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바람이 거스르다(風逆也)
마태복음 14:24
海上之風險惡兮, 啓示我試驗之險惡也. 然而我不禁喜悅者, 我與試驗熟親故也. 暴雨降潦水至, 反於我爲幸也. 雨兮潦兮若不至於我, 則我永浸于暗池之畔, 及不測之深谷矣. 試驗之暴風似爲殘酷, 使我有熱心取失主之約束, 與因洗鍊之品格也. 死亡之暴風兮暴則暴矣. 然使我引至主前尤速也. 聽其音聲覩其榮光. 彼榮巍之岸, 若非疾風不能至矣. 惟基督非防風安全之保障也. 於暴風之中, 扶我至安全之港, 而使我守約, 又非安穩且航海, 而卽使安全上陸也. 高風疾吹兮, 高懸布帆而前進, 然則勿論如何暴風如何濃霧, 皆不能妨, 我雖茫茫徘徊久久漂流, 怒濤撑白泡泛, 使我至故鄕, 風乎引我勿休焉.
泛海之船, 雖失帆棹而還, 勿疑今日惡視者, 他日變爲善信無危之手也. 失棹而哭, 我所望已墜地, 然但有主之手矣. 我祈禱而無應答, 仍沈黙而待, 主不賜我者는 惟主智慧, 惟主愛護, 信之不疑, 有時不能無憂, 然惟我心香不滅而燒悲哀, 風雨苦難如是, 我則不疑而欲達彼岸, 多經苦難而後可達也. 以信爲棹, 運不動之舟, 勇敢前進, 而死亡非濤掩我, 我不畏排往, 魂與我雖分離, 以最後之呼吸, 發聲呼之也. 一老鍊之沙工有言, 暴風襲來時, 我當不失一信條可也. 此外無路, 此信條何也? 運舟至置一定之方而守之也. 信者亦然, 或遇酷試, 不見日星, 巨浸當前, 惟有一方法, 理論不可, 經驗亦不可, 祈禱亦不可, 惟有一方法, 使我靈魂, 置一定之方而守之可也. 風乎勿休, 浪乎勿定, 如電如雷, 勿論如何難波起焉, 惟主依之, 惟舵依之, 遙望彩雲如銀, 望之又望, 勿望他如灰之雲色也. 何等壓迫, 何等妨害勿落心. 彼落心云者, 使我靈弱, 不能抗魔之詭計, 不能爲人奉勝利之祈禱, 請避失望, 如避毒蛇, 請思索神之約束, 此約束爲我所有, 疑心與落心, 尙未消磨, 則我心超在神前, 高聲呼之曰苦, 我之敲請使之叱退焉. 不信生落心, 更盡心祈禱, 此瞬間聖神信我堅信, 又加我聖力于靈魂之內, 始則茫不覺悟, 不與敵安堵, 獨持堅信而後, 衆疑雲散, 絶魔甚勇, 暗黑之權遠離于我, 我於是乎覺焉. 每向明之時, 尤覺神之力偉大也. 又知魔軍之誘我墜我之計劃, 盡歸水泡, 於是恍見三位一體之屬性, 在基督聖名之內, 吾等依神, 如幼兒之依父母, 斷無他心, 單純又單純, 向主一念, 耿耿不昧, 甚覺力弱之敎友, 主乃賜力更起, 一日秋空高飛之鷲, 不幸中獵夫之彈, 受傷幾死而兩眼尙未合, 如星閃爍, 鷲乃擧首視空, 如索某物, 如慕某恩, 仰視蒼空, 星月皎潔, 鷲乃張兩翼而試飛, 彼蒼蒼之空, 乃彼故鄕, 乃彼領地, 彼之材操也, 力量也, 思想也, 一一試于蒼空之中, 駕風而行, 弄電而奔, 今不幸捨此空間, 而落在于地上, 幾至死線, 一足蹉跌, 落在下地, 故死亡迫頭也. 靈魂亦如鷲鳥, 地上非其故鄕也, 保羅信者當向上生活, 常常仰上而去, 守信守望守勇, 如基督之守, 若不能成勇士, 則當自戰地退却, 靈乎望上.
