訓敎經 (下) - 33. 근본사상 오늘 말씀할 제목은 ‘근본사상’입니다. 인생문제는 신을 중심한 성인의 가르침으로 해결해야
선생님은 대한민국 백의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이 종교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고심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생문제, 인간문제를 놓고 깊은 고심을 한 사람입니다.
인간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끼리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해결하느냐? 성인의 가르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대개 성인이라 하면,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4대 종교의 종주를 중심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종주들이 그들의 생애의 길을 대개 무엇을 중심삼고 갔느냐? 그것은 절대적인 가치문제입니다. 신이 있느냐 하는, 신에 대한 문제입니다.
종교가 철학과 다른 것은 뭐냐? 종교의 시작은 신과 더불어 생활하면서부터인데 철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를 보나 반드시 그 배후에는 신비경을 연결시켜 가지고, 신이라는 배후에서 움직이는 주체를 중심삼고 그 뜻을 펴기 위해 출발했기 때문에, 그 종주들은 신과 더불어 생활무대를 같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과 더불어 출발하는 그 생활이 어떤 생활이냐? 개인적 생활이냐, 그렇지 않으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개인적 생활을 표준해 가지고 신과 더불어 출발한 종교냐, 그렇지 않으면 가정을 중심삼고 신과 더불어 출발한 종교냐? 더 나아가서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신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출발의 종교냐?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신과 더불어 출발한 것이냐? 이게 문제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국가와 더불어 신을 중심삼고 생활무대를 갖춰 나가는 것이냐? 그다음엔 세계문제입니다. 또 영계와 육계가 있으면 영계와 육계, 하늘과 땅까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왜 자아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되는가
종교가 출발하는 데 있어서 가정구원 논리를 제창한 종교가 어디에 있었느냐? 또, 사회구원, 종족구원을 제창한 종교가 있느냐? 국가구원을 주장하는 종교의 출발은 없겠느냐?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종교를 보면 개인구도를 주장합니다. 개인이 구원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를 보게 될 때 그 도주(道主)가 가르치는 교리는 현세와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출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가라는 건 뭐냐? 출가한다는 것은 어느 종족의 성씨를 통해서 태어났으면 그 전통적 역사배경이 전부 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배후의 전위대와 같은 가정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출가한다는 그 자체는 나라를 부정해야 되고, 살고 있던 사회를 부정해야 되고, 살고 있던 가정을 부정해야 되고, 가정에 있어서의 부자관계까지도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운명의 길은 우리 개개인이 노력해서 개척할 수 있지만, 숙명의 길은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이다,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다 하는 이 부자의 관계를 끊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 됩니다. 어떤 독재자가 ‘저게 네 아버지가 아니고, 저게 네 아들이 아니야!’ 하고 천년만년 교육한다고 해도 그건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출가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부자의 관계까지 부정하고 나서는 원인이 어디 있느냐? 출가라는 말은 어머니 아버지의 관계를 그냥 붙들고 나오는 것이냐,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의 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를 중심했던 모든 것을 젖혀 놓고 자기완성을 표준하고 나오는 것이냐?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아완성을 표준한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자아완성을 표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합니다. 보게 되면 부모의 혈연까지도 부정하게 하고, 그다음엔 후대를 부정시키는 놀음을 하기까지 합니다. 이게 어떤 연고냐? 왜 이래야 되느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잖아요? 천주교에도 신부 수녀들이 있지 않아요?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 버리고, 세계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하고, 자기 가정을 부정하고, 자기 부모를 부정하고, 남자가 여자를 부정하고, 여자가 남자를 부정하는데, 왜 이래야 되느냐? 근본문제가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그런 문제가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기원(起源)
그러면 왜 부정해야 되는가 하는 그 논법, 논리, 교리의 가르침을 어떻게 종단에서 찾아 세우느냐? 그건 기독교도 모호하다 이겁니다. 불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 근본문제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예요.
유교도 그렇습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거 얼마나 좋은 말이예요? ‘천(天)’이 뭐냐? 아무리 하늘이 있더라도 나와의 관계를 백 퍼센트, 시작과 더불어 영원히 맺을 수 있는 천(天)이 아니면 그 천은 나에게 있어서 이상적 천으로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시작과 더불어 과정과 끝 전체가 영원히, 시작도 천인 동시에 영원히 천이어야 됩니다. 그 천과 더불어 나는 행복해야 됩니다. 불행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해야 돼요. 그 천과 나와 하나되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부러워해야 되고, 모든 것이 그것을 높일 줄 알고, 모든 것이 그것을 따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이 개체가 태어난 어떠한 특수 민족에만 한한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종을 초월하고 사상을 초월하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의 기원, 종주(宗主)들의 기원을 따져 보면 신과 더불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종단이 시작됐다 이겁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종주와 신과의 관계를 볼 때, 신을 따라가야 되겠느냐, 종주를 따라가야 되겠느냐? 이거 문제가 큽니다. 종주와 신의 관계에 있어서는 종주도 신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 신이 절대적인 신이라면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절대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신과 나의 관계, 신과 종주의 관계, 신과 나의 관계보다도 신과 종주의 관계와 종주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문제
선생님은 영계라든가 혹은 종교계에 대한 이런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 고심하다 보니 신비스러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볼 때, 신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있어요. 그 신과 종주의 관계, 종주와 신자의 관계, 신자와 세계의 관계 등 관계의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까? 관계를 어떻게 공고화시키느냐? 한 집을 중심삼고 볼 때도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의 관계, 전부 관계 아니예요? 또, 가정과 가정의 관계도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가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탈락이 되면 안 됩니다. 자기와 가정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심, 가정과 가정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심이 뭐냐? 그다음엔 종족과 종족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심이 뭐냐? 모든 인간은 관계의 세계를 떠날 수 없잖아요?
