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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빛 토론 후기는 올해 제가 회장을 하는 동안 일기처럼 쓰는 것이며, 생각이 짧고 어쭙잖은 글이기도 합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카페를 애써 만든 카페지기 윤슬 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겨운 속삭임'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중입니다.
* 일시: 2025년 9월 9일(화), 19:00~21:30 T그룹 전화 토론
* 참석: 이진흥 선생님, 강명자, 고미현, 곽미숙, 김미숙, 김용순, 박수하, 박유경, 배정향, 양다연, 이규석, 이자, 전영숙, 정정지, 정해영, 박경화
* 토론 작품: (작품 평은 ‘작품 토론방’ 참고)
1. 멀리서 본 어머니 · 정정지
2. 싱거운 이야기 · 정해영
3. 풍선 · 양다연
4. 무화과나무 아래서 · 이규석
5. 백일홍 · 곽미숙
6. 봉숭아꽃 · 김미숙
7. 봉정암의 기도 · 고미현
8. 여름 편지 · 강명자
9. 맑음을 쏟아 붓는 · 전영숙
10. ‘다 때가 있다’ · 김용순
11. 있다, 없다, 나의 고백 · 이자
12. 무제 · 배정향
13. 닫힌 집 · 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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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를 견디는 법
천영애
새들은 추방된 이방인처럼 국경을 넘고 새들이 낸 길을 따라 서러운 행렬이 이어진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존 케이지의 피아노 소리가 나무의 눈을 털어 내고 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에 앉아 운다 견디는 일이 끔찍해서 울고 있는 새들
오늘도 종일 아팠다 누구도 밥 한 끼 챙겨 주지 않았고 안부를 묻지 않았다 철저히 유폐되었고 추방되었다 케이지가 종일 피아노를 쳤다 죽음으로 헤어졌던 이들이 전부 나타나 춤을 추었다 보르헤스의 난해한 문장이 배후가 되었고 어긋나 버린 삶이 무참해서 울고 싶었다
그늘이 깊다 다만 최후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 나는 늘, 사는 일은 견디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최후까지 견디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견딘다는 말도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마저 견뎌야지.
이 시인이 견뎌야 할 아픔, 고통이 내게 전해져 나도 뭔가를 더 짊어지고 견뎌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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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섶을 베다
천영애
녹우당 은행나무 돌계단에 앉아 비버의 로자리오 소나타를 듣는다 해남의 바람이 비자나무를 흔들어 소리를 벤다 수백 년 돌계단이 몸으로 스며 허술했던 생을 돌이킨다 권태롭고 현기증 일던 생이 동백 열매처럼 부서진다 말들이 춥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달릴 때 사자가 낙타의 목을 할퀴었다 죽어야 끝이 나는 일이 많다 수천 년을 사는 암각화처럼 흔적을 새기는 일의 무서움을 안다 약속은 죽었어도 말은 살아 돌계단을 오른다 자꾸만 춥다 삶이 추위에 떠는 일이었고 비로소 생이 끝나는 지점을 알 것도 같다 음악은 잠긴 녹우당 문을 두드린다
이제 생의 백기를 들어야 할 때인가 열어 둔 유튜브에서 피가로의 결혼식이 열린다 도망갈 기회를 잃어버린 사자가 무섭게 낙타의 목을 물어뜯는다 까닭 없이 마음이 상하고 울음이 고인다 유리에 벤 몸이 가렵다 유리를 들어 말의 섶을 벤다 죽음 뒤에 남을 말을 벤다
· 말의 섶이라니···, 그 발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 그 ‘말의 섶’을 베다니···.
시인이 이 시를 낭독하는 것을 보았는데, 담담하게 낭독을 하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낭독이 끝나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 살점을 베어가는 것처럼 왠지 아팠다. 담담한 시와 시인 속에 살기와 온기가 똑같은 비율로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대담 낭독을 마친 시인이 밖으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시가 아주 좋다고,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갖고 있던 시집을 내게 주던 시인. 약력을 보고 알았지만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한 것은 시의 깊이, 특별한 사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섶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으니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떠오르고 오래전에 한국무용을 공부하며 여러 벌 맞춰 입었던 한복도 떠올랐다. 살풀이 한복은 인터넷을 통해 중고품을 사러 부산까지 갔었다. 내 체형과 비슷한 여성이 판매를 했는데 입어보니 딱 맞아서 둘이 부둥켜안고 웃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다. 눈대중으로 보고 무작정 갔는데 딱 맞아서 마치 내 옷을 입는 것 같았다. 그 살풀이 복을 입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단 한 번 살풀이춤을 췄었다.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그 한복은 곱게 싸서 재활용 의류함에 넣었다.
