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계획>>
화원휴양림(250) ~ 용문산(600) ~
닭지봉(670) ~ 닭지만당산(690) ~
골재(550) ~ 화원휴양림.
<<실제 경로>>
7.5km. 1만8천보.
7시간 산행.
대구지역 최고기온 37도.
오늘도 은재님. 하숙생님
산사랑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용문산 올라갈 때는
오늘이 첫 길이라서
정상 모습 상상하는
설렘으로 더운 줄 몰랐고.
또 높이 올라감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삼필봉 산마루금 보는 재미에
다음 전망 기대하며 오르다보니
덥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용문산 정상에 도착.
더위도 우리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전해지는 통합적인 것이라서
머리로 생각하는 기분이
온몸으로 느끼는 체감 기온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설렌다.
하고 싶었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될 때도
그렇다.
설레는 순간들은 의외로 많다.
인생에 설렘이 없고
그냥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그런 날의 연속이라면...
내 삶을 설렘이 많은 인생으로 채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알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
감동과 감탄은 신이
인간에게만 내린 선물이다.
나날이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감동하고 설레기까지 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팔공산 청룡산 가산산성에서
보이는 울창한 삼림은 아니었다.
용문산은 토질 탓으로 보이는데
성장이 부실한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절반도 못가린 햇빛이
우리에게
그냥 쏟아져 들어와도
하나도 더운 줄 몰랐다.
계속 이어진 닭지봉.
닭지만당산 코스는
솔솔부는 산바람 덕에.
그리고 동행한 산 친구 덕에.
그리고 올망졸망한 바위와
잘 정비된 등산로 덕에
오히려 상쾌함마저 들었다.
마음에만 있었던 오랜 친구
닭지만당산과의
감격적인 첫 만남.
그리고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걸어보는
앞-비 종주능선.
이런 일에 기분이 붕 뜨지않으면
이미 죽은 거나 진배없다.
골재에서 바라보던
갑산은 얼마나 높아 보이던지.
은재님 하숙생님 도음으로
등산로 가로막고 있는
죽은 나무도 2개나 치우고.
골재에서 휴양림 내려오는 길에선
과거 이 길에서의 추억도 되살리며
걸었다.
용문골 시원한 물놀이 입수 덕분에
우글대고 바글거리던
모기와 하루살이도
귀찮은 줄 몰랐다.
600 고지 밖에 안되는
용문산 꼭대기 전망도 좋았다.
우리가 점심 먹었던 넙적바위.
바위 틈 사이에 뿌리내려
나무그늘 만들어준 고마운 소나무.
서쪽으로는 가야산 지리산도
가뭇가뭇하였고.
낙동강물이 지척에 있어
손에 잡히는 듯했고.
동으로는 앞산 청룡산 최정산
북으로는 대구시내와 팔공산.
남으로는 천왕봉이
눈 앞에 사방으로
펼쳐진 광활한 모습.
60 넘은 나이에
불볕더위 기승부리는
여름 산에서
문득 떠오른 호연지기.
조합이 어색하지만
어쨋든 무한으로 행복하였다.
찜통더위가 유난히도 맹위 떨치는
올해 여름 최고의 피서지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흔쾌하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은재님.
나이를 잊게하는 힘으로
늘 산행 선두에 계시지만
그러면서도 느긋하게
후배를 기다려주시는
하숙생님.
긍정 마인드가
Full 장착된 산사랑님
덕에 오늘 용문산 기행도
완벽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시 근교 산행보다 좋은 것은 없다.
집 구석에 있으면 이 무더위에
에어컨 켜지않고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근교로 나가니까 대중교통 이용한다.
멀리 안 가니 배기 가스에서
지구 온난화 주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에어컨 안 켜서 전기 절약하고
걸어서 이동하니 기름 아끼고
보너스로 건강도 챙기고.
당연히 병원 갈 일 줄어드니
병원비도 지출도 감소하고.
꿩먹고 알먹기다.
요즘 말로
고스톱판의 '일타쌍피'가 따로없다.
회양목.
무릎 높이의 정원 울타리로 많이 심는다.
회양목은 동그랗거나 네모나게 가지치기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동선을 유도하거나,
화단과 인도를 구분 짓는 용도로
심어왔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회양목의 역할은 확실하다.
산에서 보는 회양목은 5m 이상으로 자라기도 한다.
도시에서만 회양목을 보아 왔던 사람들은
자생하는 회양목을 보면
자신이 알던 나무라고 생각지 못한다.