종교를 중심삼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자기들끼리는 맺을 수 있습니다. 불교면 불교를 믿는 사람끼리는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를 믿는 사람하고 딴 종단 사람하고는 어떻게 되느냐? 이게 문제다 이겁니다. ‘우리는 관계없어! 절대적으로 관계없어!’ 하는 데 그걸 누가 정했어요? 종단을 세우고 종주를 세울 때 ‘너희들 그런 관계를 맺어’ 하는 신의 뜻을 동기로 하여 시작됐다면, 그런 신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 종주는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화만사성이 되려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계, 부부관계, 자매관계, 형제관계가 이상적이어야 됩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들끼리만 좋아하고, 또 부부끼리만 좋아하고 형제끼리만 좋아하면 안 돼요. 할머니하고 아들하고, 아들하고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아들하고, 이게 종적으로 횡적으로, 전후좌우로 다 화(和)해야 가화(家和)한다는 것입니다. 화(和)라는 말은 ‘고루 화(和)’ 자가 아닙니까? ‘화학(化學)’ 할 때의 화(化)라는 말은 본질이 변해 가지고 하나되는 것을 말하지만, 이 화(和) 자는 본질이 있어요. 나면 나의 개성이 있어요. 개성이 있어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집을 보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다음에 형제, 이렇게만 해도 여섯 사람입니다. 여기에 친척까지 관계해서 사촌까지 집어넣으면 어때요? 한 집에서 사촌까지 살거든요. 사촌까지 하면 몇 사람입니까? 이렇게 볼 때에 과연 가화(家和)가 쉬운 것이냐? 따지고 분석해 보게 될 때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개개인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삼팔선이 문제가 아니고 세계의 전쟁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전쟁의 동기는 어디서 나오느냐? 그 근본이 어디냐? 나에게서 나옵니다. ‘사람’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를 따져 보고 여자를 따져 보면 마음과 몸, 양면을 갖고 있지요? 그렇다면 종교를 믿되 마음과 몸으로 믿어야 되겠느냐, 마음만 믿어야 되겠느냐? 이거 문제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믿는 것이 이상적인데, 마음과 몸이 하나 못 됐을 때는 신은 먼저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해 가지고, 마음이 주체가 되어 마음을 통해서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다는 말을 하지요? 그 곧다는 것은 수직을 말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신과 완전히 하나되어 그 하나된 마음과 내 몸을 하나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게 오늘날 종교생활에 있어서 일생을 두고 해야 할 과업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으로써 몸을 지배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신과 더불어 사는, 신의(神意)를 아는 자리에 서 있다 할 때는 신의 뜻을 중심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가 따라오지를 않아요. 마음이 플러스가 돼 있는데 몸뚱이가 마이너스가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플러스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플러스가 돼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플러스 플러스끼리 반발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려면 몸을 치는 생활을 해야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그러니까 근본이상을 찾았다면 강력한 신앙심을 가지고, 그 이상을 중심삼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절대적인 자세를 갖춰서 몸을 약화시켜야 됩니다. 몸을 약화시키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고행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고행을 좋아하는 몸뚱이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아니할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데서 이상실현을 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수 있습니까? 이건 이론적인 모순입니다. 기뻐서 해도 안 될 이 천지인데, 억지로 해 가지고 완성을 이뤄요? 그건 모순입니다.
그러면 종교생활은 왜 몸을 치는 생활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플러스를 대해서 마이너스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마이너스를 만들어야 됩니다. 마이너스만 만들어 놓게 되면 하나되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마이너스로 돌아감으로써 몸과 마음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것도 문제입니다. 그 근본문제가 왜 그러냐? 지금 세상은 분석적인 논리라야 통하는데 그 논리가 공식과 통계에 연결될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과학세계의 발전은 단위를 중심삼은 공식의 발전입니다. 공식을 벗어나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든 컴퓨터 시스템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우리가 최고로 편리한 것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인간의 소성, 성질이 본래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면서 그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결과가 손해나는 것은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좋아하지 않는 곳을 따라 가지고 내가 도의 세계에 대한 각성을 할 수 있을 것이냐? 또 그래 가지고 완성을 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니까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몸을 쳐야 됩니다. 종교는 절대적으로 몸을 쳐야 됩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이겁니다.
