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고 다닌 하루 사진 한장 찍지 못하였네.
막걸리 걸치고 언덕위 벤치에 앉아 봄바람 막을시니 듣도못한 미세먼지로 온천지가 흙탕물 천지로다. 바늘귀에 가느다란 실 얽지못하고 바지적삼 허리띠로 졸라맨다. 사는자 제사상 매일 세끼 받고 죽은자 제사상 찾아 온천지를 헤맨다. 오늘 하루 사진 한장 못찍은 영상의 재현이 재탕,삼탕 이어진다. 흐리하게 변질된 세상의 먼지는 사람의 멸종을 시도한다. 오늘 하루 제사상 세번 차려 먹고,막걸리 걸치고 따스한 봄기운에 잠을 청하니 고독한 자의 독백소리에 잠을 깨고 만다.
일 장 춘 몽
님찾아 헤매이다 님을 만나네. 님의 손짓 따스하고 님의 미소 다감하다. 님은 멀리 있었다. 우주 천체망원경으로 볼법한 별속의 그대는 불현 듯 우주별천지가 아닌 내옆에서 배회했다. 님은 꿈은 꾼 것이다. 나는 꿈을 꾼 것이다. 못이룰 우주의 별처럼 아니 밤하늘 수놓은 수많은 별들중에 무심코 찜한 나의 별이 혜성이 되어 지구로 떨어진 것이다. 밤하늘 별이 지구중력에 이끌려 내려온 것이다. 반딧불 사이 밤하늘 별들을 헤아린다. 구름에 가린 달빛이 그리울시 꿈을 꾼다. 꿈속에서 연인들이 속삭임이 들려오니 “ 나에게 별을 따다 줄수 있어요?” “ 별을 딸수는 없어요. 별은 멀고도 먼 거리에 있기 별을 따올순 없어요.“ “ 그럼 내가 본 별은 평생 만날 수 없나요?” “ 네. 그 별은 평생 만날 수 없을겁니다. 그러나 그 별을 만날수는 있습니다.“ “ 어떻게 만날 수 있어요?” “ 네. 깊은 잠을 자는 겁니다.” “ 자는 거하고 별 만나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 우린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 초롱초롱한 별을 만날 것입니다. 꿈은 영원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살것입니다.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 다리를 건너며 살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 친구 ‘종학“이 딸네미 결혼식에 즈음하여,,) |
거 북 이
지구상에 수억년을 살아온 파충류. “거북이” 느긋함과 게으름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새끼거북이나 어른거북이나 물속에서 유영함에 유유자적하니 표적되기 일쑤이다. 거북이는 오각형 표지를 의지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 갑옷을 뚫지 못한다. 거북이는 갑옷을 입고 산다. 우린 하등동물인 거북이한테서 다음과 같은 삶의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것이 나홀로 일지라도,, 첫째 거북이는 물속에서 평생을 살며 자신의 후손을 대지인 모래사장에 알을 낳는다. (물속의 세계를 알기 물속 세계가 아닌 더 안전한 대지에서 후손들이 태어나길 바란 것이다.) 둘째 거북이는 천적간에 다툼이 없다. 사자나 악어처럼 서로 물어뜯고 피를 흘리며 약육강식에 어울리지 않고 편안히 머리,다리,팔을 몸뚱아리에 숨기니 평화가 유지되며 약육강식 용어 무용지물 된다. 셋째 거북이는 사슴처럼 천적을 만날시 부리나케 목숨걸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평상히 이동하는 최저속도로 움직이며 달아난다. 넷째 거북이는 토끼를 이겼습니다. 우린 생각합니다. 동화속의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에서 토끼를 이겼습니다. 거북이는 자기 속도로 여유있게 갑니다. 거북이는 평생 속도감을 못느끼고 살것입니다. 거북이는 누구랑 마주치면 갑옷에 머리와 육신을 숨긴채 상대방과 섞이려 하지 않습니다. 지구상 유일무일 수억년을 살아온 거북이 그 파충류가 다른 생명체는 진화할시 진화를 멈추고 지금도 생존할 수 있는 논리는 간단하였습니다. 느림보. 무감각. 무반응. 무의식. 그것이 수억년을 지탱해왔고 지금 지구상 움직이는 어떤 생명체 (나무는 제외) 보다도 장수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배울 덕목입니다. 우리가 배울 지략입니다. 장수(長壽) 의 비결은 간단할지 모릅니다. |
하루에 일어나는 기적을 보라.
하루에 일어나는 기적을 보라. 초바늘보다 빠른 맥박이 뛰고 수십년이 지난 심장이 멈추지 않고 깨끗한 피를 온몸으로 펌프질 하여 보낸다. 생각하기도 전에 입속의 혀는 쉴새없이 언어를 구사하고, 허잡한 발가락이 우리 몸을 지탱해준다. 창자와 신장은 완벽한 소화물 처리후 배설물을 생성한다. 어디서 발열하는지 모르는 내열은 보일러 스위치가 36.5도로 내부 온도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혀밑에서는 침이 생성되여 음식물 섭취를 도와준다. 더우면 땀을 흘려 내부온도를 유지하고, 손톱과 발톱은 인체 끝자락을 보호한다. 하루에 일어나는 기적을 보라. 해가 어김없이 뜨고 지고, 달이 번갈아 뜨고 진다. 계곡에서는 수억톤의 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건만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나무는 숲을 만들고 숲은 수많은 생명체들의 안식체가 된다. 하루에 일러나는 기적을 보라. 일초만에 누구랑 대화하고,이초만에 즉석사진을 볼 수 있다. 몽타쥬 사라지고 범인사진 cctv에 잡힌다. 쇳덩어리 하늘을 날으고, 쇳덩어리 바다에 떠있다. 길거리는 무수한 쇳덩어리가 도시를 질주하고 마비시킨다. 하루에 일어나는 기적을 보라. 매일 일어나는 기적. 매일 살아나는 기적, 매일 느끼는 기적. 우린 그것이 “ 기적”이 아닌
“평범한 일상” 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
바 보
바보가 있기 아래를 본다. 천민이 있기 위를 본다. 멸치떼속에 숨은 실패한 우두머리 찾지못하고 멸치볶음하며 넉두리하여 본다. 바보는 없었다. 바보는 애지당초 없었다. 바보는 우리가 바라는 머슴이었다. 우리가 우쭐해 볼수 있는 포인트로 생각했다. 바보는 우리가 만든 단어이다. 바보는 “밥+보”에서 “보 ”자가 제외되여 ‘바보’라 칭한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사전에 표기되며 ‘밥만 축내는 사람’으로 지칭한다. “바보”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바보는 없었다. 멍청하고 두리뭉실 사는 바보는 없었다. 우리주위에서 바보는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바보를 만나게 된다. ‘바보’ 국어사전에 표기된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지칭한 바보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우리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멍청한 척하는 피고인“ “기억상실증에 걸린 증병환자” “돈키호테의 산쵸“ “독립군의 탈옥기”처럼 처절한 바보들이 노새탄 돈키호테처럼 우쭐한다. 자신들은 태극기 쳐다보며 애국가 부른다. 지금 법정에서 반듯한 바보는 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처럼 주인공 행세를 한다. 신발 거꾸로 신고 모자 뒤집어 쓴 바보는 없다. 그러나 양심 거꾸로 묻고 카멜레온 된 변색자들이 감히 바보 흉내를 낸다. 바보는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바보’ 진정한 바보는 지금 법정에서 바보 인척하는 바보들이 아니라 진정한 바보는 바보를 구분 못하는 우리들일지 모른다. |
