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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법인카드로 지불하며 사는 즐거움>의 줄거리:
내 주머닛돈으로는 수입 쇠고기 사먹기도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법인카드를 손에 쥐면 한우 투 플러스 등심 먹음에 아무런 심리적 압박감이 없습니다. 내 것 아닌 것으로 내 입에 들어가는 비싼 것을 위해 지불하는 일. 이 보다 더한 즐거움이 따로 있을까요? 이제 이렇게 법인카드로 지불하는 즐거움만으로 가득 찬 일상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사적인 경비조차 모두 다 법인카드로 지불하듯 하면서도 합법적이기까지 한 길이 있어 알려드리려 합니다.
법인카드로 지불하며 사는 즐거움
(역대상 29:1~30)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법인카드로 지불하며 사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법인카드로 지불하며 사는 즐거움’
요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한창 시끄럽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신문에 나온 얘기를 해봅니다. 모 일간지에서 단독으로 보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게재한 기사의 내용은 작년에 최순실 씨와 그의 딸 정유라가 독일에서 머물 때에 독일 현지에 개인회사인 코 스포츠를 설립했습니다. 이 코 스포츠는 우리나라에 있는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 삼성전자와 컨설팅계획을 맺고 정유라의 승마훈련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에서 코 스포츠에 지원한 돈의 명세서를 기자들이 입수했는데 단순히 승마관련에 필요한 것들만 지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일간지가 확인한 최씨 모녀의 지출 내역서를 보면 커피 아이스크림 햄버거 애완견용 패드와 펜스 그리고 아기 목욕통 식사대 등등 사소한 목록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해 연말 삼성전자에서 보내는 첫 경비 청구서가 작성이 되었는데, 이들이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사용한 금액을 합산해보면 81만 유로(10억 원)입니다. 그런데 측근의 말에 의하면 삼성 측에서 이 비용에 대한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모두 지급해서 놀랐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8개월간 10억을 써도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불했는데 얼마나 좋았을까요?
승마와 무관하게 사적으로 어떤 사소한 지출을 하더라도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이 다 커버해준다면 훨훨 나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계약이 체결되어서 대기업 삼성에서 다 해준다면 내 계좌 안에 돈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비슷한 게 법인카드일 것입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부장님이 연말이 되어서 한 턱 쏜다고 법인카드를 넘겨주면서 ‘너 이 카드로 백만 원 이하로 긁으면 혼날 줄 알아’라고 말하는데 멋진 장면입니다. 이제 백만 원 이상을 쓰기 위해 한우 투 플러스 등심을 먹으러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돈이 따로 없더라도 사적인 사소한 지출까지 법인카드로 지출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가볍겠습니까? 내 돈으로는 수입쇠고기 사먹는 것도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내 것 아닌 것으로 내 삶의 경비를 지출하며 산다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모습이 아닐까요?
본문 14절을 보면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 비축한 재화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를 비롯해서 쓰고도 남을 양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보니 개인의 재산까지도 헌금으로 드렸고, 이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도 자원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윗이 기뻐한 것입니다. 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라는 구절이 바로 오늘의 주제가 됩니다. 이해하기 쉽게 살짝 바꾸면 ‘즐거운 마음으로 지출할 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부장님이 주신 법인카드를 가지고 한우 투 플러스 식당에 가서 이십 명이 등심을 먹었는데 이백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즐거운 마음으로 법인카드를 긁으면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많이 먹는 뚱보 김 대리조차도 먹는 모습이 귀여워 보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이렇게 살아볼 수 없을까요? 비유적으로 커피마시는 것조차 회사에서 다 지원해준다면 그것이 복지의 삶일 것입니다. 즉 내 것 아닌 것으로 지출하며 사는 삶이 바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입니다.
이 힘을 어떻게 해야 우리도 가질 수 있을까요?