신이 있다면 왜 몸을 치지 않아도 되게 창조하지 못했느냐? 이렇게 됐기 때문에 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까닭은 모르지만 병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에 몸을 왜 고생시키느냐? 양심기준 앞에 몸을 약화시킴으로 말미암아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걸 약화시켜서 완전히 끌고 다녀 가지고, 한 3년 동안 끌고 다녀 가지고 습관화시켜야 됩니다. 왜? 절대적으로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나라든 세계든, 다 버리고 절대적으로 도의 기준 앞에 이 몸을 수양해 가지고 일치될 수 있는 귀일점을 발견해라 이겁니다. 그건 만교(萬敎)가 다, 어떤 종교도 그렇게 가르쳐 줘야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교세계에 발전을 가져올 수 없고, 인격혁명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절식을 하고, 그다음엔 고행을 하고, 사회에 나가 핍박을 받으면서 반대받고 그래요. 반대하든 말든, 도의 목적 성취를 위해 몸뚱이가 죽겠다고 야단하더라도 아랑곳없이 그걸 다 잊어버리면서 마음 앞에 몸이 순응할 수 있는 자아를 찾기 위한 고된 생활이 종교생활인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된 후에는 그런 남녀가 결혼하여 하나돼야
개인을 통해서 그렇게 양심기준을 맞춰라 하게 될 때, 그럼 가정기준은 어떻게 할 것이냐? 가정을 가졌다 할 때, 그들을 거느리고 마음세계의 통일권(統一圈)을 이룬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라를 업고 가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를 간소화시키기 위해서 출가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출가해서는 뭘 하느냐? 완전한 도의 성취, 목적 성사를 한 후에는 남자 도인, 여자 도인이 어떻게 할 것이냐? 둘이 하나돼야 됩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게 될 때는, 지금까지 가르쳐 준 모든 도력(道力)의 시대가 끝나는 시대에는 도인들도 시집 장가 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왜 그러냐? 외적 세계는 전부 다 시집 장가를 잘못 가 가지고 다 썩어집니다. 마귀의 소굴, 악마의 소굴, 사탄의 소굴이 돼 있습니다. 어떻게 교시할 거예요? 신이 있다면 반드시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 전부 다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볼 때 배도의 길을 가니 너희들은 망할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표본이 필요하다. 그러니 스님이 결혼을 하고 수녀 신부들이 결혼해 가지고 표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경전을 통해서 어떻게 해석할 거예요? 경전에는 없습니다.
4대 성인은 전부 다 종교의 교주입니다. 그 교주를 중심삼고 수천 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후퇴한 것이 아니고 인류를 포섭해 나왔습니다. 이 포섭하는 것은 도주들이 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천운을 움직이는 중심 되는 절대적 신이 도주들의 뜻이 좋기 때문에 그들을 세워서 교재로 쓴 것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말해야지, ‘우리 도주는 신이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도주가 신이라면 ‘절대적 신이야?’ 이런다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인간은 결과적 존재요 제2존재
우리 인간은 제1원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1원인이 뭐냐? 그분은 우리 인간이 그리는 이상(理想) 이상(以上)의 이상을 가진 분으로서, 왔다갔다하면서 아무 생각이나 하는 분이 아닙니다.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생각하는 이상은 절대적 이상입니다. 어느 종주든 그 이상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봐야 돼요. 어떤 잘난 종주, 잘난 종교 지도자, 세상을 다 뒤집어 놓는 종교인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아야 돼요. 나 중심삼고 하게 되면 큰일나요. 그건 왜 그러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제1존재가 아니고 결과적 존재입니다. 제2존재라구요.
그러면, 그 제2존재가 태어나기를 어떻게 태어났느냐? 나에게 있어서 제1존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의 제1존재는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1존재는 누구예요? 종지조상입니다. 인간 종지조상 중심삼고 신이 있다면 신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신의 뜻이란 어떤 것이냐? 종교를 세워서 개인 구도하는 것이 신의 뜻이냐? 가정 구도하는 것이냐, 국가 구도냐, 세계 구도냐, 천지 구도냐? 지상에도 지옥이 있고 천상에도 지옥이 있습니다. 이 구도라는 것은 천상천하에 있는 지옥을 철폐해야 돼요. 지상과 천상의 모든 지옥을 없애고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분이라야 절대 선한 분이시지요.
사람들은 자기 살고 있는 집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무리 호화주택이 많다 하더라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천막집, 포장마차 같은 데서 오순도순 일가족이 재미있게 먹고 기쁘게 지내는 것이 그런 큰 집에서 잔치하며 사는 것보다도 도리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우거지(寓居地)는 자기 스스로가 갖고 있는 행복의 기지입니다.
가난한 사람, 노동자들은 공장 옆에 있는 찌그러진 집에서도 행복하다고 하면서 살 수 있고, 농민은 초가삼간 농가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궁에서 사는 사람보다 행복할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건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느냐? 외적인 소유무대가 아닙니다. 환경무대가 아닙니다. 내적인 심적 세계의 환경무대와 소유권한을 얻게 될 때는,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천하를 다 내려다보고 요사스러운 싸움터에서 잘났다고 뻐기는 사람들 대해서도 자랑할 수 있는 거라구요.
