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A Soaring
오래된 꿈이여
호두나무 고사목이 된 오래된 꿈이여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Oh, the old dream,
The old dream that has become the dead walnut tree,
Let’s fly. Let’s try to fly one more time.
/ 송찬호
<심사평>
왜 디카시, 왜 송찬호인가
송찬호 시인의 디카시 「비상」을 제3회 디카시 작품상으로 선정한다. 이 작품은 계간 《디카시》 2016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송찬호 시인은 디카시를 새로운 시의 한 장르로 수용하여 계간 《디카시》에 신작 소시집 등을 통해 다수 발표하며 그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번 수상작은 ‘왜 디카시인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직도 디카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 경우 일반 문자시와 별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냥 사진에 짧은 시를 붙이면 디카시가 되는 줄로 안다.
디카시작품상을 제정하게 된 것도 이를테면 디카시를 쓰는 시인들을 격려하는 의미도 없지 않지만 디카시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즉 디카시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하고 드러내는지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영감 혹은 감흥을 느낄 때 그것이 증발하여 날아가기 전에 스마트폰 디카로 찍고, 그것을 촌철살인의 압축된 문자로 표현하여 영상과 함께 실시간 SNS로 소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상 따로, 시 따로가 아니다. 영상과 문자가 하나의 텍스트가 될 때 디카시가 되는 것이지 시를 써서 사진 영상에 붙이는 것이 디카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사진에 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문자가 한 몸이 되어 시가 되는 것이다.
지금 계간 《디카시》에 발표되는 작품들은 그렇지 않지만 초창기 2006년 무크 《디카시 마니아》 같은 곳에 발표된 작품들은 문자시와 거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상작은 디카시의 정수가 무엇인가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한 마디로 그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시인은 호두나무 고사목을 보고 아마 전율하듯, 감전되듯 그 앞에 걸음을 멈추었을 것이다. 시인은 거기서 자신의 오래된 꿈을 보았다. 아니 나와 너, 우리의 꿈을 보았다. 그 꿈은 거조巨鳥의 형상으로 막 날개를 퍼덕일 듯하다. 시인과 고사목은 순간 정서적 동일체가 되면서 고사목이 말하는지 시인이 말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 몸, 한 목소리로 “오래된 꿈이여/ 호두나무 고사목이 된 오래된 꿈이여/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읊조린다.
이 언술은 누구의 것인가. 나무의 것인가, 시인의 것인가 아니면 자연 혹은 신의 목소리인가. 더구나 이상의 「날개」를 패러디한 언술을 더함으로써 현대인의 유폐된 꿈으로까지 상상력의 진폭이 확장된다. 그래서 디카시의 시인은 ‘에이전트’라는 언표가 가능하다. 시인 자신의 말보다 훨씬 더 큰 우주의 말을 전한다는 뜻이다.
송찬호의 디카시 「비상」은 사진과 문자가 하나의 텍스트가 되면서 둘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분리하면 사진은 사진이 아니고 문자는 시가 아니다. 이 둘이 한 몸이 되어 비로소 시, 디카시가 되었다.
제1회 공광규의 「몸빼바지 무늬」, 제2회 김왕노의 「길의 꿈」에 이어 제3회 디카시 작품상 수상작 송찬호의 「비상」을 흔연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보낸다. 기왕의 작품들과 지금의 당선작, 그리고 내일의 기대를 함께 바라보자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김종회(경희대 교수,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디카시연구소 상임고문)
<수상소감> - 송찬호(시인)
며칠 집을 떠나 있는 길 위에서 디카시작품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디카시에 빠져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자 언어에만 갇혀 있다가 영상 언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디카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쓰는 시가 아닙니다. 디카시는 세상이 작업실입니다. 스마트 폰을 들고 디카시 창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은 신나는 일입니다. 디카시는 고도의 사진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제 사진 기술 또한 서툴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거리낌 없이 자연이나 사물 앞에 스마트폰을 들이 밀었습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시적 형상을 발견함과 동시에 날것 그대로의 언어와 결합되기 때문에, 스마트 폰 촬영을 마치는 순간 한편의 디카시도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제 디카시도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지난해 여름 구형 폴더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디카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 일 년 만에 빠르게 시집 한 권 분량의 작품을 모으게 된 것도, 디카시 작업의 이런 기본 원리가 경쾌하게 작동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디카시는 네 댓 편을 제외하고 대부분 제가 사는 곳인 충북 보은군 관기리 일원과 도계 너머 경북 화령에서 쓰여졌습니다. 특히 화령에서 다수의 디카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화령은 제 집에서 가깝습니다. 화령은 작은 면소재지지만 공립 도서관이 있고 할인 마트도 있어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저는 화령에 갈 때마다 동네 골목을 누비며 쇠락해 가는 것들, 소멸해 가는 것들을 디카시로 담았습니다. 세상 멀리 갈 것도 없이 관기에서 화령을 오가며, 제 생활 주변의 일상을 성찰하면서, 현대의 신전인 스마트폰으로 디카시라는 다신을 부를 수 있어 기쁩니다. 저는 앞으로 디카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디카시의 운명을 가늠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디카시가 도래하는 문학의 새로운 양식임을 직감하고, 이를 즐겁게 받아들여 쓰는데 힘을 쏟을 뿐입니다.
디카시 운동을 시작하고 이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또 이번 작품상 심사에서 저를 뽑아주신 이상옥, 김종회, 두 분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디카시의 발원지로써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고성군과 고성문화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일상에서 문학을 길어 올리고 소통하는 디카시가 앞으로도 무궁토록 세상의 인정 속에서 꽃 피우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번 수상에 힘입어 디카시의 바다 한가운데로 더욱 깊이 뛰어들겠습니다.
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
동시집: 『저녁별』 『초록 토끼를 만났다』
육필 시집: 『쑥부쟁이밭에 놀러가는 거위같이』
수상: 2000년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2008년 미당문학상
2009년 대산문학상
2010년 이상시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