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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살아오며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때때로 마음에 스치는 감정들이 있다. 서운함, 아쉬움, 그리고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어떤 감정들. 이 글에는 그중에서도 주로 섭섭했던 순간들이 담기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내는 단점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장점들이 있었기에, 내가 선택했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남는 감정들을 꺼내어 적어보려는 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따지고 들기보단,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부족함도, 넘침도, 그저 함께 사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결혼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그래도 ‘함께’라는 말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2024-11-15(금) 아이들 놔두고 외출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은 21시 40분경.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은 각자 패드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거실엔 핸드폰에서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거실 창문에 방풍 작업을 시작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고, 비닐을 덧대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수없이 말해왔건만, 아내는 또다시 자신의 일정과 욕구를 우선시했다.
22시 20분경, 아내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온 것뿐이었다. 언제나 아내에게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충동이 더 우선이라는 걸.
엄마라는 책임보다는 개인으로서의 자유가, 가족과의 약속보다는 자신의 욕구가 더 중요하다는 걸.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나도 숨 좀 쉬자”는 식의 대답일 것이고, 또다시 내 마음만 상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점점, 나는 침묵을 배우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편이 덜 다치고, 덜 실망하게 되는 법을. 그러나 동시에 그 침묵은 우리 사이를 서서히 멀어지게 만드는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2024-11-25(월) 아내의 폭언
밤 10시쯤, 집 안에 갑작스러운 긴장감이 돌았다. 둘째가 자기 방에서 실수로 사이다를 엎질렀고, 그 일로 아내는 크게 화를 냈다. 아내는 “꼴보기도 싫다”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평소처럼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둘째가 조심스레 안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나 재워줘." 어린 마음에 어쩌면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온 건 품어주는 말도, 이해하려는 태도도 아니었다. 아내는 냉정하게 말했다. “밟아버리기 전에 네 방으로 가.” 그 말은 너무 차갑고, 날카로웠다.
실수한 뒤 엄마 품을 찾아온 아이에게 할 말인가. 그 순간 둘째의 눈빛이 얼어붙는 걸 봤다. 사이다보다 더 쉽게 쏟아지는 엄마의 감정과 말이,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내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반복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날도, 아이의 실수보다 더 아팠던 건 엄마의 언어였다.
2024-12월의 어느날
결혼 이후 줄곧 우리는 생수를 주문해 마셔왔다. 평소 물에 예민한 편은 아니었지만 20년 이상 된 구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요리할때 쓰는 물에 신경이 갔고 이것저것 검색해 직수 필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사 후 싱크대에 직수 필터를 설치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배관이 오래되서 밥하거나 국끓일때 직수를 사용해"라고 알렸다.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물맛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묘하게 씁쓸하고 낯선 맛. 생수 살 돈이 아깝다는 듯,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직수로 아이들 물통과 집안 생수통을 채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직수는 가열해서 먹는거고 생수는 그냥 마시는 것이라 그냥 마실물은 생수가 건강에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 객관적으로 직수와 생수 중 어느 쪽이 더 깨끗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건 다쓴 PET병을 재활용해 사용한다는건 위생상 좋지 않다는건 알고 있었다.
아내는 생수 값 아끼기 위해 무심코 선택한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 씁쓸했던 건, 아내의 태도였다. 마치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라는 듯한 표정. 고민이나 조심스러움 없이, 직수를 선택하고 가족들에게 건넸다는 사실. 나는 아내가 생수 하나에도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조차 사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물맛보다 마음이 더 쓰게 느껴졌다.
2024-12-16(월) 삼성생명 출근
그날, 아내는 새로운 일터로 출근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에게 아무말 안하고 있다가 출근하는 당일 말했다. 그곳은 과거 아이들이 다녔던 어린이집에서 알게된 학부모에게서 소개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한숨부터 나왔다.