一. 우를 바라보자.
발아래 소리치는 물결, 여호와 물리치시리니,
우를 바라볼 때에.
二. 우를 바라보자.
어둠에 령혼을 샴킬듯하매도,
빛가온대 빛이 내령혼 채우리니,
우를 바라볼 때에.
三. 우를 바라보자.
싸홈에 짓치고 혼란하야졋실지라도,
大將되시는 예수 계셔 익힐 힘 쥬시리니,
우를 바라볼 때.
信者 如船者 三, 續所望在上.
某信者如短漕船, 易動易搖, 漕此或漕彼, 若欲漕往一定之地, 則非盡力則不可. 某信者如風帆船, 風東則船東, 風西則船西矣. 船不能逆風, 然不取當行之路, 只應風勢而行矣. 某信者如發動汽船, 此不拘風逆, 不搖不動, 只取征路而行, 冒風潮之險與逆境, 奮鬪壯快前進. 吾等於三船之中, 作何船也?
바다에 풍파가 험악한 것은 나에 대한 시험이 험악한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기쁨을 금할 수 없음은 내가 시험과 익숙하게 친해지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밀어닥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럽습니다. 폭우나 홍수가 만일 나에게 밀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어두운 심연에 잠겨 있거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골짜기에서 빠져 있을 것입니다. 나를 시험하는 폭풍이 잔혹한 것 같으나 나로 하여금 열심을 가지고 잃었던 주님과의 약속을 찾게 하여 세련된 품격으로 참여하게 하는 원인이 되게 합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폭풍이 사납다고 하겠지만 주님 앞으로 나를 인도하심이 더욱 빠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음성을 듣고 영광스럽고 높은 저쪽 언덕으로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면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바람을 막아주어 안전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폭풍 가운데 나를 붙잡으시어 안전한 항구에 도달하게 하십니다. 또 평안하게 항해하게 하고, 또 안전하게 상륙하게 하십니다. 높은 바람이 빠르게 불어오면 돛대를 높이 올리고 전진하게 되면 어떤 폭풍이나 어떠한 짙은 안개도 우리의 갈 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비록 아득한 곳에서 배회하고 오래오래 표류하며 성난 파도가 배를 밀어붙여도 나를 고향에 이르게 할 것이니 바람이여, 나를 쉬지 말고 이끌어가 주십시오.
바다에 뜬 배는 비록 돛대와 노를 잃었더라도 돌아옵니다. 오늘 밉게 보인 자가 뒷날에는 잘 믿고 위험이 없는 손길을 가진 자로 변화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노를 잃었다고 울면 나의 소망은 이미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주께 구원의 손이 있습니다. 나는 기도하고 응답이 없더라도 그대로 침묵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주지 않는 것은 오직 주님의 지혜입니다. 오직 주님의 애호를 믿고 의심하지 않으나 때로는 근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마음의 향기가 없어지지 않고 비애를 불살라야 하느니 비바람과 고난이 이와 같아도 나는 의심하지 않고 피안(彼岸)에 도달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고난을 겪은 뒤에 가히 이를 수 있게 됩니다.
믿음으로 노를 삼아 움직이지 않는 배를 끌고 용감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사망의 물결을 막아서도라도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 나가야 합니다. 혼과 내가 비록 분리되더라도 최후의 호흡을 가지고 소리를 내어 부르짖어야 합니다. 한 노련한 뱃사공이 말하기를 ‘폭풍이 엄습해 올 때 나는 마땅히 하나의 신조를 잃지 않는 것으로 가하다. 그 밖에는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신조가 무엇입니까? 배를 일정한 방향에 두고 지키는 것입니다. 신자도 역시 그러합니다. 혹 잔혹한 시험을 만났을 때 해와 달도 보이지 않고 큰 장벽이 앞을 막을 때, 오직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론도 되지 않고, 경험도 되지 않고, 기도도 역시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은 내 영혼을 일정한 방향에 두고 지키는 일일 뿐입니다.
