끼(아이니그마)처럼 부분적으로 주를 바라보지만, 영광의 나라에서는 중간 매개체가 모두 사라지고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대어(프로소폰 프로스 프로소폰)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됩니다.
영적 연속성: 천상의 시각(지복직관)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땅의 나그네 길에서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맛본 자만이, 장차 그 영광의 바다에 온전히 뛰어들어 영원토록 흠뻑 젖어들 수 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제10강에서는 본서 전체의 대단원이자 영원의 관문, "종말론적 완성: 영원 속에서 누릴 어린 양의 영광"을 다룹니다. 신부인 교회가 누릴 신랑과의 영원한 혼인 잔치, 새 예루살렘의 셰키나 영광, 그리고 존 오웬이 숨을 거두며 던진 마지막 권고를 가슴에 새기며 이 대장정의 강의를 장엄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