혁 명
동학혁명 최제우의 “천심 즉 민심”,“인시천”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 ‘동학“이다. 임금이라는 절대권력에 지배당한 국가는 한지방에 파견된 탐관오리 가렴주구를 자행하니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핍박하고 갈취하며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던 시기에 최제우의 동학은 총대장 전봉준을 필두로 총궐기 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파렴치한 탐관오리를 벌하며 승승장구하다 끝말에는 국가(조선고종)로부터 협약서까지 체결하게 되어 모양새를 갖출즈음 불현 듯 나타난 일본군의 토벌에 의거 처참하게 몰살 당하게 된다. “천심이 민심” 피로 얼룩진 대지위에 새겨진 그 글자는 백성이 ‘자유“라는 단어보다 더한 생명의 근원과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였으니 조상들의 처절한 민족얼이 한갓 왜구들에 의해 꺽이고 마니 일본침탈의 서두가 시작된지도 모른다. 우리의 독림운동은 그때부터 일본과 처절히 시작되였던 것이다. 만약 동학혁명에서 전봉준이 일본군을 무찔렀다면 현대사는 완전히 바뀌었을지 모른다. “천심은 민심” 영원히 기억될 필언이다. 서민과 백성과 근로자와 아낙네와 장사치들이 아는 문구를 어찌 다른이들은 모른단 말인가? “서학혁명” 동학혁명에 반한 단어이다. 아니 생소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조상들은 17세기초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며 “서학”에 심취하게 된다. 조선시국은 전통적인 유교,성리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공자의 유교사상인 “사서삼경”의 지침서에 의해 양반과 상놈(백성)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문물의 출현은 미개하기만 한 주위환경을 변화시켰고 양반 상놈없이 전부 별천지에 놀라워 하였다. 그때 양반,상놈의 신분제도에 반한 천주교의 전파는 임금이건,양반이건 오로지 “하느님”만 찬양함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세력들이 그들을 탄압하고 처형하기에 이른다. 서학혁명 그것은 동학혁명에서 이끌던 사상보다 더한 신분의 평등함을 외치고 하늘아래 신이라는 존귀함에 수긍하고 복종하라 하니 서학혁명은 시대적 소명에 부합한 인간의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오늘 시점 되새겨 본다. 동학혁명과 서학혁명이 완성된 현시대에서 무슨 혁명이 필요하랴? 사실 우리에게는 혁명은 필요없습니다. 피로 물들인 동학,서학혁명을 실천하고 깨우침만 있으면 됩니다. 더 이상 혁명은 없을 겁니다. “천심 즉 민심” 실천만 있을 뿐입니다. |
I (나)
영어의 불합리성. 영어는 세계 통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영어 단어중에 모순점이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괘변일수도 있다. 보편 타당성에 부합한 작대일지 모르나 영어에는 우리 관습과 예우에 어긋나기 아래와 같이 지적하는 바입니다. 부적절하고 착시적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나로서는 시정되여야 할 단어이다. “ I am a boy” “ You are a girl” “ We a friends” 모든 단어의 기준이 되는 1인칭,2인칭,3인칭 우리말로 치면 “ 나는 소년이다.” “ 너는 소녀이다” “ 우리는 친구다.” 그런데 1인칭 표기인 “나”는 나를 지칭하고 내가 아닌 다른이들을 “너”라 칭하고 내가 포함된 집단을 “우리”라고 표기한다. 한국어도 굳이 1,2,3 인칭으로 지적하지는 않으나 한국어는 표현력이 무궁무진하다. “당신”,“자신”,“여러분”,“자기”,“동지”,“동포”등등 그러나 내가 한국말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단어는 “혈연”이라는 단어이다. “가족”,“식구”,“친지”,“자식”,“부모”의 기초가 되는 ‘혈연“이라는 단어. 애지당초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세포에서 파생된 나는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구석기시대 “씨족사회”의 근간이 서서히 파쇄되고 “핵가족”으로 분리되여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 살게 되었다. 제1세대의 고독한 홀로서기. 제2세대의 제사상 올리기. 제3세대의 가족 만들기 각각 분리된채 세상을 영위한다. 한가족이 모일시는 잔치날이 되고 서로 아쉬워하며 생이별하곤 한다. 애지당초 “나”라는 일인칭 단어는 없었다. “가족”에서 시작된 나는 불현히 독립선언을 하고 별거에 들어가고 생이별한채 인생을 살아갈지 모른다. 나는 애지당초 없었다. “나”라는 단어는 이기주의다. “나”라는 단어는 과도한 독립체이다 “나”라는 단어는 사치이다. “가족” 그 단어가 바로 일인칭인 “나 (영어로 ‘I’ )인 것이다. |
퍼 즐 게 임
퍼즐게임. 퍼즐 맞추기. 요사이 나는 페즐게임에 심취한다. 모양이나 색깔을 분석하여 갈갈이 분해된 100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형체를 완성함에 만족해한다. 심지어는 시간단축을 위해 몇초를 다투기도 한다. 퍼즐게임. 100조각 난 것을 제자리로 만들어 완성된 형체를 만들려니 100조각으로 분해되기 이전 형체를 기억해본다. 그 형체. 꽃모양이건, 동물모양이건, 풍경화건 본연의 모습을 기억하며 아니 상상하며 퍼즐을 맞추어 본다. 최단시간 5분25초,최장시간 14분36초, 100개의 퍼즐조각 맞추는데 소비한 시간. 그 시간이 지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시 나는 흡족해한다. 우린 조각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린 분해된 세상에 살고 있다. 조각난 추억들 인생 굴레속에서 짜맞추며, 조각난 희망들 절망속에서 짜맞추며 조각난 사람들 사진속에서 더듬어 본다. 조각난 과거 본드로 땜질하고 조각난 현실 테잎로 붙혀보고 조각난 미래 없을법 한다. 우린 퍼즐게임을 즐긴다. 조각난 형체를 제모습으로 만드는데 많은 정성을 기린다. 조각난 조국. 조각난 한반도. 조각난 이웃. 조각난 지역감정. 조각난 삶. 조각난 인생. 조각난 청춘. 조각난 추억, 우린 지금 100조각 퍼즐을 맞추며 퍼즐게임에 미쳐 쪼개진 퍼즐들을 붙잡고 밤을 짓개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
