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양제(隋煬帝) 패귀
고구려는 신라 백제를 어거하면서 또 불의성을 보았다. 지라 수양제가 대군을 거느리고 들어와 침노하거늘 그때 지라에서는 오랫동안 남북전쟁이 일어나 크게 요란 하던 때라 수라 하는 나라가 새로 일어나 남북을 통일하고 동으로 고구려를 엿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고구려가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지라를 괴롭게 할까 염려함이라.
그리하여 고구려 영양왕(嬰陽王) 23년에 수(隋)의 장수 우문술(宇文述) 우중문(于仲文)이 수륙군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까지 들어왔다. 그 군사 수효가 113만 3천 팔백 인이다. 영양왕이 대신 을지문덕(乙支文德)을 청하여 막을 새 문덕이 생각하되 도적은 많고 우리는 약하니 힘으로는 막을 수 없고 계교로서 막으리라 하고 문덕이 가만히 적진에 나아가 거짓 항복 한다 칭하고 그 허실을 살피니 우중문이 그 내용을 안내하리라 하고 문덕이 오거든 잡으라 명하니 중군의 장수가 그 불가를 말하야 문덕을 보내었다.
문덕이 간 후에 후회하고 문덕을 찾거늘 문덕이 압록강을 건너 돌아와서 우중문의 군사가 주린 빛이 있고 피곤한지라. 이에 문덕이 군사를 내여 맞아 싸우되 일부러 패한체하고 쫓겨 가기를 일곱 번이나 하니 우중문이 마음이 교만하여 무덕을 쫓아 평양까지 오니 평양이 겨우 삼십 리다. 문덕이 다시 사자를 보내어 우문술에게 항복 한다 칭하고 말하되 만일 군사를 돌이키면 당신나라를 섬기리이다. 우문술이 그 말을 고지 듣고 또 자기 군사가 곤하여 싸우지 못할 줄 알고 문덕의 항복을 듣고 자하더니 문덕이 또 시를 지어 우문술에게 보내니 그 시는 우문술의 공을 칭찬하고 겸손한 뜻을 보인지라. 우문술이 이에 마음을 놓고 군사를 이끌고 도로 강을 건너갈 새 문덕이 강 좌우에 복병을 설하였다가 맞아 치니 우문술의 군사가 강에 빠져 죽고 또 싸우지 못하여 죽은 자가 심히 많은지라 살아 돌아 간 자 겨우 3,700인이더라.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시(詩)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 신책은 천문을 아시고 묘산은 지리를 아시니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 싸움이기고 공로 높으시며 족한 줄 알고 그칠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