마음이 크고 그 이상이 고차적일 때는 몸뚱이는 천하더라도 행복한 것입니다. 보리밥을 먹으나 이밥에 고기를 먹으나 살기는 마찬가지인데 무엇 중심삼고 사느냐? 몸뚱이 중심삼고 살지 않거든요. 마음을 중심삼고 산다구요. 마음세계에 있어서의 환경적 이상을 그려 가면서 ‘아하, 나는 행복하다!’ 하는 사람은 대통령보다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진리
선생님은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한 사람입니다. 우주의 근본 진리가 뭐냐? 아예 담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을 발견했으니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입니다. 근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담판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례입니다만, 예수님이 하나님하고 담판을 한 것하고, 불교 석가모니가 신이 있다면 신하고 담판을 한 것하고, 유교로 말하면 공자님이 하나님과 담판한 것하고, 회회교의 마호메트가 하나님하고 담판한 것하고, 여기 문총재라는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담판을 한 그 기준 중에 어느 기준이 높겠느냐? 불교는 ‘아, 그거 물어 볼 게 뭐 있어? 불교가 제일이지’ 하고, 기독교는 ‘오오, 기독교지’ 할 텐데, 그렇습니까? 유교면 유교, 회회교면 회회교도 그럴 것입니다. 이 회회교인들은 반대하면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협박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렇게 된 것은 어떤 연고냐? 선생님은 하나님을 대해 몸부림치면서 `당신이 어떤 분이오?’ 하며 근본을 밝힌 것입니다, 근본사상을.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세계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의 이원론도 마음이 먼저냐, 몸뚱이가 먼저냐 하는 것 아닙니까? 알고 보니 마음도 먼저가 아니고 몸뚱이도 먼저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되었기 때문에 이 놀음이 벌어집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민주세계의 발달은 마음을 확대시킨 것이요, 공산주의의 발달은 몸뚱이를 확대시킨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언제 말리느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하나 만드는 것보다도 문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내가 고민하고 표어로 세운 것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입니다. 제1표어가 이것입니다. 알고 보니 모든 사람, 모든 종단이 세계를 지배하고 하늘땅을 지배하고 싶지만 자기 자신을 주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동에 가면 동에 맞출 수 있고, 서에 가면 서에 맞출 수 있고, 남에 가면 남에 맞출 수 있고, 북에 가면 북에 맞출 수 있고, 위에 가면 위에 맞출 수 있고, 아래에 가면 아래에도 맞출 수 있고, 확대해서 360도 어디든지 맞출 수 있는 나! 종교를 통해서 이런 인격완성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최단거리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참사랑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같이 딸같이 가까운 자리에 서고 싶어요, 하나님을 삼촌, 이웃집 삼촌같이 모시고 살고 싶어요? 이걸 하나님한테 물어 봐도 ‘물어 볼 게 뭐야? 횡적이 아니라 종적으로 제일 가까운 부자의 관계지’ 한다는 것입니다. 왜 부자관계냐? 그건 종적입니다. 부부관계는 횡적입니다. 그러면 종(縱)이 먼저냐, 횡(橫)이 먼저냐? 종이 먼저예요. 그러면 왜 종이 먼저입니까? 어째서 그렇습니까?
세상의 모든 물건이 창조될 때, 창조주가 수평을 보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물건, 좋은 재목, 좋은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수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대는 전부 수직으로 자랍니다. 그렇지요? 곡식을 보더라도 잎은 전부 누워 있어도 종대만은 꼿꼿합니다. 종대는 뿌리 종대와 순 종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부 수직입니다.
또 우리 인간 시조가 제2의 원인자라 하면 제1원인자인 하늘은 높은 데 있고 나는 낮은 데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말하게 될 때 사랑은 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개념의 정의를 내리고 가야 됩니다. 완전 종적인 수직을 만들 수 있는 작동이 무슨 작동이냐? 지식 가지고 안 됩니다. 지식 가지고는 직행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돌면서 갑니다. 그다음에 돈이에요? 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땅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니지요? 권력도 수직이 못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참사랑이라는 것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통하는 참사랑이 있다면 그건 수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틀어져도 이건 수직이 아닙니다. 무엇이 우주 가운데 직단거리의 수직을 점령할 수 있겠느냐? 그건 참사랑뿐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이 위험할 때 돌아가서 구하겠다고 그래요? 자기의 생명이 귀하다 해도 생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직단거리로 통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중심이 뭐냐? 수직적 내용의 제일 직단거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뭐냐? 그러면서 그것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어 있으면 세계는 거기서부터 위치 책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수직을 중심삼고 동쪽에 있든가 남쪽에 있든가 북쪽에 있든가 하는 것입니다.