회양목은 원래 석회암이 많은 땅에서 잘 자라서,
석회암지대가 발달된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이름도 회양목이다.
예전에는 黃楊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목재가 황색이다.
중국어 황장목이 우리 발음으로 회양목으로
들리는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생장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자라는지 아닌지 모르게 자란다.
25m 키로 성장하려면
적어도 600년은 걸린다.
그 만큼 목재의 조직은 치밀하고 뒤틀림이 없어
도장용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흔히 도장나무라고도 불린다.
팔뚝 굵기로 자라면 엄청 비싼 목재가 된다.
용문산 기슭의 누리장나무.
집에 와서도 그 향기 잊지 못한다.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역한 기름냄새를 누린내라고 한다.
누린내 혹은 누릿한 장 냄새가 난다고
누리장나무라고 부른다.
(이것도 일본 말 그대로 번역하다보니
빚어진 참사다.
일본 사람들이 그런 냄새를 느낀다는 이유로
누리장나무로 이름을 정했다 하더라도
역겨운 냄새가 없는 멀쩡한 나무를 두고
그런 냄새 난다고 말하면 안된다.
기후 풍토 달라지면 향기가
달라지는 것 당연하다.
귤이 회수 넘어가면 탱자로 변한다는
귤화위지란 말도 있지 아니한가)
나는 그런 오취 대신 구수한 냄새를 맡았다.
누리장나무 해설만 보고
누린내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수밭고개 누리장나무
꽃 무리가 내뿜는
은은하면서도 기품있는
향기는
아직도 내 코 끝을 맴돈다.
산사랑님이 제일 좋아하는 향기다.
화원휴양림에서 용문산 오르는 길.
산악자전거길로 개발된 길이다.
대팻집나무.
재질이 단단하여 대팻집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가을에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작봉 꼭대기가 보인다.
이곳에서 삼필봉이 시작된다.
뒤에서 부터 앞산. 청룡산. 삼필봉 줄기. 마비정 등대.
금호강과 낙동강 합수부
함박산. 대방산
용문산 정상.
바위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닭지봉과 닭지만당산이다.
닭지봉과 닭지만당산이 보인다.
삼형제바위
원추리.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그래서 '하루 백합'이란 별명도 얻었다.
닭지봉 가는 길.
닭지봉(670)
비비추.
어린 잎은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란 이름이 붙었다.
천왕봉(1080) 정대봉(880)이 얼핏 보인다.
청룡산 배바위가 선명하다.
천왕봉과 구쌍산.
용연사 골짜기 하늘
구름 모양이 요상하다.
닭지만당산(690).
정상석이 따로 없다.
닭지봉보다 20m 높다.
모두 물에 잠겼던 옛날 대홍수 시대에,
가야산은 개 한 마리,
비슬산은 비둘기 한 마리 앉을 만큼만 남고
청룡산도 배바위만 남기고
물에 다 잠겼는데
닭지봉 봉우리는
닭 한 마리 앉을 만큼 남아서 생긴
이름이라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개인 자유다.
닭지봉에다 높은 곳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만뎅이'가 붙은
닭지봉 + 만뎅이가
닭지만뎅이로 되었다가
결국
닭지만당산으로 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서 가장 높은 용마루를 집만뎅이라고 부른다)
비슬산-청룡산-앞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화원읍쪽으로 뻗어내리는
가지 능선의 시작점이
바로 닭지만당산이다.
대구 도원동과 천수봉으로 뻗어 내린
삼필봉의 시초는 작봉이다.
↑며느리밥풀
요즘 산에 오르면 꽃며느리밥풀이 제철이다.
산기슭부터 정상 부근까지 등산로 주변에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이 꽃은 입술 모양으로 벌어진 분홍꽃잎 사이로 밥풀처럼
생긴 흰 무늬 두 개가 있어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볕이 잘 드는 큰 나무 밑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데,
일반적으로 환경 자체가 매우 척박한 마른 땅에서 자란다.
일부 식물학자들은 며느리밥풀을 신갈나무 등에 기생하는
반기생식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아직도 한국 식물학계는 연구실 '카더라' 수준이 많다.
붉은 보라빛으로 피는 아래 꽃입술에 도드라진
두 개의 하얀 밥풀 같은 무늬를 머금고 피어나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우리나라 자생 야생화다.
며느리밥풀이라는 이름은 꽃부리 중앙에 있는 2개의 밥알무늬와
연관하여 전해오는 슬픈 전설에서 유래한다.
