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간에서 서북방으로 2km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월류봉 밑 일대의 절묘한 산수를 가리켜 한천팔경이라 한다.
한천팔경은 제1경인 월류봉을 비롯하여 사군봉·산양벽·용연대·냉천정·화헌악·청학굴·법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월류봉의 여러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한천팔경의 제1경인 월류봉은 높이는 400.7m의 봉우리로 깎아지른 절벽산 아래로 물 맑은 초강천 상류가 휘감아 흘러 수려한 풍경을 이룬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이름처럼 달밤의 정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봄이 오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물들어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가을 단풍과 산행, 둘레길 트레킹 등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한때 이곳에 머물며 작은 정사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였는데 월류봉 아래쪽에 우암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천정사(충청북도 문화재자료)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충청북도 기념물)가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집이다.
원래는 그를 배향하는 한천서원이 있었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후학들이 유림회(儒林會)를 결성, 한천정사를 건립하였다. 누각이 위치한 원촌리 일대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곳에 한천정사가 있어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다.
지금은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 탐방객을 맞고 있다
이 보은, 옥천, 영동 쪽은 송시열의 자취가 특히나 많이 남아있다 그가 거친 곳마다 이렇게 유허비니 흔적이니 하며 그와 연결지으려 애쓴 장소가 대부분이다 조선후기를 송시열의 나라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남인을 깡그리 없애고 제자인 윤증의 소론마저도 척결시키는 냉혈한들, 정치의 생태가 그렇다지만 그들의 행태에서 이 나라는 부패의 썩어 문드러짐으로 현재까지 훌륭한 민족임에도 정치로인해 그 제약을 가져오고 있다
한천정사에서부터 월류봉 둘레길은 이어지나 날씨가 덥고 홍수로 인해 주변이 지저분하여 차를 끌고 마을을 조금 나와 원촌교부터 여울소리길이란 둘레길을 걸었다
남쪽으로 해를 막아주고 옆으로 흐르는 냇가의 물흐름이 바람을 만들어 이 폭염의 더위에도 잠깐 즐길만 하였다
반야사까지 7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니 봄 가을 트래킹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