수직이라는 말은 수직을 먼저 놓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횡을, 수평선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위라는 말은 위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래를 먼저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오른쪽이라는 말은 왼쪽이 있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여자만 가지고 여자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자라는 말은 남자를 선유결정요건(先有決定要件)으로 삼고 하는 말입니다. 상대적 개념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서 제일 바른 수직을 찾아라 할 때, 그것은 지식을 가지고 찾을 수 없습니다. 권력으로도 못 찾습니다. 그다음에 돈 가지고도 못 찾습니다. 그러나 사랑 가지고는 가능하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 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최단거리를 점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는 우주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하자면,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책을 보면서 ‘내가 왜 태어났나?’ 이러지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한테 푸대접받는 것이 원통하고 ‘분해! 남자로 태어나서 한번 복수하면 좋겠다. 윤회 환생해 가지고 그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여자 남자가 태어나기를, 사람이 태어나기를 누구 때문에 태어났어요? 자식은 부모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안 그래요? 또 부모는 왜 있어야 되느냐? 자식 때문에 있어야 됩니다. 부모라는 말은 자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자식이라는 말은 부모를 선유조건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유조건(先有條件)을 위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삼고 관계가 맺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남자는 태어나기를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남자로서 참된 남자가 되려면 참된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아들이 되려면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참된 부부가 되어야 됩니다. 그 아내는 여자를 대표한 자요, 남편은 남자를 대표한 자입니다. 전세계 남성 여성의 대표자입니다. 또, 동물세계는 수놈 암놈, 이온세계는 양이온 음이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주는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놓고는 수놈 암놈들은 전부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번식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이 아니라 여자 때문입니다. 천지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동양사상도 음양을 중심삼고 얘기하는데 음양이 합덕을 해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미완성품입니다. 그러면 음양합덕(陰陽合德)을 무엇이 하는 거예요?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입니다. 남자의 사랑은 남자에게 없어요. 여자에게 있어요. 여자의 사랑은 남자에게 있습니다. 내 자체에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본
우주의 근본은 사랑과 생명과 혈통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혈통의 주체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 인간이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기 여러분도 다 사랑을 갖고 있지요? 생명을 갖고 있지요? 혈통 갖고 있지요? 그거 다 뭐예요? 자기 혼자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자기 상대가 척 나타나게 되면 사랑의 주파가 옵니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거예요. 피가 끓어요. 그렇지요? 그게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이겁니다. 근본이 없는 데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고, 생명을 갖고 있고, 핏줄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남자라면 그건 남성을 대표한 것입니다. 여러분 욕심이 그렇지요? ‘나는 남성을 대표했어’ 하지요?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그것을 찾을 것 같습니까? 공부해 가지고? 돈을 모아 가지고? 권력 가지고? 절대 안 됩니다. 세계의 남성들 가운데서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지지 않는 대표자로 섰다 할 때는 모든 남성들이 ‘옳소’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표자가 됐다면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할것없이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제일 높아지고 싶어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돈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이요,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서로서로 귀한 것을 바꿔 두었습니다. 여자의 사랑의 보따리는 남자가 주인입니다. 남자의 사랑의 보따리는 누가 주인이에요? 여자입니다
여자가 주인인데 무슨 주인의 자격이에요? 왕권! 시시한 초가집에 사는 남편의 아낙네로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왕권을 대표한 주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결혼식을 해야 땅이 진동하도록 북을 치고 좋다 하고 웨딩마치를 울리지, 그렇지 않고 세상을 알지 못하고 깜깜한 밤이 되어 가지고서야 암만 뭘 하더라도 흥이 날 게 뭐예요?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결혼을 해요? 사랑 때문입니다. 무슨 사랑? 절대적인 참사랑입니다.
그 다음에, 부자의 관계는 어느 누가 가를 수 없고 혁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거기에 흐르는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런 관계가 절대적이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절대적이어야 되겠어요, 상대적이어야 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절대적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떠나도, 차 버려도 삥삥 돌아가면 돌아갔지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남편 아내 둘이 사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결혼하고 일주일도 못 가서 이혼하는 패들이 있습니다. 그게 참부부예요, 가짜 부부예요? 그건 가짜 부부입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 할 때는 기분이 좋지요? 옛날 어머니 아버지 품이 그립지요?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혁명할 수 없어요. 찾아 들어가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사랑이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의 동기로 흐르는 과정은 사랑관계를 안 갖고는 완전 연결이 안 됩니다. 나는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사랑을 추구한 사랑의 결과고, 여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냐?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격적 신을 발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만상 귀일법을 논해 가지고 인격적 신을 어떻게 발견합니까? 안팎으로 지(知) 정(情) 의(意)의 감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발견합니까?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효자를 가진 부모가 효자가 울 때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내 아들아!’ 하면서 무슨 도주고 다 무시해 버리고 붙들고 울고 싶고, 갖은 좋은 표정을 다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나를 위하는 사랑은 큰일납니다. 우주는 이걸 환영하지 않습니다. 위하라는 사랑은 큰일납니다. 창조의 근본에 들어가서 볼 때 우주의 근본인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보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참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절대자가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도 절대적인 평화, 절대적인 행복을 요구할 것이니, 그것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에요? 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지식이에요?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권력이에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합니다. 그럼 뭐냐? 