"보험 영업이라면,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보험 가입은 하지말자."고 분명히, 아내에게 전했다. 이미 과거에 아내는 도테라, 마사지, 애터미, 빨간펜 등에 돈을 벌기위해 간다고 하면서 과도한 소비를 반복해왔기에, 나는 처음부터 이런 선을 확실히 그어두고 싶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인 탓에, 이번에도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불안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상품 설명서를 책상 위에 하나 둘 책상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심코 넘겼지만, 자꾸 눈에 띄는 그것들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고 얼마 후 아내는 책상 위에 있는거 읽어봤냐고 이야기를 했다. 이후 하나하나 읽어봤지만, 솔직히 끌리지 않았다. 종신보험과 저축성 보험 등 사업비 즉 수당을 많이 받는 상품들이였다. 굳이 바꿀 이유도 없었고, 나에게 필요한 보험들이 아니였다. 단지 아내 실적을 위한 보험들로만 보였다. 만약 추가로 보험이 필요하다면 더 저렴하고 보장이 넓은 보험을 스스로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내는 “다른 집 남편들은 아내가 보험 한다고 하면 다 가입해 준다더라…” 그 말 속엔 서운함, 원망, 그리고 은근한 비교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건 단순한 보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내의 말속에는 ‘남편이라면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기준을 이미 정해놓고 있었고, 나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족이란 이유로 의무처럼 무언가를 강요받는 순간, 관계는 피로해진다. 보험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과 책임이라는 말로, 때로는 정서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자꾸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이 집안에서 남편이란 자리'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2024-12-23(월) 불량식품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아내
밤 10시쯤, 아내가 인터넷으로 대량 구매한 ‘향라진전구’라는 중국산 음식을 집에 박스째 구매한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아내에게 중국산 불량 식품을 집에 놔두고 먹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밖에서 용돈으로 가끔 사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애엄마가 집에 대량으로 쌓아두고 언제든지 아이들에게 먹이는 모습이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가정 내의 규칙은 부부가 합의하여 한목소리를 낼 때 힘을 얻는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외부인으로 취급하며 아이들과 성벽을 쌓고 나를 그 밖에 세워두었다. '우리'가 아이를 위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나'는 하고 싶은데 '저 사람'이 안 된다고 하니 참아야 한다는 식이였다.
결국 아빠만 모르면 먹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였고 부모가 아이에게 정직이 아닌, 아빠의 눈을 피하는 요령을 가르치고 공모하는 모습을 보며 가정교육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훈육의 과정에서 아내는 나를 아이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통제자'이자 '감시자'로 전락시켰다. 정작 본인이 보호자로서 판단했어야 할 건강에 대한 책임은 쏙 뺀 채, 모든 금지의 원인을 '아빠의 기분'이나 '아빠의 허락'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 밤, 나는 불량 식품보다 더 해로운 것이 우리 가족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신뢰가 빠진 자리에 들어앉은 '눈치'와 '기만'.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나는 아이들에게조차 경계 대상이 된 것 같아, 싸늘한 소외감 속에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2024-12-23(월) 동영상 보며 늦게자는 아이들
과거 아내가 성가대 활동을 한다며 아이들을 맡기고 교회로 갔었다. 그 후로 약 1년 1개월이 지났다. 그날 이후 나 역시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 결국은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퇴근 후 밤 11시경 집에 들어서면, 첫째를 제외한 아이들은 각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둘째와 셋째는 새벽 1~2시까지도 영상을 시청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내는 그런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워서 핸드폰을 하면서 안방에서 잠을 잤다.
나는 아내가 아이들이 동영상 때문에 늦게 자는 것을 알았음에도 놔둔 것을 방임이라 생각해 그날 이후 저녁 10시에 공유기로 인터넷을 차단했고 아내에게도 알렸다. 다행이 그 뒤로 아이들은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게 되었지만, 정작 아내는 밤 11시가 넘도록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계속 사용했다.
나중에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 데이터 요금이 많이 나왔고, 당신 때문에 나도 데이터 요금이 나왔다”며 나를 비난했다. 아내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통제한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어느 날은 나를 ‘이기적인 인간’이라 불렀다.
아이들이 왜 늦게 자는지, 그것이 성장기 아이들의 정서와 신체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아내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오직 '데이터 요금'이라는 금전적 손실과 자신의 '편의'가 방해받은 것만을 문제 삼았다.
