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청마 靑馬)
이 시구는, 시인 김춘수의 <꽃>과 함께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연애편지에 자주 애용되면서 유명해진,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시 <행복>의 일부이다. 실제로 유치환은 자신의 고향인 통영시 중앙동우체국을 이용해 시조 시인 이영도와 연서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래서 통영에서 청마기념사업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이 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려는 운동과 더불어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마추념 편기쓰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유치환 기념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유치환은 친형인 동랑 유치진과 더불어 친일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제시대 그가 남긴 시 3편이 평론가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환이 썼던 시 <수>(1942), <전야>(1943), <북두성>(1944) 등이 바로 그 문제의 시들이다. 특히 <수>의 경우 다음 시구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십이월의 북만 눈도 안 오고 / 오직 만물을 가각하는 흑룡강 말라 빠진 바람에 헐벗은 / 이 적은 가성 네거리에 / 비적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 반쯤 뜬 눈은 / 먼 한천에 모호히 저물은 삭북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 너희 죽어 율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 이는 사악이 아니라 /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계구와 같을 수 있도다 (후략)
찬바람 몰아치는 만주의 어느 작은 마을 네거리 참수된 ‘비적’의 머리 두 개가 과연 누구의 것이고, 이 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냐는 것이다. 유치환을 옹호하는 측은 ‘비적’이 단순한 도적 떼를 의미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당시 ‘비적’이라는 표현은 일제의 입장에서 보면 ‘항일군’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당시 일제는 공산주의 게릴라를 ‘공비’로 불렀고, ‘비적’은 일제가 작성한 여러 자료에서 보듯이 ‘항일군’을 지칭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양쪽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최근 경남대 박태일 교수에 의해,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기관지인 <만선일보> 1942년 2월 6일자에 실린 청마 유치환의 산문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만선일보는 1937년에 만주에서 창간되었던 대표적인 친일신문으로, 만주지역에 살고 있던 수많은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앞장섰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최남선, 진학문 등은 이 신문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이 글은 비록 그 분량이 짧긴 해도 총동원체제기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니 전문을 인용해 보자.
오늘 대동아전의 의의와 제국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서로 견주어 비교할 만한 것)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된 우리는 조고마한 개인적 생활의 불편가튼 것은 수에 모들 수 업는 만큼 여간 커다란 보람이 안입니다. 시국에 편승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시대에 이탈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어데까지던지 진실한 인간생활의 탐구를 국가의 의지함에 부하야 전개시켜 가지 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라가 잇서야 산하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하나하나 들어서 말함)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 오늘 혁혁한 일본의 지도적 지반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만선일보 1942년 2월 6일)
△ 만선일보에 실린 유치환의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화살표는 확대 부분)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같은 제목으로 유치환 뿐 아니라, 1942년 1월 23일에서 2월 19일 사이에 걸쳐 실은 글이 모두 열한 사람이 올린 것으로 보이나 아홉만 확인할 수 있다고 박태일 교수는 밝히고 있다. 이들 아홉 명 중에는 유명한 소설가 안수길의 이름도 보인다. 이처럼 같은 제목으로 여러 명의 인물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정당화하는 글을 연재하는 형식은 국내에서 발행되었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문> 1943년 8월 1일자부터 8일자까지 ‘님의 부르심으로 받들고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시화와 비슷한 양상이다.
1943년 8월 1일 전쟁 막바지에 몰린 일제는 마침내 조선 청년들을 전선에 내몰기 위해 조선인 징병제를 실시한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조선징병제 실시 감사 결의 선양주간’에 맞춰 8월 1일부터 8일까지 (2일은 제외) 1면에 연재 특집으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화를 대대적으로 내보낸다. 참여 작가를 보면 미술의 경우 고희동, 김인승, 이상범, 김기창 등이 그리고 문학의 경우 김상용, 노천명, 김동환, 이하윤 등이 참여했다. 모두 다 해방 이후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오른 인물들이다.
이로써 베일에 싸여있던 유치환의 만주에서의 행적이 추가로 들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 것이다. 또한 세금의 일부가 지원되어 진행되는 기념사업이니 만큼 유치환의 친일행위에 대한 심도 있는 공동조사가 필요한 때가 왔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인 통영시와 기념사업 관계자들은 이러한 합리적인 요구를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있다.
유치환의 명성에 누가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토호들의 뚝심이랄까.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지역에서 기념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 활동가들에게 갖은 협박과 모욕을 가하는 등 인격 모독을 넘어서는 몰상식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점이다. 이른 바 ‘생명파’ 시인이라는 유치환을 기념하겠다는 사람들의 처신치곤 대단히 모순적인 모습이다. 유치환의 진면목을 살피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원하는 모습만을 취사선택한 허상만을 주입하겠다는 자들의 형태가 참으로 떡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그리고 검찰에 대한 로비의혹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대국민 호소문에서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마태오 10,26)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살해된 최종길 교수 사건이나 KAL 858기 폭파 사건 등 독재정권에 온갖 흉악한 범죄라도 결국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염원을 담은 수많은 희생자들이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깃발>과 <행복>의 시인으로만 기억될 뻔한 유치환의 ‘읽어버린 시간’들이 결국은 드러나고, 알려질 날도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첫댓글 친일시인, 작가 이제 문단에서 철수시킵시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친일행위자들에 올바른지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