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피터 메리골드(Peter Marigold)
직업
디자이너이자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주거지
런던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얼마 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맞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리비 셀러스 갤러리(Gallery Libby Sellers)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나뭇결 무늬를 응용한 다양한 탁자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목은 ‘나무 탁자(Wooden Tables)’이지만 실제로는 목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포텐셜 디자인 워크숍(Workshop for Potential Design)이라는 단체가 주관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라는 개념의 오브제 시리즈를 완성했다. 그리고 요즘은 인형의 집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있다. 어린이 박물관(Museum of Childhood)의 전시회를 위한 작업인데, 이전에도 어린이 박물관의 가구 몇 점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현대판 인형의 집을 대거 선보이는 전시로 그중 인형의 집에 들어갈 방 하나를 디자인하는 중이다.
사명
이런. 잘 모르겠다. 학교를 마치고 일에 뛰어들었을 뿐,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아침이면 일어나서 다시 일을 시작할 뿐, 정말이지 계획 같은 건 세워 본 적도 없다.
런던의 리비 셀러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나무 탁자’ 시리즈
(위/ 아래) 메리골드의 최근작인 ‘와사마사와’(Wassamassaw) 가구 시리즈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
어렸을 때인 서너 살 무렵부터 스스로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버튼이나 스위치, 문 같은 것에 정말 관심이 많았고, 물건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 물건의 세계와 하나가 되기를 늘 꿈꿨는데, 결국은 그런 일을 하게 됐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제 마침내 이 길을 걷게 됐다.
교육
원래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미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떠밀리듯이 미술을 전공하게 된 상황이었다. 길을 잘못 든 셈이었고, 결국은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 다시 들어가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 전에 무대 미술이나 소품, 모형, 의상 제작 같은 분야에서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양한 직종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정말 많이 했었다.
첫 직장
디자인 업계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시도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회사에 취직하려고 찾아갔는데, 나한테 광고계로 가보라고 하더라. 참담한 기분이 들어 바로 포기했다. 남의 회사에 들어가기는 글러 먹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내 길을 걷고 있다.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다. 놀라울 만큼 순수한 오브제를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분명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순수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오브제들은 성격이 명확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이다. 그토록 단순한 사물에 묘한 모호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나무 모양’ (Wooden Forms)은 작은 나무토막 하나를 거푸집으로 사용해 만든 석고나 금속 소재의 용기이다.
메리골드의 작업실에서 제작 중인 ‘나무 모양’ 용기
(위/ 아래) ‘팰린드롬’(Palindrome) 시리즈 중 의자, 옷장, 벤치
당신의 일터를 소개한다면?
도둑이 다녀간 현장의 사진을 보면, 바닥에 온갖 물건이 나뒹굴지 않나. 내 작업실이 딱 그 꼴이다. 우리 집 역시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정도로 정말 엉망이다.
컴퓨터를 제외하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드릴인 것 같다. 안 쓰는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이 쓰니까. 내게는 공구에 대한 낭만 같은 게 전혀 없고, 쉽게 얻은 건 쉽게 잃어도 괜찮다는 주의다. 드릴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조언을 요청하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니까 너무 비싼 걸 사지 말라고 얘기해 준다. 괜히 속상해 할 것 없이,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공구를 사는 편이 낫다.
현재의 직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굉장히 융통성 있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 애가 아직 많이 어린데, 아이를 돌봐야 할 경우나 집에 일손이 필요할 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친구들 같은 경우 휴가라도 떠나려면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하던데, 우리는 그냥 상황을 보고 결정하면 된다. 그런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실존주의적인 질문 같다. 오늘처럼 날씨가 정말 엉망인 날, 작업실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다. 기분도 요상한데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그런 날에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럴 땐 나 자신과 싸움을 벌이며, 동기부여를 하려고 애쓴다. 악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런 때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정말 ‘악마의 목소리’란 표현이 틀리지 않다.
‘출혈’(Bleed) 시리즈. 아연 피복을 벗겨낸 철물과 삼나무 목재가 만나 피 흘리는 듯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다.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밤 10시 30분쯤이면 곯아 떨어지는 짜증스러운 생활이 지난 2, 3년간 계속되고 있다.