가족을 위해 10년 넘게 헌신하고, 아내가 원하는 친정 근처 큰 집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에게, 정작 자신의 역할(양육)을 방임하던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상황. 그 적반하장의 태도 앞에서 느꼈을 모멸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아빠가 악역을 자처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아이들 앞에서 아빠를 '요금 폭탄을 만든 원흉'이자 '불편을 초래하는 괴롭힘꾼'으로 몰아세웠다. 가장 가까워야 할 배우자가 가장 앞장서서 나의 교육적 가치관을 조롱하는 현실 앞에, 나는 다시 한번 이 집에서 '공동 거주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밤, 차단된 인터넷보다 더 고요하고 싸늘하게 끊겨버린 것은 아내와의 신뢰였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조차 비난의 화살로 돌아오는 이 집에서, 나는 이제 어떤 진심을 더 건네야 할지 길을 잃고 말았다.
2024-12-24(화) 아내가 보험일 하면서
아내는 보험 영업(아웃바운드)을 하면서 결혼 전 가입했던 20년납 보험을 12년 만에 해지하고, 대신 다른 보험 상품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보험의 수익자가 나로 되어 있어서 교보생명에서 연락이 왔고 아내의 요청에 따라 해지 승인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동안 내가 일부를 납입했으니 일부를 돌려달라고 말했고 아내도 그부분을 인정했다. 만약 아내가 온전히 돌려줬다면 다시 아내에 줄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와 달랐다.
신혼 초, 아내가 가입한 보험을 보았을때 금액 대비 보장이 부족하고 가입 기간도 짧다는 이유로 해지를 권유했지만, 당시 아내는 내 보험을 왜 건드리냐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가족인 남편의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닌, 일터에서 만난 타인의 말에 현혹되어 12년의 세월과 막대한 손해를 단번에 포기해버렸다. 내가 10년 전 했던 이야기가 이제야 타인의 입을 통해 정답이 된 셈이됐다. 아내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후 아내가 새로 가입한 보험을 이번 처럼 또 해지할 가능성이있기에 수익자를 나로 지정해달라고 했다.
자신의 주관 없이 주변의 칭찬이나 권유에만 휩쓸려 큰 결정을 내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10년 전 나의 목소리는 소음으로 여기던 사람이, 왜 낯선 이의 목소리는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따르는 것일까. 우리 사이의 대화와 조언이 쌓이지 못하고 늘 제자리를 맴도는 이 관계가, 해지된 보험 증서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2025-01-02(목) 의심
지난 2024년 12월 24일, 아내가 보험해약 후 아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만약 아내가 온전히 돌려줬다면 아내의 정성을 생각해 다시 돌려 줄라고 했지만 역시나 현실은 그와 달랐다. 언제나 그랬듯, 먼저 말을 꺼내야 뭔가를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먼저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 : 나한테 줄 거 없어?
아내 : 뭐? 어떤 거? 교보생명 해약환급금?
남편 : 그래.
아내 : 얼마를 줘야 하는데? 교보생명 자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제 내줌?
남편 : 2020년 9월 15일부터 2023년 2월 15일까지
아내 : 토스로 보냄. 427,692원.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먼저 수차례 말을 꺼내야 겨우 이체하던 아내가, 이번에는 예상했다는듯 신난듯한 말투로 단 한 번에 정확히 계산해 이체했다. 예전 같았으면 “당신이 계산해”라며 책임을 떠넘겼을 텐데, 이번만큼은 스스로 계산하고 정산해주었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깔끔했다. 당황스럽게도, 그 ‘깔끔함’이 나를 의심으로 이끌었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며 상황을 되짚었다. 내가 해약 환급금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아내는 끝까지 입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번의 말에 즉시 돈을 보내왔다는 건, 이미 생각하고 있었거나 일부만 떼어준 것일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되었고 다른 계좌에 비밀로한 금액이 더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도 과한 지출을 내게 상의 없이 이뤄졌고, 과도한 카드 할부와 물건 구매는 반복되었다. 이제는 그 숨겨진 소비가 나에게 조차 철저히 감춰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내가 따진 건 단지 금액이 아니었다. 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그 순간 아내가 ‘숨기려 했던 의도’,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거짓과 단절의 그림자였다. 그날 이후, 마음 한 켠에 커진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