섶이란 말을 검색하여 백과사전에서 옮겨 읽어본다.
< 검색: 섶 - 옷자락이 아래로 가는 것이 안섶, 위로 오는 것이 겉섶이다. 우리 나라의 옷은 북방 호복(胡服)계통의 것으로 상고시대에는 앞여밈이 좌임(左袵 : 왼족으로 여밈.)이어서 겉섶이 우측에 달려 있었으나, 일찍이 한복복식(漢服服飾)의 영향을 받아 우임(右袵 : 오른쪽으로 여밈.)으로 옮겨가면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로는 우임이 보편화 되었다.
또, 두루마기의 길이에는 그다지 변천이 없었으나 둔부까지 내려오던 긴 저고리의 길이가 고려 후기에 몽고복식의 영향을 받아 짧아지면서 섶도 그 길이가 짧아졌다. 섶너비는 깃너비에 따라 좌우되는데, 1700년대까지는 깃너비가 10㎝ 안팎이었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그 반으로 줄었으니 그 변천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섶 아래너비는 저고리 길이가 길수록 여밈의 깊이도 깊은 법이어서 예전에는 20∼30㎝나 되었는데, 17세기경에는 20㎝ 미만이었고,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에는 10㎝를 넘지 않았으며, 18세기 후기에는 5㎝ 미만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저고리 길이가 극도로 짧아지면서 여밈의 깊이도 이에 따라 얕아진 것이다.
섶의 감은 17세기까지는 깃과 같은 색과 감으로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상류층에 한한 듯하며, 때로는 금직(金織)으로 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저고리의 깃과 곁마기 및 소매 끝동을 이색지게 한 것은 상고시대 우리의 고유복식에 있어서 선(襈)의 흔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하겠거니와, 이에서는 섶마저 이색지게 하여 그 아름다움을 더하였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깃·곁마기·끝동은 회장(回裝)으로 남되, 섶만은 깃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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ᄉᆞ랑 거즛말이
천영애
귀환이 곤란한 곳에서 불면을 만난다 비박동성 이명이 결절 없는 소리를 밀고 들어와 불면의 미로를 더듬는다 그대가 왔으면 그대가 나의 이명을 넘어 불면의 꿈을 깨웠으면 파고가 높은 현기증이 여윈 바람을 흔든다 파열된 귀를 가진 나는 이미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니
그대가 왔으면 좋은 날 짙게 놓인 그늘에 페르시안 흠집을 만든다 적소에 놓인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몸 페르시안 흠집은 고적한 적소에서 그대가 닿을 자리다 바람을 넘어 어지러이 헤매는 그대는 본초자오선을 건너 나에게 올 것이다 그대에게 나는 본초자오선이고 싶어 오래전에 그쪽으로 넘어진 적도 있으니 그리하여 폐허가 된 적도 있으니
ᄉᆞ랑 거즛말이 님 날 ᄉᆞ랑 거즛말이
꿈에 뵌단 말이 귀 더욱 거즛말이
날갓치 ᄌᆞᆷ 아니 오면 어늬 꿈에 뵈리오
사랑한다는 거짓말이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거짓말이 꿈에도 보인다고 한 것은 거짓이었는지 어떻게 잠이 오지 않고 이명이 깊은 밤에 그대 없이 적소에 있는 나의 어느 꿈에 보이런가 나는 이미 이토록 비루했졌으니 ᄉᆞ랑 거즛말아 백 년이 벌써 지난 듯하다
* ᄉᆞ랑 거즛말이 ~ 어늬 꿈에 뵈리오: 김상용(1561-1637)의 시조
· 김상용의 시조를 넣어 지은 시가 무심한 듯 애틋하다. 시인이 이 시조를 좋아하는 걸까? 나는 이 시조를 아주 좋아한다.
사랑도 거짓말이요 님이 날 위함도 또 거짓말
꿈에 와서 보인다더니 그것도 역시 못 믿겠구려
날 같이 잠 못 이루면 꿈인들 어이 꿀 수 있나
경기민요 중 노랫가락으로 많이 불리는 곡이라 시를 읽고 속으로 여러 번 불러봤다.