참된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사랑을 절대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상대를 위해 백 퍼센트 투입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참사랑의 아들딸을 만나게 되면 ‘내 것 전부 다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남편은 참된 여인에게 ‘내 것 전부 다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것은 내 것이다’ 하면 참사랑이 못 됩니다. 어때야 되느냐? 완전히 돌아야 됩니다. 주고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이 가르칠 때 ‘창조주는 거룩하고 피조물은 속된 것’ 이럽니다. 그러나 그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건 사랑의 하나님이란 논법을 취소해 버리는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예수님의 사랑이나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성을 떠나 가지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대가 누구입니까?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는 말이 있지요?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이상적 사랑을 세우려는 것은 투입입니다. 완전 투입입니다. 100퍼센트 이상, 120퍼센트 투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갖고 사는 사람은 그 시대에 제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120퍼센트 이상, 몇백 퍼센트 이상 투입할 수 있는 본성의 기원이 연결되기 때문에 역사가 지배를 못 합니다. 아무리 독재자가 그 시대에 파탄시켜 버리고 무(無)로 해소시켰다 하더라도 이 세계는 재현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늙었더라도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을 재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독재자가 누르더라도 역사를 초월하여 재현해 가지고 그 권위를 당당히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의 도주들이 그 시대에 핍박받는 것입니다. 핍박받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러나 투입한 것이 찾아질 수 있는 환경에 따라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 시대 이후에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의 상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했습니다. 그러면 왜 투입했느냐, 지혜의 왕인데? 완전히 투입해서 하나님은 영(零), 무(無)가 되고 저기는 120이 되니, 기압으로 말하면 여기는 저기압 중의 저기압인 진공상태가 되고 저쪽은 고기압이 되니 순환작용이 일어나 가지고 자동적인 발전원칙, 자동적인 운동원칙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에 의해서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이 벌어져
그러면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있느냐 할 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있느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생명이 있느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혈통이 있느냐? 있다 이겁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혼자로는 안 됩니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은 종적이기 때문에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연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자리에서, 자녀의 자리에서 커 가지고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점점 커서 알다 보니 남자 여자가 합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합하느냐?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가운데 아들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원에 있어서의 현(弦)입니다. 상현(上弦) 하현(下弦)을 축소한 것이 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는 하나의 부체(副體)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뼈와 살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은 혈통관계가 아닌 데서는 성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런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창조주인데,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늘땅이 통하는 참사랑의 길은 직단거리이니 수직 앞에 90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종적 사랑인 부모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중심삼고 90각도에 선 참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완성한 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완성한 부모를 가졌다면 이 완성된 부모의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혈통이 이 중앙에서 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형을 중심삼고 볼 때 제일 높은 자리가 어디냐 하면 중앙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존재의 중심존재가 되고 싶지요? 그거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 가야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내 것이 되고 하나님 앞에 소유된 모든 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해서 뭘할 것입니까? 중앙에 가서 하나님과 사랑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 만들고,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상속권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참사랑을 느끼고 호흡하게 된다면 영원히 벌어지는 거예요. 영적 세계의 체험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떼굴떼굴 구르면서 더 들이쉬고 싶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막연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참사랑의 권내에 들어가 보니까 숨을 천년만년 들이쉬더라도 끝이 없이 좋아요. 또 천년만년 내쉬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움직이는 곳에 영생이 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 어디 있습니까? 숨을 영원히 들이쉬어도 좋고 영원히 내쉬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 호흡하는 세계에 참사랑을 중심한 영생이 있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두 분의 부모를 통해 사랑을 이어받은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사랑을 안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모의 혈육을 이어받았고,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남자 여자 전부가 사랑을 갖고 있고, 생명을 갖고 있고, 혈육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는 종적이요, 하나는 횡적입니다. 이런 생명권을 갖추기 위해서 남녀가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식 날이 뭔가 하면 천지를 소유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제아무리 절대적이라고 해도 이 사랑과 나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마음이 무엇이냐? 종적인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혈통을 통해서 이어받은 내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나, 즉 종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뚱이는 뭐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근본이상(根本理想)으로 이어받은 몸적인 나, 90각도에 선 나입니다. 그래서 나는 타락하지 않은 참된 부모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내 몸 마음 이 두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격, 하나는 몸적인 횡적인 부모를 중심삼은 인격, 거기에서 둘 다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과 혈통을 중심삼은 남자 여자의 혼합적인 통일권을 이루면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은 두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닮은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은 내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비밀이 뭐냐? 기도해 보니 답이 간단합니다. 부자의 관계다 이겁니다. 그 부자의 관계가 뭐냐? 그냥 그대로의 부자의 관계라면 타락한 세상에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팔아먹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세상 아닙니까?
타락은 절개를 지키지 못한 것
그럼 타락이 뭐냐? 하나님의 제일 귀한 것을 도둑질한 악마의 행각입니다. 제일 귀한 게 뭐냐 하면 사랑과 생명과 혈통인데, 이것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한 것은 음란입니다.