겨 울 꽃
팔레놉시스. 빨간꽃망울 터트리며 웃고 있다. 푸른 잎사귀 보호아래 우뚝 솟은 빨간색. 신부 연지꼭지처럼 신비롭기만 하다. 군자란. 분홍색채 드리우며 살포시 고개든다. 널따란 색채 수십갈래 뻗질소니 공간이 협소하기만 하다. 마음으로 전달되는 저녁노을 햇살아래 분홍색의 우와함에 넔을 잃고 만다. 티보치나. 보라색 물결 해초인양 너울댄다. 넓은 초원에 있을법한 광경이 상상된다. 빨간과 파란색의 조화가 무지개처럼 솓구친다. 향기에 묻힌 사랑이 샘솟고 다정한 손짓에 유혹 뿌리친다. 사랑스러운 꽃들이 봄의 언덕처럼 화려하다. 겨울바람 드세게 불어오고 눈꽃이 만개한 야산의 전경. 유리창 넘어 드리우며 향긋한 정원 어울린다. 내복입은 인간들 비아냥 거리며 늘씬한 몸매 자랑한다. 겨울에 살아나는 고결함에 잠시 봄인양 착각한다. 유리창 넘어 햇살 일광욕 즐기며 썬텐자국 드리운다. 한겨울. 봄을 기다리는 만생들에게 꽃들로 답례하니 어는이 봄꽃을 기다리뇨. 사는 세상 끝자락 없을시고 ,추운 겨울 보담으며 생의 절정 이루고니 겨울꽃은 길고도 긴 겨울밤을 홀로 새고 있을 것이다. 그 겨울꽃 앞에 거실바닥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꽃을 쳐다본다. 옹아림에 꽃을 쳐다보고 아기미소 꽃들이 손짓한다. 그들은 추운 한겨울을 같이 지내고 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한겨울을 날고 있었다. 차디찬 겨울바람 불어오는 한겨울. 빨강,분홍,보라색이 만연한 겨울꽃 곁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아기는 바로 한 살배기 외손녀 “ 채담이”였다. |
송 인 서 림
송인서림. 국내 출판사의 양대산맥인 유통업체의 몰락. 조선업체의 붕괴 못지 않은 세기의 반란이었다. 파주의 출판단지가 요동친다. 글을 쓰고 문학예술이라는 칭송을 받은 시와 수필과 소설과 전문서적이 사라졌다. 인간만이 누릴수 있는 찬의 진미가 사라졌다. 인간들이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사라진 것이다. 연예편지와 같은 처절한 단어가 없어졌다. 세상만담이 아름다운 풍광이 신기루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사랑과 미움과 질투와 믿음의 징검다리가 붕괴된 것이다. 누가 글을 쓰고 누가 문학이라는 굴레속에 같혀 가난이라는 미명아래 펜대를 잡을거뇨. 우린 포기한 것이다. 책쓰는 것을 패댕이치고, 책읽는 것을 포기한다. 인간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시켜 주던 유일한 활자의 몰락은 훈민정음의 몰락을 예언하기도 한다. 송인서림. 청계천 헌책방에 쌓인 책들을 뒤져 본다. 인간사와 상생한 역사의 메아리가 공동묘지 같은 헌책방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메만지는 동화책이 인간사의 시작이거늘, 우린 흔한 동화책 보는 아기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사늘한 세상. 선남선녀 넘쳐나고 연속극,영화,연극 넘쳐나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음유이 세상을 공유한다우린 책을 던져버렸다. 우린 동화책을 집어 던졌다. 우린 훈민정을 잃어버렸다. 가냘픈 피리소리가 계곡에서 들려온다. 누가 부는 피리소리이뇨. 우린 귀를 기울여 본다. 누가 글을 쓴다. 누가 이야기 한다. 우린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송인서림의 몰락 쓰레기통에 쳐박힌 수많은 책들이 진화된 우리들이 선택한 냉엄한 현실이었다. 나의 글도 송인서림처럼 몰락되는 것은 아닐는지 반문해 본다. |
도 담 삼 봉(島潭三峰)
단양 도담삼봉(島潭三峰) 단양 팔경의 제1경이요 남한강의 명소로다. 월악산과 어울린 풍경이 극치를 이루니 새가 쉬어가고 강물이 머무는 모습이 이어진다. 호수인양 평온한 물결에 세 개의 봉우리 우뚝 솟아나니 섬인양 무인도인양 신비롭다. 늘어진 그림자 버들가지 어울리고 햇빛에 동냥한양 물고기 기웃거리고 달빛에 부탁하니 반딧불 찬란하다. 물소리 잔잔하니 평야요, 바람소리 고요하니 산중턱이로다. 구름이 갈길 멈추고 별들이 물길위에 넘실댄다. 남한강에 어울린 세봉우리가 수백년 아닌 수천년을 결속한다. 변심하는이 없고 홍수에 떠밀려 내려가는 이없이 두손 꼭잡고 못난이 삼형제처럼 차디찬 물위에서 수천년을 이어온다. 도담삼봉(島潭三峰) 어찌 들으면 이성계와 더불어 이조시대 창시자인 정도전의 호인 “삼봉”을 떠올린다. “삼봉(三峰)” 세 개의 봉우리 칭하는 명사거니 어찌 500년 이조시대를 창궐한 이성계의 참모가 단순한 칭호인 삼봉(三峰)을 호로 칭하리오. 도담삼봉은 정도전한테는 고향 같았다. 아니 팔도강산 어울리며 강가에 어울린 삼형제의 섬아닌 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바다위에 어울린 무수한 섬들보다 그들은 초라해 보였다. 드넓은 바다에 우렁찬 섬들보다 도담삼봉은 왜소해 보였다. 남한강 가로막으며 삼형제 바지저고리 걷어올리듯 굿굿이 솟아난 도담삼봉이 남한강 어울린 풍치에 반해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칭한다. 도담(島潭)삼봉은 장군봉(남편봉).첩봉(딸봉),처봉(아들봉)으로 어울린다. 정도전이 단양의 도담삼봉에 반해 추후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칭하라 하니 정도전의 도담삼봉 사랑은 유별났다. 그런데 이때 나는 또다른 역사 아닌 추리를 하여본다. “도담삼봉(島潭三峰)” 왜 절대 사상가이고 지략가이며 한때 역사를 창궐한 권력가가 아이러니하게 세 개의 봉우리라는 “삼봉(三峰)”으로 호를 칭하였을까? 그 해답은 간단하였다. 물론 역사학자가 보면 괘변일지 모르나 한마디 하고 싶다. “도담삼봉(島潭三峰)” 정도전의 호인 “삼봉”을 제외한 앞의 두글자 “도담(島潭)”에 담긴 것을 알수 있다. “도담(島潭)‘ 한자로 풀이하면 “법이 있는 못”이라는 뜻이다. “도(島)‘는 ”법“도요 “담(潭)”은 “못”이라는 뜻. 즉 “법이 담긴 못”이요 그곳에 세 개의 봉우리가 어울리니 그것이 단양팔경의 절경비경 도담삼봉인 것이다. 정도전의 호로 칭하는 단양의 도담삼봉 우린 한번 가보세나. 그럴시면 우리는 달빛에 사라진 남한강에서 정도전의 혼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구정(舊正)