노랫가락은 평시조 한 수를 부르는 것인데, 어떤 평시조든 노랫가락 리듬에 얹어 부를 수 있기에 한 곡만 배우면 다른 곡을 응용해서 부르기 쉽다. ‘소리’라 하지 않고 ‘노래’라고 한 것은 시조를 양반들이 지었기 때문이다. 평민은 ‘소리’라 하고, 양반은 ‘노래’라고, 그 당시에는 쓰는 말도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90세가 넘은 친정어머님이 70세일 때 이 곡을 가르쳐 드렸는데 먼저 떠나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주 부르는 애창곡이 되어 있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부르면 숨이 찬 듯,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구성진 소리가 듣기 좋으면서도 애잔하다.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지순한 그리움을 노래로 들을 수 있어 좋기도 하다.
그리움으로 잠을 못 이루니 꿈에서조차 볼 수 없는 님, 그리움이 깊고 깊어 원망으로 절절한 시조다. 그 원망도 결국 사랑임을···. 경기민요의 노랫가락 중 애절한 시조 몇 수를 적어본다. 그리움이나 기다림이 눈물겹도록 절절하면서도 풍류가 있다. 이런 시를 평생 주고받는 정신적 사랑이 나을까, 황진이가 읊었듯 동짓달 긴 그 하룻밤이 나을까, 이 시조를 지은 이들이 나와서 답해주면 좋겠지만 내가 먼저 답해보자면, 둘 다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룻밤이 아닌, 여러 날, 여러 해, 죽어서까지가 좋지 않을까 싶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시조)
가고 못올 님이라면 정이나 마저 가져가지
님은 가고 정만 남으니 정 둘 곳이 난감이로다
이 정을 어디 두었다 님 오실 때에 풀어볼까
인연 없는 그 사랑을 잊어 무방 하련마는
든 정이 병이 되어 살으나니 간장이라
지금에 뉘우친들 무슨 소용
님 그린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추야장 긴 긴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슬피 울어 깨워볼까
녹양이 천만사인들 가는 춘풍 어이하며
탐화 봉접인들 지는 꽃을 어이 하리
사랑이 중하다 한들 날 버리고 가는 님 어이 하리
해 지고 황혼이 되면 내 아니 가도 제 오련마는
제 몸에 병 없으면 뉘게 잡히어 못 오는고
아서라 생각을 마라 부르던 노래나 불러보자
하얀 배꽃 밝은 달빛, 은하수는 한밤인데
아직 남은 푸른 내 맘, 소쩍새가 어찌 알까
정 많음이 병이라서, 잠 못 들고 뒤척이네 (이조년 시조)
남의 님이 좋다 한들 나만 어이 매양 보리
한 여흘 두 닷새에 여드레만 보고지고
그달도 서른 날이면 남은 이틀을 어이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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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 속에 묻혀 있다
천영애
· 그립다는 말은 죽은 이에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만날 수 있기에, 몰래라도 볼 수 있기에, 소식이라도 알 수 있기에, 그리움이란 죽은 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그 생각이 아니다.
·· 시의 마지막 구절, ‘사.랑.이.라.는.말.의.사.무.친.전.율.’을 또박또박 읽어본다.
내게 ‘사.무.친.’ 것들을 생각해 본다. 임종을 앞둔, 사랑했던 사람들의 눈빛이 뼛속까지 사무친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슬픈 ‘전율’이며, 뼈에 새긴 ‘전각(篆刻)’이다.
··· 그저께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 내 앞에 떨어지는 은행잎들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나 보란 듯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줍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때는 손에 아무리 많은 것이 들려있더라도 내려놓고 주워야 한다. 하늘에서 금방 내려왔으니 때가 묻을 틈도 없이 깨끗하다.
높은 곳에서, 힘들게 지내다 내려와 내게 가을 속삭임을 주는데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주워서 손에 쥐고 걸어오니 몇 분이 웃으며, “예쁜 것 주웠네요.”, “이제 가을이 오나 봐요. 은행잎이 물들었네요.” 등 인사를 건넸다. 은행잎 몇 장이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그 몇 마디만으로도 우리는 벌써 가을 감성을 공유했다.
