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三淸道中 삼청동 도중에
大隱何曾遠市朝
옛날 대은은 어찌 도시와 조정을 멀리했던가? 1)
澄心忘物所吾要
마음 맑히고 물욕 잊는 게 내 바라는 바로다.
三淸洞邃蒸霞蔚
삼청동 골짜기는 깊숙하여 그 경치 아름답고
八判家空古木喬
팔판동 가옥엔 하염없이 나무만 높이 자랐네. 2)
繞郭如登千堞雉
둘러진 성곽 오르니 수많은 총안과 흉벽이고 3)
入林敢借一枝鷯
숲속에 든 굴뚝새는 가지 하나만을 빌리누나. 4)
時時來訪天人宅
때때로 찾아오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집인데
數曲電欲萬慮銷
몇 곡조 시를 지으며 온갖 시름 녹여 보리라.
_____
1) 대은(大隱): 조정에 벼슬하면서도 깊은 은사(隱士)가 되는 사람인데, 도가(道家)에서는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풍진(風塵)을 떠난 경우는 소은(小隱), 시가지에서 벼슬하면서 도를 잃지 않는 자를 중은(中隱), 정치 세계인 조정에서의 도인을 가장 초탈한 은사(隱士)라 하였다.
2) 팔판가(八判家): 팔판동(八判洞)의 가옥(家屋)들이란 말인데, 조선시대에 8명의 정승이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동네로 경복궁 동쪽 삼청동 아래를 말한다.
3) 치첩(雉堞): 성곽 위에 나지막하게 쌓은 흉장(胸墻)이니 전쟁 시에 사용할 화살이나 총알을 쏠 수 있는 구멍인 총안(銃眼)을 만들고 그 사이의 벽들을 만든 작은 돌담이다.
4) 차일지료(借一枝鷯): 가지 하나 빌린 굴뚝새라는 말인데, 일찍이 “굴뚝새가 숲에서 둥지를 틀 때 가지 하나에 불과하다(鷦鷯巢林 不過一枝)” 표현이 있어 크게 바라지 않는 작은 소망을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