바람도 쉬지 않고 물결도 진정되지 않고 천둥과 번개들과 어떠한 어려운 물결이 일어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오직 배의 키를 의지하고 멀리 채색 구름이 은과 같이 하얗게 되는 것을 보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되 잿빛 구름은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압박과 방해를 받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이라고 이르는 것은 나로 하여금 영혼을 약하게 합니다. 마귀의 속이는 계획을 저항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실망을 피하기를 독사를 피하듯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약속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의심과 낙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큰소리로 괴로움을 부르짖으십시요. 믿지 않으면 낙심이 되나니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십시오. 그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은 나의 굳센 신앙을 보시고 나에게 거룩한 힘을 더하여 영혼에 불어 넣으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득하여 깨닫지 못하고 적과 더불어 안도하지 못하지만 굳센 믿음을 갖게 되면 모든 의심이 구름처럼 흩어집니다. 마귀로부터 끊어내기를 용감하게 하면 흑암의 권세가 멀리 떠나게 되고, 마침내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밝아오는 때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마귀의 군사는 나를 유혹하여 나를 타락시키려는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드디어 삼위일체의 속성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 안에 있음을 황홀한 가운데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는 결코 다른 마음이 없고 단순하고 또 단순하게 주님을 향하는 일념을 잠을 자지 않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힘이 약한 교우에게 주께서 힘을 주시어 다시 일어나게 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날 가을 하늘에 높이 날던 수리가 불행히 사냥꾼의 총을 맞고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지만 두 눈은 아직 감지 않고 별처럼 번득이더니 수리는 마침내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마치 무엇인가 찾는 듯하고, 어떠한 은혜를 그리는 듯 하였습니다. 위로 창공을 바라보니 별과 달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수리는 마침내 두 날개를 펼치고 날려고 하였습니다. 저 푸른 공중은 바로 저 수리의 고향이며 수리의 영지입니다. 저 수리의 재주와 역량과 사상을 일일이 창공에서 시험하며 바람을 가르고 나르며 번개처럼 달리어 갔는데 지금은 불행하게도 이 공간을 버리고 지상에 떨어져서 거의 죽음의 지경에 있습니다. 한 발자국을 잘못 디뎌 지상에 떨어졌으므로 죽음이 박두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도 역시 저 수리와 같아서 지상이 그의 고향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신자는 마땅히 위를 향하여 생활하라’고 하였는데, 믿음이 있는 자는 위를 보고 가야합니다. 신앙을 지키고, 소망을 지키고, 용기를 지키기를 그리스도가 구원의 사명을 지키듯 하여야 합니다. 만일 용사가 될 수 없다면 마땅히 전쟁에서 퇴각하여야 합니다. 영혼이여, 위를 바라보십시오.
1. 위를 바라보자.
발아래 소리치는 물결, 여호와 물리치시리니,
위를 바라볼 때에.
2. 위를 바라보자.
어둠이 영혼을 삼킬 듯하여도,
빛 가운데 빛이 내 영혼 채우리니,
위를 바라볼 때에.
3. 위를 바라보자.
싸움에 지치고 혼란하여졌더라도,
대장(大將)되시는 예수 계시어, 익힐 힘 주시리니,
위를 바라볼 때.
믿는 자에게는 배와 같은 점이 세 가지 있음.
어떤 신자는 조그마한 운반선 같아서 쉽게 동요될 수 있으나 물건을 이쪽저쪽 잘 나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해진 곳에 물건을 나르자면 힘을 많이 쓰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어떤 신자는 돛단배와 같아서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만 가니, 꼭 가고 싶은 길을 갈 수가 없고 다만 바람의 형세를 따라 가야 합니다.
어떤 신자는 발동기선(發動汽船)과 같아서 어떠한 바람에도 구애되지 않고, 함부로 동요되지도 않으며, 다만 가야 될 길을 찾아 가는데 바람과 조수의 험난함이나 역경을 헤치고 그냥 씩씩하고 상쾌하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배 중에서 어떤 배가 되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