어느 산골 마을에 홀어미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이 장성하자 며느리를 맞았다.
가난한 집 딸이 12살 어린 나이에 군 입을 하나 덜어주기 위해서
시집을 온 것이다.
당연히 빈손으로 시집 왔다.
소처럼 일을 해대도 시어머니의 박대 속에 보리밥 한 그릇
제대로 얻어 먹질 못했다.
홀어미로서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았는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집만 비우면 시어머니의 며느리 학대가 심해졌다.
놀부의 심보를 넘어서는 시어머니의 학대에 며느리는 어쩔 줄 몰랐다.
그래도 출가외인인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면 또 친정 부모님들이 얼마나 상심을 하겠나 싶었다.
이제나저제나 나아지겠지 하며 며느리는 참고 또 참았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였는지라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아들은 먼 곳으로 머슴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시어미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며느리 구박이 더 심해졌다.
며느리는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미는 부엌에서 밥솥을 열어 뜸이 잘 들었는지
밥알 두 개를 씹어보던 며느리를 어른이 먹기도 전에 밥을 먹는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에 이르렀다.
“어른 몰래 어른보다 먼저 배 채우는 집안 망칠 년”으로 흉이 잡힌 것이다.
시어미 구박에 견디지 못하여 약해질 대로 약해진 며느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들은 대성통곡하였다.
돌아온 아들에게는 시어미는 이렇게 변명을 했다.
"어찌 시에미 상에 올리지도 않은 것을 지가 먼저 다 처먹어.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막 대들지 뭐냐. 내가 힘이 있어야지.
그래서 작대기로 두어 대 쳤는데 하도 처먹은 게 많아서
그런지 체해서 죽었단다."
아들은 솔밭이 우거진 어느 길가에 아내를 묻어주었다.
그 후 그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이 돋아나더니
흰 밥알이 두개씩 박힌 듯한 꽃이 많이 피어났다.
며느리의 억울함과 한 때문에 꽃부리에 밥알 두개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고 동네 사람들은 생각했다.
옥황상제가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꽃으로 환생시킨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꽃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서방님, 제가 먹은 것은 바로 이 밥풀 두 개뿐이어요.
그것도 다 먹지 못하고 이렇게 입술에 묻어 있는 걸요.
전 결백합니다. 너무 억울해요."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 불렀다.
세상이 너무 무섭고 수줍음을 잘 타기 때문에 이 꽃은
산 속에서 다른 나무나 풀에 숨어서 고개를 숙이고 핀다
영락없이 꽃 모양이 입술에 밥알을 두 개씩 물고 있는 형상이다.
우리나라 야생식물 중에는 아들이나 딸, 시어머니 등이
꽃 이름에 붙은 야생화는 없다.
유독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며느리-”가 들어간 꽃으로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이 있다.
하필이면 왜 꽃 이름에 며느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마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고질적인 고부갈등,
그것도 일방적으로 며느리에게 불리하게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며느리밥풀 속(屬)에는 변종이 많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며느리밥풀 앞에 꽃-, 흰-, 털-, 수염-,
애기-, 새-, 알- 등의 접두어를 사용해서 변종을 구분한다.
종류는 6가지로 꽃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수염며느리밥풀, 알며느리밥풀, 털며느리밥풀, 새며느리밥풀이 있다.
이들은 포엽(꽃 아래 작은 잎 같은 것)의 색깔과 가시를 보고
구별하는 것이라 구별이 힘들고 어렵다.
공통적으로 입술 모양의 빨강 꽃에 아래 입술에는
밥풀 모양의 하얀 무늬가 두 개씩 있다.
꽃며느리밥풀의 줄기는 네모지고 30~50cm 정도 높이로
자라고 가지를 치며, 잎은 좁고 기다란 형태이며 끝이 뾰족하고 마주난다.
줄기와 잎에는 잔털이 많이 나 있다.
골재에서
등산로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을 치우고 있다.
골재(550)에서 화원휴양림 방향으로 좌틀하여 하산하였다.
직진하면 갑산(680)을 기어올라야 한다.
국수나무
가지를 잘라 잘 벗기면
국수같은 하얀 줄기가 나온다고
국수나무라고 부른다.
짚신나물
나 혼자 머리통까지 완전 입수해서
조금 미안했다.
작열하는 태양,
군만두가 될 듯한 더위,
온몸을 꿉꿉하게 하는 여름의 습기.
이 모든 걸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알탕산행이다.
화원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