로마가 망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외세의 침략에 의해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전세계가 망해가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음란 때문입니다. 악마가 음란으로 뿌렸으니 세계적으로 음란 바람에 휩쓸려 가는 인류의 군상이 될 때는 철추가 가해지는 것입니다. 교단이 그렇게 될 때는 교단이 망해 떨어지고, 나라가 그렇게 될 때는 나라가 떨어지고, 역사가 그렇게 잘못되면 그 역사의 방향이 다 깨져 나갑니다. 그거 누가 그렇게 하느냐? 그렇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워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종교를 찾자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무엇을 찾습니까? 참된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구원해 나온 하나님은 이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도주를 교육하고 인도해야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뭘하고 싶습니까?’ 할 때 가르치고 싶다는 말은 안 합니다. 하나님도 살고 싶은데 뭘 갖고 살고 싶으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답이 그것입니다. 무슨 사랑?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마음과 몸이 90각도로 맞춰져서 완전히 하나된 사랑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통일시키느냐?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은 도대체 뭐냐? 완전히 희생하고, 백 퍼센트 투입하고는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들이 역사시대에 잘못한 것을 보고 참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 사람 같으면 다 말살해 버렸지요. 그러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뭐냐? 참사랑은 타락한 세계에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종적인 기준만 남아 있어요. 하나님 대신 입장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그것만 땅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도 가능하고, 불한당 자식도 부모의 사랑 앞에 돌아서는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싶으냐? 참사랑 중심삼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참사랑을 가진 남자 여자와 더불어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는 자식들을 함께 품고 싶어하지요? 하나님은 참사랑을 가진 아들딸을 이 땅에 붙들고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타락은 절개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장성하기 전에 고장났어요. 장성했으면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 이상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이 뭐냐? 종 되는 악마가, 왕후와 왕을 찾아 세우려 한 천지의 사랑 이상권을 사탄이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겁탈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뿌리가 되고 하나님이 줄기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랑의 꽃,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야 할 것인데, 이것을 횡적인 천사장이 유린하여 들어와 전부 부정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마의 자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되었으니 이건 자기를 중심삼은 사상입니다. 위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라는 사상, 그것은 개인주의로 통합니다. 그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
통일교회가 세상의 반대를 반대받으면서 어떻게 흥했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전략과 사탄의 전략이 있습니다. 악마의 전략은 치고는, 때리고는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손해배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이래 선한 사람들은 맞고 그 기반 위에서 악마의 세계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맞는 데는 무엇 중심삼고 맞느냐? 사탄세계의 사람은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충신도, 종교의 성인의 가르침도 끝장이 납니다. 왜? 그것은 사탄세계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장났기 때문에 세워진 병원입니다. 본래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각 종교에 재림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메시아가 뭐예요? 거짓 부모가 나와서 거짓 뿌리를 심어 놨기 때문에 참된 부모가 와서 줄기와 가지를 새로이 접붙이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접붙임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권 내의 부모를 가졌다는 조건을 가지고 이것을 다시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방책이 종교기관입니다.
알고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선생님이 기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만 구주가 됩니까? 예수보다 나은 구주도 있을 텐데. 예수는 이스라엘나라를 구하려다가 실패하고 갔는데, 세계 구주가 못 되었는데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볼 때, 세계 구주가 못 되었기 때문에 세계 구주가 되기 위해서 다시 와야 된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천지 도리는 사랑에서 시작이요, 사랑에 귀결하기 때문입니다. 교리 가운데 사랑이라는 교리를 뺀 교리는 끝장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도 신부들도 끝날이 될 때는 결혼할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를 본연의 세계로 돌이켜야
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4대 종주가 모였다고 합시다. 그 종주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희들, 뭘 원하느냐?’ 할 때는 마찬가지 답이 나옵니다. 종주와 교인도 그래요. 나를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거 아닙니까? 성경에 보게 되면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여기서부터 악의 세계를 만들어 놨으니 참된 부모가 와 가지고 악의 세계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이것을 접붙여 가지고 본연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의 세계로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종횡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 가지고 몸과 마음이 통일된 부모의 혈육을 받아서 내 몸이 통일되었으면 악마의 활동기지가 없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 안 됐다면 거기에 해당하는 분야는 악마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지옥이 어디에 따로 있고,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내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몸을 감화시켜 놓을 수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생명을 넘고 자기의 혈통을 부정할 수 있는 운동을 일으켜야만 이 사악한, 음란된 세상을 깨끗이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의 가정윤리, 하나님의 종족윤리, 하나님의 민족윤리, 하나님의 국가윤리, 하나님의 세계윤리가 지상에 벌어질 때 지상천국이 되고, 지상천국에 살던 사람이 그냥 그대로 들어가는 곳이 천상천국이다 이겁니다. 알고 보니 간단해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문총재는 맞으면서 나온 것입니다. 전세계 50억 인류가 깃발을 들고 ‘문총재 때려죽여라!’그랬습니다.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안 그러니까 그럴 수 있게끔 수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종교로부터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가 동원해 가지고 뭉쳐서 쳤습니다. 쳐라 이거예요. 쳐서 쓰러지지 않는 한 손해배상해야 된다 이겁니다. 하늘의 작전은 맞고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소리 없이 응수를 하는 작전입니다. 사탄은 강탈해 가지만, 때리고 빼앗기는 하지만 결국은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차대전 때도 친 편이 망했습니다. 왜? 천리의 전법에 의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2차대전 때도 친 편이 망했습니다. 3차대전도 사상적으로 공산당이 칩니다. 누구를 쳐요? 레버런 문을. 치긴 쳤는데 그냥 그대로 굴러떨어지면 망합니다. 언제 치든지 중앙선에서 수직의 자리를 딱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쳐도 한바퀴만 돌면 되는 것입니다. 저 끄트머리에 가서 한바퀴 돌려면 10년, 20년 걸립니다.