본문 9절을 보면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드린다고 표현된 이 본문은 상당히 포괄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성전에 막대한 예물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릴 정도로 마음을 두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지에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즐거이 지출할 힘입니다. 마음을 성전을 두었을 때에 삶은 즐겁게 지출할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복지의 삶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이야기가 17절에서도 나옵니다.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기쁨을 우리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드리는 것이 기쁘다는 것을 앞서 법인카드의 예를 통해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이러한 기쁨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또 다윗의 기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주의 것임을 밝히며 그것으로 지불했다고 말하며 그 기쁨이 말도 못할 정도로 기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16절의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맨 처음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주께 속한 것임을 알고, 주께 속한 것으로 드렸더니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출할 힘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이유는 성전에 마음을 두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의미는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성전과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삶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지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즐겁게 지출할 힘을 갖게 하는 복지의 삶의 중심입니다. 이렇게 복지의 삶의 핵심적인 내용을 보여주면서 역대상이 이제 끝납니다. 그런데 마음에 이 세상을 받아들여서 세상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려는 내가 죄인 됨을 알게 됩니다. 본래 내 마음은 하나님의 흰색인 디바인 화이트이어야 할 마음이 세상으로 얼룩진 것을 보게 되고, 번제단에서 죽고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화목제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으시고 관할하시고 섭리하시지만 이 세상에 속한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과 내 마음이 연합한다.’는 것은 마음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체이탈을 하듯이 세상을 빠져 나가서 내 삶을 들여다보면 삶에 주어진 모든 상황과 대상들은 모든 것이 잉여재산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하나님으로 채워져서 만족하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는 잉여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내 마음 바깥에 존재하며 비로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이 체감됩니다.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카락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몸조차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몸 하나로 사셨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 아버지로 충족되셨기 때문에 그 몸 하나도 잉여물로 여기셨습니다. 몸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위하여 드리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아셨기에 괴로워하기도 하셨지만, 그러나 그 몸을 잉여물로서 여기시고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고통도 감내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십자가를 생활화한다면 마음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내 삶의 형편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면 다 남아도는 것이 되고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 됨을 알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복지의 모습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얻을 생각을 하지 말고 먼저 십자가를 생활화해서 내 마음이 이 세상을 빠져나간다면, 지금 내 앞에 주어져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하나님으로 충족된 마음에서 다 잉여물이 됩니다. 심지어 내 생명조차도 남아도는 것이 됩니다. 이 남아도는 것들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서 사용할 때에 돈이든 물건이든 생명이든 몸이든 즐겁게 지출할 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 생활화와 십자가 생활화가 중단되고 이 세상 것을 내 마음의 지성소에 붙잡는다면,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존재를 손에 쥐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추진력이 발동되고 계획하고 결단하고 의지하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으로 채워진 마음의 지성소가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장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잡으려고 하지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광활한 창고를 경험할 뿐입니다.
이 광활한 창고를 채우기 전까지는 만족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광활한 창고를 채우기 위한 열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공허가 있고 공허는 반드시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서있을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공허합니다. 또한 내 존재의 기반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허물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반드시 뒤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저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하는 공허와 두려움에 밀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얻어도 한 달도 지나지 못해 또 다시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마치 마약주사를 맞으면 약 성분이 지속되는 동안만 기분이 좋다가 약 성분이 떨어지면 또다시 마약을 찾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 것을 계획한 대로 얻더라도 채워지지 않고 다시 또 광활한 창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맞춤형 사이즈로 만들어졌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이즈로 만들어진 마음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그것을 붙잡자마자 하나님 사이즈로 만들어진 광활한 마음을 채워야 되는 과제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항상 가난한 것입니다.
재벌들이 청문회에 나와서 대답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분들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와 권력과 손을 잡고 권력에 돈을 바쳐도 하면 할수록 하나님 사이즈의 마음은 채워질 수가 없고 항상 가난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만족이 없으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생활화를 하면 마음이 주님의 동선을 따라 이 세상을 빠져나가서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리고 화목제가 뜻하는바 하나님과 연합해서 주님이 지금도 하나님과 교제하시므로 만족하고 기뻐하실 것인데, 주님이 하나님으로 기뻐하시고 만족하시는 것처럼 내 안에도 그 하나님이 계시게 될 때에 알거지 같은 내 몸조차도 잉여물이 됩니다. 법인카드를 손에 쥔 것처럼 이 몸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으며 항상 충족합니다. 몸 하나밖에 없더라도 항상 충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전리품을 얻게 하셔서 모든 것들이 성전 곳간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의 경우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비축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프로젝트가 있으시면 그 프로젝트를 위해서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을 주실 것입니다.
다윗의 말대로 내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서 다시 주께 드리는 것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위해서 몸까지 드리는데 여기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생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출하게 됩니다. 마치 법인카드로 커피와 햄버거를 사먹는 사적인 사소한 일까지도 다 지불하라고 하시는 부장님의 말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가난해서 쓸려고 해도 쓸 것이 없고 지출하고 싶어도 지출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몸밖에 없는 알거지 상태의 사도 바울은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나처럼 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빈곤한 마음이 드는 것은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인데 제가 기도해 보면 30분에서 한 시간씩 걸립니다. 그리고 나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서 하나님께로 가서 지금도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교제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 교제 가운데 내 마음도 참여해서 주님이 가지신 아버지를 나도 가져야 하는데 또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으로 만족함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 세상에서 주어진 형편이 아무리 가난해도 잉여물로 넘쳐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의 기도를 십자가 의미로 드리는 기도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홈페이지에 있는 1분 기도라도 하셔야 합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서 즐거이 드릴 힘이 있습니다. 마치 법인카드로 사적인 사소한 것까지도 다 지불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즐겁고 가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십자가 생활화가 십자가 생활화의 기도로 정착되면서 진짜 하나님으로 배불러서 법인카드로 지출하는 가볍고 즐거운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한 번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 되셔서 내게 쥐어주시는 법인카드를 들고 즐겁게 지출할 힘을 가지고 세상을 가볍고 신나게 살아 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