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믿음’과 ‘믿다’
1) ‘믿음’을 논하고자 하면 성경에 ‘믿음’ 즉 명사로 쓰인 말씀과 ‘믿다’ 즉 동사로 쓰인 말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위 말씀 중 엡2:8은 ‘믿음’ 즉 명사로 쓰였고, 롬10:9은 ‘믿으면’ 즉 동사로 쓰였다.
2) 그럼 먼저 ‘믿음’라는 명사로 쓰인 엡2:8 말씀을 보자.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여기 ‘믿음’은 헬라어로는 ‘피스티스(πίστις)’인데, 사람이나 신을 믿는 ‘신뢰’, ‘진실성’, 사업상의 ‘신용’, ‘보증’, ‘증명’, ‘위탁한 어떤 물건’ 등의 뜻을 지닌다.
한글성경은 이 ‘피스티스’를 대부분 ‘믿음’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신실’, ‘충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주로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는 사실은 ‘믿음’, ‘신실’, ‘충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념으로는 이 세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이지만, ‘피스티스’라는 헬라어는 ‘믿음’, ‘신실’, ‘충성’이라는 의미이고, 이 세 가지는 의미가 같은 것으로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을 읽다가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신실’ 혹은 ‘충성’으로 바꿔서도 읽어보면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만 읽을 것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구원받는다’ 또는 ‘충성함으로 구원받는다’라고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3) 이어서 ‘믿으면’이라는 동사로 쓰인 롬10:9 말씀을 보자.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위 말씀 중 ‘믿으면’의 기본형이 ‘믿다’인데, 이는 헬라어로 ‘피스튜오(πιστεύω)’이고, 사물이나 사람을 ‘신뢰하다’, ‘맡기다’, ‘위탁하다’, ‘자신을 신실하게 하다’, ‘충성하다’, ‘목숨 걸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성경을 읽다가 ‘믿다’라는 단어가 나오면 ‘신실하게 하다’, ‘충성하다’라는 말로 바꿔서도 읽어보면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4) 그런데 헬영(헬라어-영어) 사전을 보면 ‘믿음’에 해당하는 명사 ‘피스티스(πίστις)’는 ‘faith’로 번역되어 있고, ‘믿다’에 해당하는 동사 ‘피스튜오(πιστεύω)’는 ‘believe (in)’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faith’에 해당하는 동사가 있었더라면 ‘믿다’, ‘신실하다’, ‘충성하다’라는 개념을 모두 담을 수 있었을 터인데, ‘faith’에 해당하는 동사가 없다 보니 명사인 ‘피스티스(πίστις)’는 ‘faith’로, 동사인 ‘피스튜오(πιστεύω)’는 ‘believe (in)’으로 번역하게 되어 의미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다.
즉, ‘faith’는 ‘피스티스’가 지닌 ‘신뢰’, ‘신실함’, ‘충성됨’이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데 반해, ‘believe (in)’은 ‘피스튜오’가 지닌 ‘신뢰하다’, ‘신실하다’, ‘충성하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지 못하고 ‘신뢰하다’라는 의미만을 가짐으로써, 머리로만 믿는 것도 신앙인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게 된 것이다.
5) 따라서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은 결코 ‘신뢰(하다)’라는 의미만을 지니는 ‘believe (in)’이나 ‘belief’가 아니며, ‘신뢰(하다)’, ‘신실(하다)’, ‘충성(하다)’라는 의미를 모두 지니는 ‘피스튜오’나 ‘피스티스’라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