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호수에서 근처 석남사로 이동했다
서울-세종간 고속도로가 한창 건설 중이라 곳곳에 하늘 높은 다리 기둥들이 한적하게 가는 길손의 심금을 긴장케 한다
석남사까지는 2차선 길로 거의 절 밑까지 이어져 있어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서운산 석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80년(문무왕 20)에 고승 석선(奭善)이 창건하였고,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화덕(華德)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성시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서운산 동쪽 기슭에 있다.
서운산은 칠장산(491.2m)에서 한남정맥과 갈라져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금북정맥 마루금이 칠현산 (516m) , 덕성산(520m)과 배티고개를 지나 바로 이 서운산을 거쳐서 충청남도 성거산(579m)으로 맥맥히 이어지고 있으니 평야지대인 안성 일대에서는 대표적인 산이다.
그런 백두대간의 정기를 이어받아서인지 그리 높지 않은 산세인데도 이 천년고찰 석남사를 비롯해 청룡사, 좌성사 등 불교 기도도량이 여럿 묵묵히 웅거하고 있다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왜 이런 서운산 북쪽에 위치한 이 조그마한 사찰이 그런 불교계 전통을 가졌는가 궁금한 이에겐 절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오르는 돌계단의 경관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대웅전 바로 아래 학이 나는 듯한 팔작지붕집이 영산전과 조화를 이루며, 옹기종기 터를 다스린 석남사 경내는 서운산의 풍취에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풍겨난다.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으로 알려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겹쳐마 맞배지붕으로 단촐하면서도 당당해 보인다.
최근엔 공유와 이동욱, 김고은이 주연으로 찍은 도깨비 촬영지로는 유명해져 그 신비로운 공간적 느낌이 더 배가된 곳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영산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석탑재(石塔材)와 마애불(磨崖佛) 등이 있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팔작지붕집이다. 날렵한 지붕 끝이 숲속에 살포시 가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더한다.
보물 제823호로 지정된 영산전은 막돌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위와 창방(昌枋) 위에 평방(平枋)을 놓고 공포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짜 놓은 다포식건물이다.
이 건물은 공포의 짜임새가 조선 초기와 중기 사이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가운데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그 좌우로 오백나한을 모신 이 영산전은 1562년 처음 건립한 후 다른 전각과 달리 임진왜란 때 소실을 면하여 이러한 건축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석남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지(寺誌) 등이 없어 분명하지 않지만 암막새에 새겨진 명문에 ‘雍正三年己巳三月日造成(옹정3년기사3월일조성)’이라고 되어 있어 1725년(영조 1)에 해당되는 시기를 알 수 있으며 구조의 기법으로 보아 법당의 중건연대와 합치한다고 할 수 있다.
대웅전은 영산전(靈山殿)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높게 쌓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고대(高臺) 위, 산 중턱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여 자리잡았다.
자연석의 주초석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웠는데 높이가 영조척(營造尺)의 8자(약 2.5m) 정도이다.
귀기둥은 굵고 약간의 솟음이 있으며, 굵은 기둥은 원목에 가깝게 다듬어서 매우 천연적이다. 창방(昌枋) 위로 평방(坪枋)을 얹었는데 창방 높이 8치에 비하여 6치밖에 안 되는 나약한 것이고 그것도 두 가닥 재목을 맞이은 부재여서 매우 취약하다.
공포(栱包)는 다포계에 속하며 주간(柱間)에 두 개의 공포를 더 배치하였다. 맞배집이어서 측면으로는 공포구조가 계속되지 않으므로 귀기둥 위에서 마감시키느라 애를 썼는데 앞쪽의 처리와 뒤쪽의 정리에 차이가 있다. 이는 행공첨차를 토막처럼 만든 기법과 더불어 고려 말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
문은 보편적이나 사분합 문짝은 1985년도에 새로 설치하였다. 하방(下枋)은 주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높이에 걸렸으며, 하방에 의지하고 귀를 걸어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는데 매우 어색하다. 이는 원래 맨 바닥으로 방전(方塼)을 깔았던 구조임을 암시하고 있다.
내부의 가구(架構)는 새로 구조한 빗천장으로 가려져서 다 볼 수 없게 되었으나 대들보에 동자주를 세워서 하중보를 받치고 그 위에 다시 종보를 얹어 판대공을 받치고 종도리를 얹게 된 것으로 보아 9량집[九樑架]으로 보인다.
새로 고친 불단 위에 본존상이 있고 머리 위에 닫집이 조성되어 있는데 중층의 보궁형으로 꾸민, 매우 드문 유형이다. 단청은 1985년에 새로 하였다.
못 본 듯, 안 들은 듯, 말 없이 속세에서 초탈하며 지내라는 동자승의 가르침이 앙증맞다
강당 옆으로 단촐하고 수수하게 꾸며놓은 통나무 벤치도 또한 석남사의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석남사 옆 계곡엔 시원한 물이 흘러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석남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서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청룡이 상스러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서운산인 만큼 그 산의 정기를 품은 휴양림이니 구름에 떠 있는 듯 더욱 세태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편안케 한다
도심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산속의 맑은 공기와 나무 등 자연환경이 좋다. 잔디광장에서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좋다.
석남사로 이어진 산책로와 서운산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가벼운 걷기를 하면서 자연의 품속에서 몸과 마음 모두를 힐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