흑백논리. 아나로그 사진인 색바랜 흑백사진을 우린 간직하고 있다. 후지,코닥필림 24장짜리 필림 넣은 캐논카메라 앞에 우쭐대며 찍은 초딩,중딩,고딩사진 찍은 영상을 앨범에 간직하고 있다. 어린시절. 흑백사진 한장 없기 망각과 싸우며 기억한다. 사진 필림 한정판에 중요한 포인트만 클로즈업한 간절한 그시절에 사진한장 찍을시면 필림 및 현상비용 때문에 특별한 경우이왼 독사진을 용납하지 않던 시절. 현시점에서 볼시 막연할 수 있으나 우린 필시 흑백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칼라사진을 수만번 찍을 수 있는 말도 않되는 현실에서 색맹인 강아지처럼 우린 과거지사 세상을 흑백논리에 강매당하며 살았던 것이다. 추후 세상은 변하였다. 어르신들이 볼법한 증기기차 사라지듯 우린 흑백사진을 잊어버렸다. 그때 세상을 뒤집어보니 애지당초 우리는 강아지였다. 색맹인 강아지 시야처럼 우린 흑백에 익숙하였다. 바둑판에 흑백다툼처럼 우린 검정과 흰색, 회색에 친근하였다. 티브이도 흑백이요 사진도 흑백이요 조간,석간신문도 흑백이였다. 어느날 우린 칼라티브이를 보며 즐거워하였고 코닥,후지필림의 도움으로 칼라사진을 가지게 되었다. 색채의 현실을 간직하고 영화나 명화에서 볼법한 세상을 무한정 기록한다. 24장짜리 필림이 웬말이뇨,,, 후지필림이 무엇이뇨,,, 무한리필 가능한 칼라사진기 들고 다니니 세상은 요지경으로 변한다. 그때 우린 흑백에 휘말리게 된다. 사상개념이 아닌 르네상스 현실에 무슨 흑백 논하리오. 서기 2017년 새해 (예수님의 탄생시점)을 얼마전 맞이하였거니 단군기원 2333년을 잊어버리고 2017년을 기억한다. 그리고 새해 지난지 몇일 않되였건만 우린 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구정(舊正) 한자풀이 하면 “옛정”이란 뜻. 우리의 흑백사진은 지금도 작동되고 있었다. 모두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게나,,,, |
고 사 목
태백산 고사목. 살아서 죽거니 죽거니 살아있는 나무. 겨울 찬바람 불어오니 얼음덩어리처럼 하얗게 변한다. 높은산 잘못 터전에 짧은 여생 드리우며 뼈다귀 들어낸채 동상걸린 팔다리 을씨년스레 속살 드리운다. 영하 수십도 예사요. 편한 모습 구름밑에 펼쳐지니 하늘아래 신선이로다. 눈꽃에 뭍혀 겨울을 탐미하고 겨울을 간직하는 정조에 죽은나무 사의 찬미요 하얀 세상 덧없음에 높은 세상 당연시 한다. 묻혀진 세상. 겨울의 고통 홀로 느끼며 계곡 만생 위로한다. 겨울잠 자는 기회주의 꾸지람하며 홀로 눈바람 버텨낸다. 살아서 죽은 생명체위에 굿굿이 자신의 위치 지키며 자신은 죽어간다. 아니 죽어서도 살은척한다. 태백산 고사목. 함백산 마주하며 강원도의 겨울 버텨낸다. 우린 죽은 나무를 보고 고사목이라 한다. 그런데 유독 태백산의 고사목을 서리 얽힌 덕유산 상고대 취급하듯 풍유하는 것은 아닐는지,, 태백산의 고사목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품위를 유지함에 죽어서도 대지에 굿굿이 서잇는 나무들이 테백산 능선에 즐비하다. 미이라처럼 붕대감고 있는 고사목이 태백산을 지킨다. 죽어서도 살은척. 살아서도 죽은척. 태백산 정상가며 어울리는 고목들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른다. 두리뭉실 떠오르는 태양아래 구름은 보이질 않고 하얀세상 펼쳐진다. 살을 에는 바람 불어오고 눈길에 귀우뚱거린다. 태백산은 하늘아래 있었다. 강원도 태백산맥의 줄기러니 태백산은 세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민족의 얼 담긴 태백산은 한겨울 울고 있었다. 죽은 나무 고사목이 살아있는 나무들과 어울려 한겨울을 살고 있었다. 차디찬 영하 수십도의 찬바람이 부는 태백산. 중턱에서 아침햇살 맞으며 빛나고 있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한겨울 바람막이하며 태백산 중턱에서 고사목을 보았다. 태백산의 고사목.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태백산 고사목은 어제 정유년 구정맞이 새해 세배드린 어머님,아버님 이었다. |
정치(政治)
정치(政治) 국가의 권력을 잡고 행위하는 일을 정치라 한다. 소세지랑 정치는 생성되는 것을 몰라야 한다고 한다. 난잡힌 권모술수 판치고 상대정당 제압하기 위한 음모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역사책에 나올법한 역적과 간신들이 정치권에 들끓은다. 백성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절대권력. 수백만 공무원을 신하로 두고 ,수십만 군인 운명을 거머쥔 절대숭배자인 네로황제로다. 현실의 민주국가. 그리스의 솔론이 주장한 민주국가 라기에는 모호하다. 평화 깃든 비둘기 사라진지 오래고 까마귀떼 들판에 떠돌고 있다. 우린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뽑은 것이다. 내시에 버금가는 보좌관 거느리고 아방궁 버금가는 옛조상 유적지 위에 또 다른 임금터인양 북악산 38선 긋고 산전체를 성역화하며 통제한다. 정도전이 만든 경복궁 뒤에 걸터 앉아 이조시대 임금인양 왕관쓰고 근정전옆에 군림한다. 전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조상얼기린 고궁에 대통령 관저 만드는 괴이한 일은 없다. 조상의 얼이 깃든 유적공간에 대통령 관저라니... 그럼 지금의 대통령 관저는 경복궁인가,창덕궁인가,덕수궁인가. 세상천지 이조시대 임금관저에 버젓이 임금행세하는 관저가 또생겨난 것이다.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光化門) 을 필두로 “빛이 된다.”라는 광화문이 외국인 절대 관광코스이거니 어찌 이조시대 정도전이 만든 경복궁 옆에 또다른 궁(?)을 만들었을꼬,,, 정치(政治) 다스린다는 두단어가 오늘따라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우린 몇 년마다 임금을 선출한다. 그리고 수많은 내시들을 양생한다. 우린 인간성에 대한 검증없이 추상적인 관상이나 군중여론에 휩쓸려 임금을 선출한다. 그 임금은 대통령이란 감투를 쓰고 경복궁 근정전에서 수많은 내시들을 거느리고 우릴 통치한다. 그리고 우린 경복궁 근정전을 거닐며 또다른 근정전을 담장옆에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치(政治) 그 단어를 뒤집으면 “치정(癡情)” 한자풀이하면 “어리석은 정” 단어 해석하면 “ 남녀간에 생기는 온갖 정” 이라 칭한다. 정치 어찌보면 거꾸로 읽는 “치정”,‘정치“ 두단어가 일맥상통함은 나혼자만의 생각일까..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앞에서 홀로 지껄여 본다. |
알 코 올
