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이유>
3일 전만 해도 반쪽자리 달이 추석 때까지 채워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한가위라고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밝은 보름달이 밤을 비추고 있었다. 지구에서 볼 땐 평화롭고 아름다운 달이지만…
“하나씩 말해 제발!!!!!!”
합격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살 빠지게 해 주세요…
가까이서 보면, 1초에도 수만개씩 동시에 쏟아지는 소원에 견딜 수 없어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달이었다.
#1
선영의 소원
“제발 도영이랑 결혼하게 해 주세요. 외사랑 지겨워요!”
선영은 아이돌 도영의 팬. 데뷔한 날부터 도영을 따라다녔다. 팬싸인회, 음악방송, 라디오 등 도영을 볼 수 있는 스케줄이라면 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도영도 선영을 알고 있었다. 선영의 인생이 도영이만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선영은 할 수 있다면 도영이랑 결혼하고 싶었다. 말도 안되는 소원이라는 거 알지만 도영을 향한 선영의 애정이 컸다.
도영의 소원
“이번에 준비하는 앨범 대박나게 해 주세요. 연애는 필요 없어요.”
도영은 연습실 창 밖으로 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회사에서는 명절이니 멤버들에게 본가에 다녀올 시간을 주었지만, 혼자 남아 연습을 할 정도로 도영은 늘 진심이었다. 게다가 이번 앨범에는 도영이 처음으로 작사에 참여한 곡도 수록되어 있어 성적에 대한 욕심이 컸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또 다른 곡을 작업할 기회도 주어질 거고,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채널십오야> 같은 예능 채널에도 출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
다인의 소원
“달님, 벌레가 너무 무서워요!! 귀뚜라미가 사라지게 해 주세요!!”
유모차에 앉아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소원을 비는 5살 다인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아가 답게 다인은 벌레를 싫어했다. 달 보고 소원 빌러 산책 나가자는 할머니의 말에 유모차에 타긴 했지만,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 마당에는 벌레가 많았다. 그 중 다인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벌레는 다리 위로 뛰어오르는 귀뚜라미.
귀뚜라미의 소원
“겨울이 늦게 오게 해 주세요. 날도 따뜻하고 먹을 게 많아서 행복해요.”
유난히 더운 9월이었지만 귀뚜라미에게는 천국이었다. 날씨도 적당하고, 아직 단풍이 지지 않아 싱싱한 녹색 풀들을 먹기에도 딱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죽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귀뚜라미는 하루라도 더 이 천국을 맛보고 싶었다.
#3
태현의 소원
“제발 서울 올라가는 길 안 막히게 해 주세요”
태하를 안전하게 카시트에 태우고 차에 탑승하기 위해 운전석 문을 연 태현. 조수석에 앉아 차가 많이 막힐 거라는 아내의 말에 긴 한숨을 내뱉으며 자동차 위로 떠 있는 달에게 소원을 빌어본다.
태하의 소원
“달님~ 오늘은 아빠 차에서 길게 잘 수 있게 해 주세요!”
3살 태하는 지난 번 마트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단잠에 들었으나, 집에 금방 도착한 탓에 오래 자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하는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이 차 안에서 긴 잠을 자고 싶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자는 잠이 그렇게 달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알아차린 태하였다.
수만가지의 소원을 들어온 달.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 왔더랬다. 보름달에 소원 빌었는데 왜 이뤄지지 않냐고, 그냥 옛 어른들의 재미를 위한 미신이라고 치부해 버리겠지만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달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왜, 소원을 남들에게 말하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하는 순간 당신을 시기하는 사람이 반대 소원을 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추석에 빈 소원은 이뤄질까?
첫댓글 -흥미로워서 읽는 힘을 주는 글이었음. 소원이 너무 많은 달 사연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한 게 좋은 소재였음. 각 넘버에서 각자 소원 내용 상반되는 것도 재밌고 반전 있는 포인트였음.
-넘버1에서 채널십오야 언급한 게 센스있었다고 느껴졌고, 넘버2에서 귀뚜라미 곤충 소원이 신박했는데 이게 1번이나 3번처럼 완전히 반대되는 소원은 아닌 것 같아서 완전히 반대되면 좋을 것 같음. 날이 따뜻해서 살기 좋다는 건 설명에도 있으니까 겨울이 늦게 와서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라는 걸로 바꾸면 상반될 거 같음.
-넘버3도 재미있었는데, 마지막 문단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소원이 이뤄지지 않은 게 달 나름대로의 노력이라는 뜻인지,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건지. 소원을 들어왔다 가 listen과 소원 이뤄주다의 언어유희인지 싶어서 이 문단을 이해하기 쉽게 바꾸면 좋을 것 같고, 소원 이뤄줄까 질문 던지는 건 좋다.
-아이돌, 채널십오야 워딩 들어간 게 현실적이어서 재밌고 잘 녹아들었다.
-여러에피소드가 있는데 한 에피소드 안에서도 상반된 입장을 담는 건데 내용 길지 않고 짧게 쳐서 속도감 있게 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소원 들어주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달의 모습을 중간에 넣어도 좋을 듯. '이것들 또 이러네?'이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글이 지루하지 않았음. 재밌었음.
-세번쨰 에피소드가 아쉬웠다. 애기가 차에서 오래 자는 게 아이보다는 부모님의 바람에 가까울 듯.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서 아빠와 상반되는 소원을 비는 게 좋을 것 같음.
-마지막 문단에서 달의 성장기를 써도 좋을 듯. 달이 처음에는 소원 하나하나를 들어주면서 되게 뿌듯해했는데 너무 많은 소원들을 들어주다보니까 지쳐버린 이야기를 써도 좋을 것 같고.
-달 보면서 소원 비는 글을 읽으니까 요새는 완전 옛날만큼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을 거 같음. 전에는 달보면서 제사지내는 의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점이나 사주 보고 달한테 소원비는 사람은 줄어드니까. 이런 소재로 써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