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2-05
어 지 간 하 면 서 무 던 한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매사의 일에 부정적이다 시피한 사람이 있다. 어떻게 말하면 그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테레비의 뉴스를 보면서도 자기와 다르다고 소리를 높여댄다.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그의 주변에서 어떠한 사소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는 긍정적으로 아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거의 비판적이다. 그러면서 부정적이다. 그리고 본인이 어떠한 일에 잘못을 하였을 때에는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변명의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느 화장실(化粧室) 안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 밑에 좋은생각에서 인용(引用)해 놓은 다음의 얘기를 볼 수 있었다.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손짓, 몸짓을 하며 수화로 무엇인가를 물었지만, 저는 수화를 몰라서 대답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열었으면 그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포용적이고, 수용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의 덕택으로 인하여 일을 꾸려 가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은 “그래도 세상에는 아직까지 나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좋은 사람이 더 많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自矜)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디모데후서 3:2). 예리하고 무정한 냉혈한(冷血漢) 보다는, 어지간한 그러면서 무던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떻겠는가?
요즈음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영어 말을 가져다가 쓰는 말투들이 있다. “오바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가 많이 쓰이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거기에서 끌어온 듯 한, “엎” 혹은 “엎그레이드”라는 말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말들은 웬만하거나, 그저 그만한 말들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위로 치솟는 상승곡선을 긋는 고상(高尙)한 말들이다. 평소(平素)의 말들이 아니고 오르막의 치받이의 말들이다. 성서는 오르막의 오바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복음 23:6-12 -공동번역성서) 우리들은 하야(下野)의 삶을 살아야한다.
우리는 어지간한, 무던한, 웬만한, 그만한 삶을 살아야한다. 그것은 이끄는 삶이기보다는 조력(助力)하는 삶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을 받들어주는 생활일 것이다. 우리는 잘사는 사람이기보다는, 서로가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하겠다.
공동체 이야기
서 서 가 는 봄
나는 이 봄에 감사(感謝)함이 마음 가득히 찾아든다. 양팔을 벌리고 밀려드는 봄기운을 맞이한다. 우리는 흔히 과일 맺는 결과(結果)의 가을에 감사한다. 그런데 나는 결과(結果)를 가져다주는 새봄에 감사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그 어디 있겠는가? 뿌리를 만들게 될 자그마한 씨앗을 드문드문 심으며, 빼곡이 가득 들어찰 열매들을 상상해본다. 또 어느 식물은 뿌리 없이 줄기와 잎만 가져다가 그저 땅에 흙으로 북돋우며 감싸 심을지라도 잎이 마르지 않고 뿌리내림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눌러 살게되는, 바로 토착화(土着化)가 되는 것이다. 심는다는 것은(植), 나무(木)처럼 땅에 곧게(直) 서가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겨울동안의 와신(臥身)의 사람이 봄이 되면서 심겨져서 굳게 서가는 나무처럼 입지(立志) 할 수 있으니, 직립(直立)하는 사람만이 가지는 웅지(雄志)이다.
4월 말일에 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그 분은 아내와 그리고 여러 교우들에게 둘러싸여 이끌리다시피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그 분의 몸에 딸린 것이라고는 옷가지 한 두벌과 지팡이와 가볍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전부였다. 내가 얼핏보기에 그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집고 바로 서지를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집에 들어서려는 이들에게 선 듯 그런 주문을 한다. 혼자서 화장실은 가실 수 있는가를 묻곤 한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긴장이 되셨던지 지팡이를 집고 서서 걷지를 못하였으나, 다음날이 되어서는 주춤거리며 한 발씩 한 발씩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반경 안에서 몸을 옮길 때에는 앉아서 손을 짚어가며 몸을 옮겨 놓았다. 후에는 일삼아서 안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음걸이를 계속하곤 하신다. 엊그저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공동체에로 들어서는 길이 콘크리트길로 비로소 겉포장이 되었다. 말처럼 신작로(新作路)가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경사진 길이기에 여름 장마 동안에는 물이 내려 닥치는 물길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런 후에는 길의 표면이 물에 쓸려서 차가 들어서기에 매우 불편한 길이 되었었다. 그 길이 관청의 호의로 새하얀 길이 되었다. 오늘 박 선생님은 휠체어에 실려 그 길로 나섰다. 선생님에게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그 간의 갑갑함이 많이 덜어지게되는, 시작의 길이 또한 열리게 된 것이다. 봄은 온갖 것이 움트는 운동(運動)의 계절이다. 서있던 사람은 이제는 일터로 바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몸을 온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내(室內)에서만 머무적거리는 때가 많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내서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제자리에서 걷기나 달리기를 하는 운동기구와 자전거바퀴를 구르는 운동기구를 구입하여 놓기를 바란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움직여야지 고루하지 않고 신선하다.
누구 노래처럼 봄날은 간다. 우리도 서서 가야 한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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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최진완
박영근
김정옥
문창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5월 10일에 신평교회 최영득 집사님께서(충만농장) 고추,가지,토마토,오이묘목을 주셔서 밭에 심었습니다.
* 새터공동체의 입구인 마을 농로가 02년 3월 27일에서 5월 11일까지 추부면사무소에서 포장공사가 있었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성남교회안수집사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0인).만나교회(전남홍외9인).동산베이커리.어귀녀.문창수.정무래.김기홍.이광승(김미경).일불사.정금란.채윤기(박현실).왕지교회권정자.이정애.갈릴리교회.낭월교회.추부면사무소.대덕교회.예수마을.대전서노회.이선자.박정도.그리스도의집.박종만.세광교회.옥천동부교회.대덕교회.향림원.한삼천교회.이종국.유인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