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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聲甲乙到旗亭
시의 명성이 최상의 깃발이라도 1)
短唱誰知作晦冥
잠깐 읊다가 묻힐 줄을 뉘 알까? 2)
或以香山爲玉白
백거이의 시를 보배로도 여기고 3)
至吟杜甫視藍靑
혹 두보 경지면 그를 능가한다네. 4)
興衰人物評高下
사람의 흥망은 높낮이로 평하나
哀樂文章異徑庭
애락의 글 솜씨는 크게 다르네. 5)
氷語一篇無秩序
빙어 이 한권 짜임새가 없으니
諸人要讀愧心靈
여러분 부끄러운 마음 이해하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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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기정(到旗亭): 기정은 깃발을 세워 표식을 했던 술집이나 요릿집 같은 곳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깃발의 정자라는 표현으로 높이 올랐다는 비유, 즉 시인의 명성이 갑을(甲乙), 일 이등이라 높이 떨칠 지경이라도.
2) 회명(晦冥): 해나 달이 가려서 빛이 어두컴컴함.
3) 향산(香山): 향산거사(香山居士) 백거이(白居易/ 772-846),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과 같은 명작을 남긴 시인.
4) 지음두보(至吟杜甫): 두보(杜甫/ 712-770)는 이백(李白)과 함께 당나라에서 갑을(甲乙)을 다툴만큼 최고의 두 시인으로 알려져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널리 외워왔다. 그의 시를 아주 잘 왼다면 그를 능가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된다고 평가를 한다는 뜻이다.
5) 경정(徑庭): 크게 다름(very unlike).
6) 괴심령(愧心靈): 부끄러운 마음. 시인이 일생 한시(漢詩)를 지어서 남기는 이 시집을 얼음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의 언어라고 제목을 붙인 ‘빙어(氷語)’를 만년(晩年)에 정리하면서 스스로 겸손히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램이다. 인물의 성공과 실패는 그 지위고하로 평가하지만 희로애락의 표현인 문학은 그와는 크게 다르다며, 세상에 이름난 인물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이 시문을 독자에게 내놓기 부끄럽다며 이해해 달라는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