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사헌부 집의공 휘 계 묘표
무자(1528중종23)년 ~ 을축(1565명종20)년 향년38세
處士 贈執義金繼之墓(처사 증집의김계지묘)
淑人 順興安氏 祔左(숙인 순흥안씨 부좌)
공의 성은 김씨고 휘는 계이며 자는 성부이고 본관은 청풍 사람이다. 우후인 휘 숭의공이 아들을 낳아 출계하게 하니 대호군인 휘 여광의 후사를 있게 하였다.
고조부의 휘는 리이고 부사를 지냈다.
증조부의 휘는 극함이고 첨정을 지냈다.
조부의 휘는 우증이고 정국공신에 책봉되고 통정대부로서 정주 목사를 지냈다.
공은 가정 무자년(1528) 8월 20일에 낳으셨고 을축년(1565) 12월 28일에 졸하니 향년 겨우 38세였다.
공은 약관 20세에도 미치지 못하여 양구(양의 재앙 다섯과 음의 재앙 넷을 합한 것)의 재앙을 만나니 벼슬길에 진취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그는 거실에다 백이와 숙제에 채미도를 걸어 놓고 뜻한 바를 다스리게 하였으니 상세한 것은 묘갈의 적힌 서명을 보면 알 것이다.
장사를 지내기는 광주 왕륜리 고현이고 선고의 묘소 직하이며 향은 손좌건향이다.
배위는 숙인이고 순흥안씨이며 장사 지내기는 공의 묘소에 부좌이다.
공은 네분의 아드님을 두니 충백은 효행으로 정문이 내려졌고 증직은 호조참의이다. 다음 효백과 인백은 학문에 뜻을 두고 가문을 지켜가며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였고, 인백은 증직이 이조판서이다. 4남은 예백이다.
충백공이 1남을 두니 익신이고, 관직은 부사직이다.
효백공이 4남을 두니 익겸과 익건과 익후와 익성이고, 익성은 진사이고 또한 효행으로서 이름을 나타내었고 증직은 지평이다. 또 4녀가 있으니 여서는 장운명, 나용, 박대성, 정익주이다.
판서인 인백공이 3남을 두니 장남인 익려는 조요하고, 차남은 극부이고, 3남은 극형이다.
극형은 생원으로 학덕을 행함으로써 조정에 등용되어 벼슬은 공조정랑에서 끝이었고, 증직은 의정부 좌천성이며 학자로서 사천선생이라 일컬었다.
예백공이 1녀를 두니 여서는 지여량이다.
익신이 2남을 두니 수는 참봉이고, 다음 도이다. 또 2녀가 있으니 여서는 이명흠과 민영수이다.
익겸은 적자가 없어 무후 되었다.
익건이 2남을 두니 형과 명이다.
익후가 3남 1녀를 두니 연과 제와 호이고, 여서는 현감인 조창한이다.
익성이 4남 2녀를 두니 격과 척와 약과 부이고, 부는 감역이다. 여서는 이후직과 윤상징이다.
극부가 1녀를 두니 여서는 경완이다.
찬성공인 극형이 5남3녀를 두니 증은 문과에 등재하고 관찰사이며, 증직은 영의정이다. 차남은 담이고 생원이다. 삼남은 혼이고 감찰이다. 4남은 순이고 진사이며 통정대부로 목사이다. 5남은 견이다. 여서는 진사인 조세달과 군수인 박상일과 사간인 임원구이다.
수는 아들이 없으므로 아우의 아들인 간을 입후했다. 도는 2남을 두니 즉 간이고 유학을 행함으로써 조정에 천거하여 장령이다. 다음 재는 문과에 등제하고 집의이다.
형이 2남을 두니 항과 주이다.
명이 2남을 두니 집과 노이다.
연이 3남을 두니 영과 경과 규이다.
제가 3남을 두니 상은 무과등재로 영장이고 다음은 선과 완이다.
격이 1남을 두니 추이고 무과등재로 군수이다.
척이 3남을 두니 벽과 단이고 단은 약에게로 입후되었다.
부가 1남을 두니 헌이다.
의정공인 증이 3남을 두니 장남 구는 문과에서 장원하고, 우리 성조에서 우의정이다.
차남인 유는 문과에 등재하고 관찰사이다.
삼남인 무는 진사로서 군수이다.
혼이 2남을 두니 장과 억이다.
순이 3남을 두니 고는 문과에 등재하고 정자이다. 2남은 허이고 3남은 방이다.
견이 5남을 두니 장남은 요이고, 차남은 후이고 무과 등재로 병사이다. 3남은 의이며 방의 후사를 이었다. 4남은 요이고 끝은 서이다.
다음으로 증손 증손녀 및 외손들은 끊임이 없으니 여기에 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이후로도 과거의 이름이 오른자로는 구의 아들인 희로는 진사로 좌랑이고, 제로는 문과에 등재하고 정언이다.
유의 아들인 정로는 생원으로 봉사이고, 취로는 문과에 등재하여 지평이다.
무의 아들인 득로는 무과등재로 도사이다.
추의 아들의 몽로는 무과에 올라 있다.
간의 손자인 치후은 진사이다.
이후로도 내외 자손들이 세세로 더욱 번영할 것인즉, 이는 공의 은덕이 광중에 잠적되어 있으면서 몸소 빛을 발한 것이니 후손들이 어찌 그렇지 않다 하겠는가.
이로써 간략히 갈문에다 빠진 것을 보충하여 기록한다.
현손통정대부황해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해주목사유근찬병서
玄孫通政大夫黃海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海州牧使楺謹撰幷書
오대손통훈대부행사헌부지평취로서전면
五代孫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取魯書前面
숭정후팔십구년 병신5월 일립
崇禎後八十九年 丙申5月 日立
※ 청풍김씨판서공휘인백파 가승의 기록을 옮김
(가승 : 1990년 판서공파 회장을 역임한 漢永씨가 집필한 서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