피부에 상처를 입을시 우린 에탄올로 소독한다. 슆게 이야기해서 알코올로 소독한다. 피부 점막의 수렴작용 및 살균작용에 사용되는 알코올. 과산화수소, 포비돈요오드(빨간약)으로 상처부위 치료하는 치료제와 더불어 상처부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알코올. 어느때부터 알코올을 융해해 물에 희석하여 마시기 시작한다. 살균제로 인지한 알코올을 물에 섞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수소가 하이드록시기로 변환하였다는 알코올. 그것을 마시기 시작한다. 누룩곰팡이 효모를 이용한 막걸리. 곡주나 고구마주를 끓여서 만든 소주. 잘익은 포도의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 와인. 맥아를 주원료로 당화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위스키. 프랑스 코냐크지방에서 생산되는 코냑. 당밀이나 사탕수수즙을 발효시켜 만든 럼주.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고량주. 모두 술이라는 미명아래 알코올 본연의 명칭을 잊게 한다. 술한잔 걸치니 호연지기 느끼고 아이러니하게 마음의 상처를 무심코 소독하였는지 모른다. 고뇌속에 묵과된 세상만사가 아픔의 고통속에 산불의 소화기 자청한다. 기쁨에 환희에 슬픔에 괴로움에 불타오른 희노애락의 입술가에 자연스레 어울린다. 깨진 독 없을시고 위속에서 증발되여 버리는 알코올. 약국에서 소독제로 쓰는 알코올을 마셔대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처방전도 없이 알코올로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총알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낙오된 상이병처럼 밀림(도시)속에서 약육강식 속 연명하며 속절없이 상이군인 되고 만다. 알코올이 외부상처를 소독하듯 내부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나는 생각해 본다. 소주,맥주,양주를 마트에서 판매할 것이 아니라 소독제로 판매되는 알코올과 더불어 약국에서 판매함이 어떨는지.. 소주 한잔 걸치며 넉두리하여 본다. |
아 마 조 네 스
아마조네스. 여전사로 이루어진 부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족이다. 남자아기 태어나면 죽이고 노예로 만들어 버린 절대권력 여왕의 권세가 부족을 장악하고, 여인들이 부족을 정복한 세상이었다. 허잡한 남자들은 여인들에 복종당하고 성역화된 그곳에 생존하지 못하였다. 여인들이 만든 세상.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 아마존은 그리스어로 “ 젓이 없다”는 뜻으로 여인의 한쪽 유방을 제거하였다는데 어위를 가진다. “아마조네스” 아킬레우스 창에 죽임을 당할때까지 그리스를 평정한 전설속의 부족이었다. 아마조네스. 아킬레우스 창에 죽임을 당한 펜테실레디아. 주인 지금 죽임을 당하기 이전 펜테실레디아가 생존한 아마조네스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아님 여왕벌에 순종하는 일벌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우린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자의건 타의건 아마조네스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인들의 울부짖음이 아우성치는 현실에서 아마조네스의 남자처럼 묵묵히 쳐다볼뿐이다. 아킬레우스의 창. 누가 그 창을 들고 현실속에서 던져보리오. |
부 패 와 발 효
버려진 마음 추수리다 나그네를 만난다. 덩그러이 놓인 장독대에서 곰팡이 피어나는 고추장을 맞이한다. 부패가 승화되여 발효라는 화학반응에 삮힌 홍어를 먹는 향토음식처럼 우리의 밥상은 부패된 음식으로 이루어진다. 부패된 음식하니 식중독에 걸릴법 하나 부패가 진행된 김치.메주,된장,간장,막걸리,고추장. 조상대대로 이여진 토속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고 심지어는 신토불이 운운하며 전통음식으로 추대하며 우쭐하기도 한다. “부패와 발효” 두 단어의 하이는 무엇일까? “부패”와 “발효”는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이 분해되는 화학적 반응이다. 사전 뒤적임에 두단어의 차이점은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럼 “부패”와 “발효”의 차이는 무엇일까? 별도로 첨가 없을거고 우리 기준점에 무엇이 발효고 부패란 말인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된장과 고추장과 김치와 막걸리는 전부 “균덩어리” 인 것이다. 몸속에 존재하는 균덩어리들과 조화가 이루어지니 우린 균덩어리를 매일 먹고 있는지 모른다. 작은창자와 큰창자에 존재하는 균들이 우리 몸속에서 보초병 되어 불신검문하며 엄격한 통제를 한다. 균들은 존재한다. 아니 “박테리아” 눈에 보이질 않는 균덩어리들을 매일 먹어대는 우리는 막걸리에 김치 한조각 먹어대고 된장찌개에 콧잔등 대어본다. 향긋한 균들의 향연이 펼쳐지니 곰팡이 어울린 고추장에 청양고추 찍어 먹어본다. 우린 부패를 먹고 산 것이다. 우린 발효를 먹고 산 것이다. 부패척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이다. 발효척결. 이런말은 생전 듣도 못한 말이다. 지금 우리는 부패된 음식인 김치와 된장과 막걸리와 고추장과 젓갈 먹으며 “발효된 나라”가 아닌 “부패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문경새재 계곡아래 주막 한견에 앉아 김치조각에 막걸리 걸치는 나그네. 한겨울 부패디고 발효된 ‘김장김치’ 먹고 있는 나그네. 썩은 균덩어리를 먹고 있는 이는 바로 “ 나” 였네. |
꿈
뭉개진 이부자리에서 하늘을 쳐다본다. 직립함에 등안시하며 숲이 아닌 빌딩속에서 헤매인다. 잠을 청한다. 기우뚱한 각도없이 직각으로 어울린 콘크리이트더미에 휘들려 자유로이 늘어진 나뭇가지 모름쇠하고 휘영청 구부러진 어르신 잊어버린다. 가물어진 삼일빌딩 알지못하고 롯데월드 쳐다본다. 한강기적 어디가고 한강다리 지천이다. 당인리 발전소 신수동에서 생존하고 남산 케이블카 명동옆으로 오간다. 세검정 개울 사라지고 평창동 고저 북한산 아래 마을 이루고 창신동 불빛 찬란하다. 남대문 장사치들 김두한 기억하고 효창운동장 찾는이 없다. 장충체육관 재개발 하려하고 동대문운동장 사라진지 오래다. 뚝섬 경마장 어디가고 마장동 우시장 어디로 갔을까. 삼각지 퍄쇄되고 남대문 재건했다.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군사지역이요 미아리고개 에고니즘 천국일세. 모래내 아는이 없고 벽제 화장터 문전성시로다. 워커힐 쇼의 근원이요 망우리고개 공동묘지 천국이다. 답십리 기차종점이요 마포 고기집의 원조이다. 태릉 스포츠 육사의 시발점이요 서오릉 아는이 없다. 이태원 사멸되고 창경원 추수린다. 뭉개진 세상에서 무심코 쳐다본 세상. 어릴적 어울린 그 모습은 천정에 가려 보이질 않는 하늘의 별빛인양 꿈속에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
국도 3 호