할 일을 미루고 꾸물댈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아주 열심히 딴짓을 한다. 예전엔 식이 장애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오트밀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었는데, 그게 내게는 일종의 현실 도피책이었다. 이제는 집안에 오트밀을 아예 두지 않으려고 하지만, 요즘도 가끔은 조금씩 먹는다. 할 일을 미루는 상황을 물리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다. 그뿐만 아니라 목공에 관한 웹사이트를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흥미로운 기법이나 공구가 있나 찾아본다. 정말이지 고약한 습관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나만의 요령이나 비결이 있다면?
컴퓨터를 끄는 것이다. 컴퓨터 때문에 세상이 서서히 멈춰가고 있는 것 같다. 워크숍이나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기이한 수동적 경향을 보게 된다. 한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기존의 연구물을 보려고 웹사이트를 샅샅이 훑는 학생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 행동은 물속에 직접 발을 담그길 꺼리는 매우 소심한 태도를 낳는다. 남들이 이미 성취해 놓은 뛰어난 결과물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내가 아는 매우 생산적인 사람들은 그냥 무작정 덤벼들어 일을 벌이는 경향이 강하다. 맹목적인 무지가 오래 가는 법이다.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디자이너의 예로 나 자신을 추천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런 디자이너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컴퓨터에 능숙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제품 견본시에서 말솜씨도 좋은 것 같다.
디자인 또는 디자이너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무엇이라고 보나?
업계의 내부자이다보니 어떤 오해가 있는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내가 보기엔 대부분의 일반인이 디자인 하면 인테리어 디자인을 생각한다. 또한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디자인 팀과 디자인 회사의 손을 거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온갖 물건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줄 안다.
2014 밀라노 가구 박람회(Milan Salone)에서 선보인 ‘지브’(Jib) 스툴
목재를 물결 형태로 만든 런던 어린이 박물관의 안내 데스크
‘마인드 체어’ (Mind Chair). 에얄 부르슈타인(Eyal Burstein)과의 합작품으로,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전시 ‘디자인과 유연한 정신’(Design and the Elastic Mind)에서 선보였다.
가장 아끼는 디자인 소장품은?
우리 집 상태가 워낙 난장판이라 귀한 물건은 집에 두질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애를 위해서 예쁜 문고리를 하나 구입했다. 아침마다 문을 못 열고 자기 방에 갇혀 있길래, 놋쇠로 만든 멋진 문고리를10파운드에 샀다. 1910년에 런던 중심부의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지역에서 만든 물건인데, 예전에 그곳에 놋쇠 제조업체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물건은 많이 갖고 있는 편이다.
디자인 분야에서 요즘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
디자인 관련 소식을 챙겨 보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가끔 디자인 블로그를 볼 때도 있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강 훑어볼 뿐이다. 가장 최근에 정말 흥미롭게 본 소식은 ‘태양열 소결’(Solar Sinter)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다. 사막에서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드는 3D 프린터였는데, 그 유리로 일련의 꽃병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말 경이로웠다.
무엇이든 리디자인하고 싶은 대상을 고르라면?
영국식 내리닫이 창이다. 내리닫이 창은 누구에게나 애증의 대상이다. 사람들이 그 창을 싫어하는 건 맨날 망가지기 때문이며, 그렇게 맨날 망가지는 이유는 나무로 된 작은 부품 하나 때문이다. 조금만 달리 처리하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몇 년 동안은 캠페인을 벌일 생각까지 해봤다. 그 부품을 다른 식으로 잘라내서 런던 시내의 모든 창문을 개조하자고 말이다.
본인이 희망하는 10년 후의 모습은?
장기적인 계획은 전혀 없고, 처음으로 킥스타터 캠페인을 곧 시작해볼 생각이다. 이를 기점으로 삼아 스튜디오나 갤러리용 오브제가 아니라 소규모 생산에 가까운 일련의 제품을 구상할 계획이다. 그러니 10년 후쯤이면 일보 후퇴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오브제를 생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잘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건축가와 산업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 중 술친구로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들은?
글쎄, 각각 다 난감한 부분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얘기는 결국 [스타워즈]로 귀결되고, 산업 디자이너 중에는 정말 샌님 같은 괴짜가 많다. 한편 건축가는 실재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자기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실존적 절망을 품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대체로 가장 흥미로운 인생사를 지닌 건 건축가들이니, 나라면 건축가를 선택하겠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 (www.core7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