···· 어제 물빛 모임에서는 열세 작품을 토론했다. 시간에 맞춰하느라 숨 가빴지만 각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견들을 잘 수렴하여 퇴고하리라 여긴다. 작품마다 이진흥 선생님의 주옥같은 평, 의견이 곁들여지는데 그때마다 나는 적확하고 섬세한 선생님의 감성이 부럽고 철학적 말씀들에 감동한다. 다른 회원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한결같이 꼼꼼하면서도 부드럽게, 통찰력 있게 이야기해 주시는 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말은 틀릴 수도 있으니 참고만 하라고 하신다.
달을 좋아해서 달에 관련한 노래 중 대만 가수 등려군이 부른 ‘월량대표아적심’이란 곡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어제 정정지 님의 시를 읽으니 그 노래가 떠올랐다. 이 노래를 부르면 또 잊을 수 없는 영화배우가 생각난다. 장국영!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장국영을 참 좋아했는데···. ‘패왕별희’ 속 장국영이 너무나 아프게 떠오른다.
장국영이 부른 ‘월량대표아적심’을 듣고 있으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노래인데도 그의 일생이 겹쳐져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내 연구실 건너편 홍콩 퓨전 식당에 가면 장국영 사진이 있는 테이블이 있다. 그곳에 앉아 장국영을 보면서 야끼 짜장을 시켜 먹곤 하는데 그때는 장국영을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야끼 짜장에 눈이 팔리고 또 내 입에 딱 맞게 맛있기 때문이다.
이규석 님의 시를 읽고 삼덕동 주택에 살 때의 무화과나무가 생각났다. 무화과가 익으면 그 향기에 온 동네 새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저희끼리 잔치를 하고 갔다. 가고 난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무화과는 설익은 것과 먹다 남은 것뿐이었다. 맛있는 것을 파먹다 남긴 것만이 내 차지였는데 제대로 된 크고 달콤한 무화과를 먹은 적 없이 늘 새들이 남긴 쪼가리만 먹었던 것 같다.
그 나무 옆에 개집을 두고 ‘찡’이라는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피부병이 생겼을 때 떨어진 무화과 잎사귀를 씹어먹던 것이 생각난다. 무화과나 잎에서 하얀 진액도 나왔는데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피부병이 낫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모아 염색하는 분께 드렸더니 스카프를 염색해 주었는데 색이 마치 잘 익은 바나나의 노란빛 같고 독특한 향기도 났다.
배정향 님의 시에 등장하는 ‘쇄빙선’이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져 토론을 마친 후 집에 와서 쇄빙선을 검색해 보았다. 우리나라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시인’에 비유하였다던 배정향 님의 발상이 정말 독특하고도 기막혔다. 맞다, 시인은 쇄빙선이나 다름없다. 응답하지 않는 냉정한 얼음산 같은 시를 깨고 깨며 나아가는 것이다. 시인은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이미 깬 얼음도 다시 얼어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살피며 나아가는 쇄빙선이다. 한 편의 시 속에서 절실한 시인의 마음을 엿보며 많은 공부가 되었다.
토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가을비가 내리고 달님은 보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손잡지 않아도(정정지 시, ’멀리서 본 어머니‘ 중)' 달님은 늘 지켜보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쇄빙선처럼 시의 얼음바다를 씩씩하게 걸었다. 이 나만의 얼음바다를 언제 다 녹일지 모르겠지만 계속, 계속 나아갈 것이다.
< 검색: 쇄빙선 - 쇄빙선은 빙판 위에 올라타 그 중량을 이용하여 빙판을 깨뜨리며 나아가는 선박이다. 강력한 엔진, 튼튼한 선체, 얼음이 달라붙지 않는 표면은 쇄빙선의 3대 요건이다. 최초의 증기쇄빙선은 1837년 항구에 낀 얼음을 깨며 나가도록 나무로 만든 노를 매단 미국의 시티아이스보트 1호였다. 러시아에는 1864년 '파일럿'이라는 증기기관 쇄빙선이 있었고, 1871년 독일의 에이스브레셔가 있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쇄빙선은 2007년 러시아의 원자력 추진기관을 장착한, 길이 159m, 폭 20m, 최고속도 21.4노트, 승선 인원 140명의 2만 5,000톤 급, 'NS 50 이어스 신스 빅토리아호'이다. 한국은 2009년 6월 15일,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건조됨으로써 쇄빙선 보유국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