국도의 명칭에 준해 논해본다. 경술국치에 명명한 국도. 일제강점기 판별한 국도의 기준점은 국도,시도,군도로 구분한다. 간선도로의 격자망은 홀수번호인 남북측(종측)과 짝수번호인 동서측(횡측)으로 구분된다. 3번국도. 서울 잠실역에서 김천 남산교차로까지 연계되는 국도로 알고 있으나 철원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3호 국도. 기웃거린 지방도 곁에 두고 남북횡단 준비한다. 국토 지칭함에 아파트호수 지칭하듯 번호 있으니 고속도로 텃세에 체면 구긴다. 국도의 몰락이 고속도로 시기하고 지방도의 텃세가 국도에서 텃세 부린다. 번지수 찾듯 숫자매김 엄연하니 네비게이션 행정구역 지껄임에 길거리 우체부 된채 내가 사는 집구석 기웃거리듯 길거리 나를 숫자로 표시한다. 경도 36.782 위도 26.327 어제 국도 3호선을 지나며,,,, |
별
별이 사라졌다. 도심의 하늘은 커다란 커텐을 펼쳐놓은 듯 회색빛으로 빛나고 반달만 얼굴을 내밀고 기웃거린다. 북두칠성,오리온,북극성,리겔,미라,스피카,베가,시리우스,이오,,,,,,, 인류보다 더많은 별들이 사라졌다. 나침판 역할을 하던 북극성. 견우와 직녀의 베가와 알타이르.‘ 오리온자리의 리겔, 밝기가 변하는 미라. 이루헤아릴수 없는 별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그많은 별들은 어디로 갔을꼬,,, 꿈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암흑을 화려하게 수놓아준 별들은 어디가고 가로등이 도시를 밝혀준다. 우린 잃어 버린 것이다. 반딧불보다 더한 생명이 광영을 가르쳐준 빛의 터전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동굴같은 암흑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혜성이 사라지고 북극성이 사라지고 견우와 직녀가 사라진 사막같은 밤하늘을 쳐다본다. 우린 빛을 잃어버린 박쥐처럼 동굴속을 헤맨다. 삭막한 도시. 별들이 숨어버린 밤하늘에 묵묵히 잠을 청한다. 그러다 꿈속에서나 볼법한 별을 찾게 된다. 우리를 떠날줄만 알았던 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은하수의 찬란함이 큰곰자리,작은곰자리,세페우스,카시오페이아,사자자리,쳐녀자리,독수리자리,물고기자리, 수많은 별들을 만나게 된다. 태양의 찬란한 빛이 산산조각이 나서 밤하늘에 펼쳐진다. 산산조각난 유리조각들이 무명의 빛으로 수놓는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물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밤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별은 우리곁을 떠나지 않았다. 별은 우리곁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도심에 커텐을 쳤을뿐,, 별은 매일 우리를 쳐다복 있었다. 나는 보았다. 공해와 오염으로 휩싸인 도심을 빠져나와 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우린 도심속에서 평생 별빛 한번 못보고 사라질지 모른다.
|
쥐 불 놀 이
깡통에 불씨놓고 원형돌리며 쥐불놀이 하여본다. 둥그런 원형이 칠판에 분필로 낙서하듯 선명하다. 붉은빛의 원형이 자동차바퀴처럼 움직인다. 윙윙 소리 우렁차고 허공에 휘저은 낙서가 요동치고 둥그런 원형은 새벽안개처럼 사라진다. 논두렁 밭두렁에 마른풀 불짚이고 두리둥실 어울려 어깨춤 추어본다. 입춘대길 멀었거니 우수,경칩,춘분 24절기 남았거니 입춘대길 봄이 온양 논두렁밭두렁에 보름달아래서 불잔치를 벌인다. 나는 오늘 보았다.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로 들썩이던 해안선근처 마른짚이 타는 모닥불에서 사랑으로 풍만한 한쌍의 불빛을 보았다. 사랑에 눈멀고 사랑에 귀멀고 사랑에 입다문 장님이고 귀머거리가 된 보름달을 보았다. 원형 불빛속에 어울리는 얼굴추상하며 사랑의 향연 펼쳐본다. 부서진 파도처럼 사라진 태양처럼 한쌍의 불빛을 위해 나의 불빛을 꺼버린 오늘. 무엇이 보름달인지 알수 없는 하루였다. “김종학” 딸네미 결혼 축하하네. 친구.. |
매 화 꽃
깊어진 겨울속에 입춘 지나거니 제주도 매화꽃 연분홍빛 드리운다. 하얀색 눈살속에 숨어 수줍음 타는 매화꽃. 암행어사 출두요 머리치장으로 유별나다. 사군자에 으뜸인 매화가 부리나케 피어난다. 분홍색 살색 드리우며 살포시 어깨폼 우쭐인다. 수백년 깊은잠에서 깨어난 백설공주처럼 난장이 찾아본다. 햇살이 비추어 곱상한 화장치 도와주고 살포시 눈꺼풀 드리우며 매화꽃 찾아본다. 한겨울 꽃을 찾는 나비가 되어본다. 늦겨울 꽃을 찾는 눈이 되어본다. 하얀 세상 만들 유일한 하루가 지나버리고 우린 겨울을 잊어버린다. 총천연색의 파티가 펼쳐진 봄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매화꽃은 묵묵히 늦겨울에 꽃을 피운다, 분홍색 얼굴에 연지꼭지 바른 색시처럼 늦겨울 매화꽃은 피고 만다. 그리고 얼마후 매화꽃을 갓에 꽂고 나타난 천군을 만나게 되니 매화꽃은 한겨울의 우상으로 매화꽃은 사군자의 으뜸으로 매화꽃은 승화된 꽃으로 이야기한다. 친구 “최용철”의 딸네미 결혼식에 즈음하여 |
한 여 인
목두리하고 두툼한 반조끼에 신발신고 떠들어대는 여인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다. 그 여인은 생얼을 하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생긋 웃으며 지나는 이를 넌지시 쳐다본다. 음지의 빙판에서 엉덩방아 찧으며 넘어지고 부리나케 일어나서 창피스러운지 빙긋 웃고 만다. 다소곳 두손 털으며 아무일 없는 것처럼 시치미 뗀다. 여인은 푸른창공을 쳐다보며 무엇이라 속삭였고 바삐 어디로 사라진다. 여인은 무척 상냥하였다. 검은 바지, 빨간 상의에 노란조끼 입고 회색 목두리 하니 새삼스레 하얀피부를 간직한 뽀얀 얼굴이 새큼하기만 하다. 잠시후 그 여인은 다시 나타나 부리나케 내손을 잡고 씽긋 웃고 만다. 무엇이여,,, 아니 처녀가 아무한테나 손을 잡자고 하다니,, 나는 무심코 여인의 손을 잡고 만다. 그 여인의 손은 너무나 따스하였다. 연예시절 어울린 안해의 손보다 더 따스하고 포근한 체온이 내손으로 전달된다. 그 여인은 다시 무어라고 떠들어댄다. 티없는 눈망울이 호수처럼 고요하였고, 두뺨은 건성 파운데이션을 바른 것처럼 사랑스러 보였다. 그 여인은 길을 몰랐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꽃사슴처럼 총명한 눈빛을 나한테 나의 안내를 요구하였다. 그 여인은 세상을 보고 싶어하였다. 드넓은 천지를 유람하고 싶어했다. 그때 가냘픈 여인이 무엇이라 이야기하며 나한테 속삭인다. 나는 그말을 듣지 못한다. 그 여인은 서운한지 내손을 뿌리치고 저멀리 사라진다. 나는 무심코 그 여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소리친다. “ 정민아 할아버지한테 오세요.“ |
헛 소 리
