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내게로 오라(來我)
마태복음11:28
수표교교회
1932. 12. 3.
人皆有負擔, 人而無負則不可齒人, 負有輕重, 隨負之輕重而有人格之高下矣. 人類中所負最重者惟耶蘇也. 人欲負重者學耶蘇可也. 主名此負重之人而爲使徒, 爲門徒, 使任建設的事業也. 人據一般的心理, 有難解者, 指以作阿片之物而排之, 其隣家有巫覡亂舞口呼, 乖亂風俗, 鳴錚擊缶, 使神聖之人家, 化作劇場, 亂俗甚矣. 耶蘇敎果阿片乎? 阿片害人之物, 宗敎果害人之物乎? 露國有希臘敎貽毒生民, 故露國有宗敎阿片之說, 朝鮮之耶蘇有何害毒而如是蔑視乎? 最初紹介外國之文明, 建設學校, 此果阿片乎? 最初人民不知演說, 不知新聞, 演說有耶蘇敎創始, 新聞亦耶蘇敎創始, 此果阿片乎? 驅除偶像, 使民智日趨於正, 此果阿片乎? 彼中國之衰亡在儒敎, 孔廟之上掛大砲, 西莊之滅亡在佛敎, 人皆瞻視. 然朝鮮之耶蘇有何害毒而如是排之也? 世相皆汗血之所成, 夏汗爲江河, 亘古而流, 汗流之處曲曲成河, 皆有偉大歷史, 皆負重者之所造成也. 天國亦以汗而成, 故主召負重者來, 使知負重之法, 卽克己也. 克己何也? 有各種, 一利己心, 有利己心者, 不能負重也. 美國南北戰時, 有변자민者, 負他人之負而從軍, 把守而睡故至當死刑, 大統領聞而赦之. 二虛榮心, 有虛榮心者不能負重, 聖經有曰 友舁半身不遂病者, 而至耶蘇, 舁人甚不名譽, 而曰友舁之是克虛榮心也. 三依賴心, 有依賴心者不能負重, 西人之兒仆則不與扶起, 當始十七歲之童擔家而生, 此皆負重之法也. 其次負架也, 此指苦難也, 古人曰安逸鴆毒也, 憂患藥石也, 主召此苦難之人而使作鬪士也. 安逸者能鬪乎? 憂患者能鬪乎? 今朝鮮之人皆有十字架, 僉位若負而從主則皆可作建設事業也. 英國앵글색손族工夫, 大學卒業時, 總長有訓辭, 爾等持此卒業狀而往無他, 所持一年之內. 得五萬弗而歸, 可謂앵글색손族也云. 今朝鮮靑年皆有此精神而後可活矣, 不然則只貪娛樂, 消磨歲月, 以飮酒賭博爲事, 此等沒落, 在卽中國阿片之群皆此類也. 主欲召此苦難之人, 使作建設事也. 僉位來乎? 主曰來則不棄云. 요한六章三十六. 今世僞詐太甚, 各樣招人而多棄之者, 以黃金召之者, 金盡而棄之, 以勢利召之者, 勢盡則棄之. 主則不然, 勿論誰某, 來則不棄云.
사람에게는 누구나 져야 될 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짐이 없으면 사람 축에 끼일 수가 없습니다. 짐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있습니다. 짐의 무게에 따라 인격의 높낮이가 있게 됩니다. 인류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을 지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는 자는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무거운 짐을 지는 이들을 이름 짓기를 사도 또는 문도(門徒)라고 하여 건설적인 사업을 맡겼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마약인 아편 같은 물건으로 지칭하여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이웃에서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며 어지러이 춤을 추고 소리 지르며, 풍속을 문란하게 하고, 징과 장구를 치며 신성한 사람의 집을 극장으로 만들어 버리니 이는 풍속을 어지럽히는 주범입니다.
예수교가 과연 아편입니까? 아편은 사람을 해치는 물건입니다. 종교가 과연 사람을 해치는 물건입니까? 러시아의 희랍 정교회가 그 나라 백성에게 해를 끼쳤으므로 종교가 아편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에 예수가 무슨 해독을 끼쳤기에 이와 같이 멸시합니까?
예수교는 최초로 외국문명을 소개하여 학교를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아편입니까? 최초에 우리 백성들은 연설도 모르고, 신문(新聞)도 몰랐는데, 연설이 예수교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신문도 예수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과연 아편입니까? 우상을 몰아내고 백성의 지혜를 날로 바른 곳을 향하여 나가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아편입니까?
중국이 쇠망하게 된 것은 유교에 있습니다. 공자의 사당이 위에 세워져 있으며, 티베트의 멸망은 불교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불교를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예수가 무슨 해독을 끼쳤기에 이리도 배척을 합니까?
세상은 땀과 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름에 흘린 땀이 강과 하천이 되어서 위로부터 쭉 흘러 내려서 그 땀들이 흐른 곳곳이 큰 하천을 이루어 위대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다 무거운 짐을 진 자가 만들은 것입니다. 천국도 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르기를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곧 극기(克己)입니다.
극기는 무엇입니까?
극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이기심(利己心)입니다. 이기심이 있는 자는 무거운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에 벤자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의 짐을 지고 종군하였다가 보초를 보는 중에 너무 피로하여 졸았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하게 되자 대통령이 그 소식을 듣고 사면해 준 일이 있습니다.
둘째는 허영심입니다.
허영심이 있는 자는 무거운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께 왔다’고 하였습니다. 병자를 들고 오는 것은 매우 명예스럽지 못한 일인데, 그 벗은 메고 왔으니 이는 허영심을 이긴 것입니다.
셋째는 의뢰심입니다.
의뢰심이 있는 자는 무거운 짐을 질 수 없습니다. 서양 사람은 아이가 엎드러지면 붙들어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열일곱 살만 되면 집안을 담당하고 산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무거운 짐을 지는 법입니다.
그 다음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안일은 독약[鴆毒]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심과 걱정인 우환은 약석(藥石)입니다. 주님은 이 고난의 사람을 불러서 투사로 만드셨습니다. 안일한 자가 싸울 수 있겠습니까? 우환을 견딘 자가 싸울 수 있겠습니까?
지금 조선 사람은 다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면 모두 다 건설사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국의 앵글로색손족이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 총장이 훈사에서 ‘너희는 이 졸업장을 가지고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졸업장을 가진 지 일 년 안에, 5만 달러를 벌어 돌아오면 가히 앵글색손족이라고 하겠다’라고 하였답니다. 지금 우리 조선 청년들도 다 이런 정신을 가진 뒤에 가히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오락이나 탐내며 세월을 보내기도 하고, 음주와 도박으로 일삼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몰락한 사람은 중국의 아편 중독자 무리들이 다 이런 유입니다. 주님은 이런 고난의 무리들을 불러들여 건설하는 일을 시킵니다. 여러분은 오십시오. 주님이 이르기를 ‘내게 온 자는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6:36).
오늘날 세상에는 허위와 거짓이 너무 많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람을 불러들여 놓고 버리는 자가 많습니다. 황금 때문에 불러들인 자는 황금이 없어지면 버리고, 형세와 이익으로 불러들인 자는 형세와 이익이 없어지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누구를 막론하고 온 자는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