이렇게 통일교회는 핍박받으면서 발전한 것이 역사적 수수께끼인데, 그 비결은 위해서 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법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잃어버린 것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가다 보니 치게 되면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두익사상을 선생님이 말하고 있지만 그 두익사상은 간단한 것입니다. 개인이 잘살기를 원하거든 여러분 가정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일생 동안 살라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아라 이겁니다. 그러면 그 집 전체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손이라 하더라도 동생을 때리고 요사스럽게 하면서 자기를 위하는 패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왜? 악마의 계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자기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교만한 것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참된 가정의 주인은 그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위해서 사랑하겠다 하고 잊어버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10년, 20년, 늙어 죽도록 이러는 사람은 틀림없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도의 목적
선이 가는 길은 사랑을 통한 이상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랑관, 가정적 사랑관이 이상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사랑관은 수직입니다. 수직적 사랑관을 갖고 사상적 관을 바꿔야 됩니다. 수직적 관을 갖춘 평형선 관의 사랑입니다. 90각도입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민족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일본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이나 ‘너 흑인하고 결혼해!’ 하면 이의가 없습니다. 왜? 몇천 년 전에 잃어버린 형제를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내 형제입니다. 얼굴이 검은 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느냐 하면서 붙들고 웁니다. 통곡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통곡은 일생 동안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사랑입니다, 참사랑.
통일교회에 가면 다 미친다고 그러지요? 내가 똑똑한 사람입니다. 세계에 난다긴다하는 사람 만나 가지고 전부 다 이론적으로 투쟁해서 패권을 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종교 지도자들도 나를 좋아하고 그럽니다. 아마 내가 친필로 써 보내기만 하면 달려올 거라구요. 이론에 맞지 않는 교리는 21세기에는 필요 없어요. 이론에 맞지 않고 현실생활에 이익을 갖다 주지 못하는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나님이 나라 구하는 것보다도 가정 구하는 것을 원합니까? 하나님은 세계 구도가 목적이기 때문에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의 민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구도의 목적은 민족보다도 국가를 원하기 때문에 민족을 희생시켜서, 백의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을 독립국가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없어요. 국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려고 합니다. 이 땅 위의 세계를 희생시켜서 만대의 영계에 간 모든 영혼들을 해방하려고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이 해방돼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를 품고 보고 사시는 하나님도 구속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해방까지 논할 수 있는 시대까지 가야 할 종교의 목적지가 있는데, 어느 단계에 머물러서 개인 구도를 위해 산중에서 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구성에서 매해 2천만의 사람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10년이면 2억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것을 알았으니 아는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지요. ‘세계의 종교계에 있어서 아는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지’ 이러면서 사십 성상을 풍상에 시달린 사나이가 여기 나타났습니다. 그 기백을 보면, 천지를 막고 남을 수 있는 기백이지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부터 통일교회를 희생시켜서, 만교(萬敎)를 희생시켜서 세계구원을 제창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예산보다 몇백 배 많은 돈을 투입해서 초교파운동을 하고 있고, 종협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무대에서는 종교재단을 만들어 가지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의 피를 팔아 가지고 그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 투입하라 이겁니다.
하나님같이 투입하거든 소생의 봄날이, 환희의 사랑 이상(理想)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둥둥 춤출 수 있는 본연의 이상세계가 찾아올 걸 알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해서는 동에서 십자가를 지든, 서에서 십자가를 지든, 집안에서 십자가를 지든, 남자가 여자에 대한 십자가를 지든, 응당 인류를 위하여 그 누구가 그걸 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썩어진 구덩이의 물이 맑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놀음 하다 보니 그런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수십 년 전, 40년 전에 이러이러한 시대가 온다 했는데 그대로 다 됐습니다. 왜? 가만 보면 그렇게 되게 돼 있습니다. 어째서? 무엇으로? 참사랑을 중심삼은 것을 반대하는 세력은 자꾸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식적으로, 춘하추동 공식적으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론적인 사상체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사상이 제멋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개인관, 가정관, 종족관,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 천주관, 하나님관, 사랑관이 쭉 직단거리여야 됩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직단거리의 사상을 중심삼은 관을 발견하게 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종(縱) 위주로 하기 때문에 횡선은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할 때 생명이 먼저라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사랑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먼저냐, 자식이 먼저냐? 부모가 먼저입니다. 부모 가운데서 자식이 나옵니다.
결과가 혼란된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원인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원인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사악하고 혼란되어 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를 한 모퉁이에서 수습할 수 있는 일을 역사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하고 있는 무리라는 거예요.
흥하고 망하는 길은 위해서 사는 길에서 갈라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역학세계에 있어서는, 자연과학세계에서는 입력과 출력을 두고 보면 언제나 입력이 출력보다도 큽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도 출력이 큽니다.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지러져 가는 세상에서 균형을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해서 희생하는 터전과 하고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참사랑의 전통을 이어받는 데서만이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위하는 길, 그것은 효자 사랑길입니다. 충신 사랑길입니다. 성인 사랑길입니다. 성인의 사랑은 인류를 위한 사랑입니다. 성자는 하늘땅을 사랑하고, 하늘 왕궁법까지 지킬 줄 압니다. 하나님까지 심정적으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종적인 자리를 붙들어야 됩니다.
성자의 도리와 하나님의 사랑의 도리를 배우지 않고는 만교의 평화의 기준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금후에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
첫댓글 천지인 참부모님 진심으로 사랑 합니다 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