늘어서 슬프리오 청춘이 무너진다. 무릎관절 작동하니 한숨 쉬어본다. 살아서 아프리오. 오장육보 견실하니 술한잔 걸쳐본다. 썬글라스 걸치려고 안경점 찾아가다 돋보기 사고만다. 산신령 꿈속에 보이고니 흰수염 거덜대고 흰백발 보이니 내가 산신령이로다. 새벽녘 설잠깨어 두리번 거리니 안해가 티브이 보고 있다. 뇌출혈 무서워 금연하다 모닥불 피우고 , 심장마비 두려워 배낭메고 산행길 오르다 막걸리 한잔 걸친다.하여 새벽공기 사늘하여 전기장판에 등짝 걸쳐보고 선잠 청하니 새벽닭 울고 있다. 못다한 인생 바느질 하다보니 양말 한 켤레 잃어버리고 만다. 걸축한 소리 들릴시고 귀를 기울이니 손녀 웃음소리 생생하다. 사라진 골목길 찾아 헤매이다 파출소 가고만다. 잃버버린 추억찾아 청계천 책방 헤매이다 장롱속 흑백앨범 뒤적인다. 사라진 사람들 머릿속에 뚜렷하고 사라질 사람들 주위에 득실거린다. 이조시대 왕족변천 조선왕조실록 헤아리다 내 족보 잃어버린다. 미쳐버린 세상살다 정신병동 면회가니 우리가 정신병자다. 늙어짐에 소외하고 젊음에 점령당하니 죽은자가 부러워한다. 철면피 얼굴에 세포파괴 진행되니 떡덜신 응급환자 간 쓸개 확인한다. 묻고 답하고 답하고 물으니 법정다툼 치열하다 무인도에 가본다. 사는자 죽을시고 죽은자 영원하다. 죽은자 불멸이요 사는자 시간폭탄이다. 짧은 여생 드리우며 비단걸친 양반 부러움에 한평생 선망하다 길고도 긴 여생 사는 방법 어찌 모른척 하리오. 짧은 여생 포기하고 긴여생 살수있거니 우린 그것을 포기한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평가하고 그가 죽은후에는 후손들이 조상을 평가한다. 우린 살아생전 흔적을 남긴다. 사진이건,동영상이건,재물이건,후손이건,추억이건,, 후손들은 영정사진 앞세우고 조상얼 드리운다. 우린 육신을 오래보존하여 장수하려 하나 우린 영혼의세계 즉 정신의 세계를 오래도록 장수하고 보존하는데는 등안시하고 있다. 환갑,칠순,팔순에 버금가는 우리의 영혼은 정녕 육신과 같이 사멸되는 것은 너무나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사진 몇장을 남길지언정 내 영혼의 정신적 사진 (글)은 수만장을 남길 것이다. |
뇌
요동치는 맥박이 심장에서 전달된다. 수도관 같은 혈관으로 피의 공급 원활하여 몸의 각부분에 영양소 배분한다. 너무나 공평한 혈액공급에 평화가 유지되는 공간. 외지인이 침투하면 서로 합심하여 대항하는 백혈구, 쉬지 않고 산소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적혈구.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는 항체가 완벽히 완비된 몸의 내부는 철옹성인 것이다. 우뇌,좌뇌. 몸무게의 1/40을 차지하는 대뇌. 좌뇌사용 많음에 오른손잡이 넘쳐난다. 60~70kg 몸뚱아리에 150g뇌가 온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집단이 중급,하급집단을 통제하고 자연스러움에 자유민주국의 기본의 뿌리처럼 충절한다. 조국,국민 국가 떠들어대는 넥타이부대가 길거리에 넘쳐난다. 입사 시험 치르는 신입사원처럼 순수함과 포옹력을 주장한다. 나는 기억해 본다. 150g 의 뇌세포 덩어리가 몸을 지탱하듯 동학혁명의 지배계급을 몰락된지 언제거니 아직 상놈 아닌 노예위에 우쭐하며 살고있는 150g 의 뇌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니,,, 뇌에 장애가 발생시에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뇌사상태. 우린 뇌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150g 뇌가 70kg 의 몸뚱아리를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오장육보를 비롯하여 장기나 신체중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150g 뇌는 사멸되고 말 것이다. 7~80kg의 몸뚱아리가 150g 의 뇌나 모두 내 몸뚱아리다. |
고 려
김춘주 책략에 민국통일 이룬다. 통일 신라 우쭐함에 백제 고구려 패퇴한다. 추후 타락한 통일신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니 본전이로다. 헝겊조각처럼 갈갈이 찢어진 조국. 바느질하다 헝겊조각 풍지 박산살난다. 통일 신라는 없었다. 애초부터 통일은 없었다. 통일신라 300년이 이조시대 500년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다. 발해가 거란족에 멸족하든 징기스칸 후에에 의한 병자호란으로 단일민족 퇴색되니 왕건이 만든 “고려”가 ‘korea“ 로 칭해진다. 나는 되새겨본다. 500년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이조시대의 칭호는 인지하고 475년 유지한 고려가 몰락함에 정몽주 사육신을 배출함에 고려는 역사기록에서 사라진다. 2002년 월드컵때 부른 ‘korea“ ‘korea“ 지금 우리가 국기 못지않게 칭하는 국호를 칭함에 역사국가를 칭하며 우리도 모르게 매일 ‘korea“ 라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우린 왕건하고 정몽주이왼 고려를 모른다. 아이러니하게 이조시대는 완벽하게 터득한다. 모를시고 단종유배지 청렴포,이순신장군 ,명랑대첩,세종대왕 한글창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칭하는 “고려” 기껏해야 “고려청자”로만 인지하는 무해함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징기스칸 몽골족의 침탈에 상처받고, 병자호란 삼전도 군욕에 강화도로 도피하는 처절한 왕족이였다. 지금 표준어가 된 국호. 우리의 “대한민국” 영어로는 ‘korea“ (코리아) 그 근원은 조선시대가 아닌 태조 왕건이 만든 선죽교 정몽준의 고려이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대한민구 오 필승 코리아 |
묵 시
즐거운 주말.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친구들. 바삐사는 현실속에 헤아려본다. 백일사진 쳐다보고 초등학교 졸업사진 들쳐보고 가족여행 사진 들쳐본다. 새한마리 드넓은 창공으로 날아가 산넘어로 사라진다. 봄이 되면 돌아오려니 우두커니 구름만 쳐다본다. 살아서 남으리오. 내 자식 홀로섬에 이웃지간 박수소리에 내자식 눈물 자국 헤아리지 못했네. |
친 구
친구(親舊) 한자풀이하면“ 옛것이며 친하다”는 직설적. 국어사전에 “ 가깝게 오래사귄 사람”이라 칭하며 거기에는 배려와 용서와 답례와 회신과 희생과 봉사와 희노애락이 인생사에 같이 있을 때 친구라는 단어는 성립된다. 불신하고 의심하고 시기하고 방조하며 경쟁논리 추구하고 자기주장 완벽할땐 친구가 아닌 “지인”으로 변하고, 무시하고 괄시하며 비아냥거리고 상대 발언 무시할시는 ‘ 남“이 되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고 비방하며 적대심을 유발할시는 “지나가는 행인을 넘어 천적”으로 표현한다. 친구(親舊) “옛것이며 친하다는” 한자풀이는 잘못된 것이다.
|
후 삼 국
연개소문 죽음으로 몰락한 고구려. 사육신,선죽교 ,정몽주 피살로 파멸된 고려. 그곳에서 파생되는 죽음의 행진곡은 말레이시아에서 절정을 다한다. 한반도 북한 면적이 22만 km2이고 남한 면적이 10만km2의 소국이 중국의 460km2 대륙에 어울려 숨을 쉰다. 한반도 면적에 44배 달한 대국이 한반도를 쳐다보며 황제로 받들던 동생들이 싸움질하며 이혼하여 각자 살고 있다. 한놈은 형제들간 싸움에 칼부림나고 다른 한 놈은 상반,양반 암투에 하루 편한일 없다. 멀리서보면 이혼한 집구석이 서로 잘살아야 하건만 서로 죽임으로 응징하고 한군데는 법정투쟁하며 헐담하며 아우성이다. 이혼한 부부는 서로 헐담한다. 이혼하면 잘살아야지 왜 그리사노,, 우리들은 이혼하면 잘될줄 알았다. 이혼한 부부간에도 서로 연락하며 어울리고 의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각자 현실에서 한군데서는 혈육상잔 일으키고 한군데서는 보수진보 운운하며 후삼국으로 변하려 한다. 아뿔세라. 민국 쳐다보니 연개소문 어디가고 왕건 사라지니 북방정치 운운한 광개토왕 사라지고 김춘추 으뜸이다. 가물어진 밭두렁에 괭이들고 밭두렁 일구니 상여맨 행인 철원 상여곡 울려퍼진다. 이혼상담소 무엇하노 이호부부 유별나니 재혼상담 아니올소. 세상천지 손가락질 당할시고 형제도륙 일어나고 임금이 백성 등안시하여 촛불민심 들어나니 김춘추가 웃을지어다 연개소문이 울을지어다. 이혼한 남녀 삼팔선 그어놓고 서로 잘살아야 하건만 서로 못잡아 아우성도 모자라 혈육단신 난도질한다. 세상이 웃을지어다. 한국혈통 미개국으로 표현된다. 지식층 타락하고 권력층 팽배하니 몇마디에 현혹된 백성들 쌀지게들고 따라다닌다. 역사는 어디가고 지식층 중얼거린다. 젊은층 우왕좌왕하고 고구려는 저멀리 사라진다. 경주 첨성대가 점령한 지역 어드메쯤 후삼국으로 변할련지 계백장군 5000군사 황산벌에서 부활하며 백마강 뱃놀이 흥겹게 들려온다. |
모 래
백사장에 널려있는 모래를 쳐다본다. 헤아릴수 없는 모래알이 바다를 에워쌓고 있다. 손으로 만질수 없고 일일이 헤아릴수 없는 모래알. 발자국을 만들지언정 파괴할 수 없는 입자들이 모래일지 모른다. 사막바람에 휘날리는 모래를 맞아본다. 천박한 입자들이 세포의 핵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시적인 물질일지 모른다. 닭들이 소화기에 저장하여 음식물을 섭취할 때 소화를 편리하기 위하여 먹어대는 모래. 모래는 시멘트,자갈과 혼합하여 견고한 건축물의 형체를 형성한다. 모래는 자연적으로 잉태된 먹이사슬의 맨밑바닥에 있는 천박한 물질이다. 바위나 흙이 씻기고 깎아져 최소입자로 지구상 강바닥이나 물가에 넌지시 존재한다. 아무쓸모에도 없을법한 모래가 닭의 소화를 도와주는 모래가 변화를 추구한다. 지구상의 절대지존인 철광석과 석유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다. 모래. 한여름 백사장에 널그러진 모래가 없어서는 않될 절대 광물이 된 것이다. 대지를 헤집고 수집하는 다른 광물들 보다 손쉽게 확보되는 모래. 그 모래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창밖의 투명한 풍경을 보이게 하는 유리. 컴퓨터나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반도체. 모두 하찮게 보이는 모래로 만든 것이다. 어는이 “ 모래성을 쌓는다” 고이야기 하든가 모래는 절대지존인 것이다. 모래가 없었다면 지금의 과학은 존재할 수 없을지 모른다. “모래성을 쌓다”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보는 “모래성을 쌓다”는 “세상을 밝혀주는 금자탑을 쌓는다” 고 이야기 하여야 할 것이다. |
손 가 락
젖은 손이 애초로워 잡아본 순간. 대중가요 노래. 1988년 서울 올림픽때 애창곡인 “손에 손잡고” 노래 불러본다. 육체 활동범위중 가장 바쁜 두손. 농사를 지으건, 글을 쓰건, 악수를 하건, 밥을 먹건, 음식을 만들건, 그림을 그리건, 물건을 옮기건,칫솟질하건,의사의 치료행위건, 판사의 방망이건, 스포츠감독의 싸인이건, 손은 우리 몸의 일부거니 쓸모가 무지많다. 하루일과중 삼시세끼를 먹고 운전을 하고 악수를 하며 온몸을 다스리는 두손이 육체에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손. 두손은 열손가락을 형성되며 손가락 나름대로 집게노릇을 비롯하여 많은 일을 소화한다. 나는 생각해 본다. 다섯손가락이 엄지,검지,중지,약지,소지 손가락 하나하나에 친밀하게 명칭을 칭하였을까.. 엄지는 으뜸이요 검지는 집게요 중지는 가운데요 약지는 약손가락 소지는 새끼손가락. 몸뚱아리중 발가락이외 분산된 몸부분을 섬세히 하나하나 호칭함에 몸뚱아리중 손가락의 중대함을 느껴본다. 사실 몸을 지탱하는 열발가락이 몸뚱아리의 기초이다. 그런데 두팔의 손가락을 친밀이 표현함에 의구심을 가져본다. 엄지,검지,중지,약지,소지 다섯손가락의 합법적인 이름이 인정된다. 엄지는 으뜸이요. 검지는 사물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중지는 키가 유별나 무게를 지키고 약지는 심장과 연계되여 약속이나 반지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소지는 막내 칭하며 소박한지라 약조함에 사용하곤 한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우린 하루종일 두팔을 바삐 움직인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럼 우린 하루종일 어느 손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할까.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