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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죄를 용서받은 자의 복(시편 32:1~11)
* 본문요약
다윗은 자신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았더니,
그 죄로 인한 답답함에 종일 신음하여 뼈가 쇠하고,
그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답답함과 두려움에 다윗은 여호와께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은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다 다윗이 죄를 자백하리라 결심하고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주께서 그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크게 기뻐하며 주께 노래하리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다윗은 세상의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외칩니다.
찬 양 : 487장(새 369) 죄짐 맡은 우리 구주
485장(새 366) 어두운 내 눈 밝히사
* 본문해설 : (다윗의 마스길)
1. 죄 사함을 받은 자의 행복(1~2절)
1) 허물의 사함을 얻고(하나님께 거역한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거짓된 것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여호와께로부터 죄 없는 자로 인정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 허물(1절) : 폐솨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폐솨’는 ‘반역하다, 거역하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를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 죄(1절) : 하타아
‘죄’에 해당하는 ‘하타아’는 ‘표적을 빗나가다, 길을 잃다’는 것으로
올바른 진리의 말씀에서 떠난 삶을 가리킵니다.
- 사함을 얻고(1절) : 나사
‘사함을 얻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는
‘짐을 들어 올리다, 나르다’는 것으로,
‘죄의 짐을 지워버리거나 옮겨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저지른 죄로 인하여 그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가리움을 받은(1절) : 카사
‘가리움을 받다’에 해당하는 ‘카사’는 ‘덮다’는 것으로
그 죄가 가려져서 하나님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 간사함이 없고(2절) :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순전한, 속임이 없는’을 뜻합니다.
- 정죄를 당하지 않는(2절) : 로 하솨브
‘정죄를 당하지 않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로 하솨브’입니다.
이 단어에서 ‘하솨브’는 ‘~의 탓으로 돌리다, 전가하다’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을 뜻하는 ‘로’가 붙어서
‘죄에 대한 책임을 일절 전가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2. 죄의 고백과 용서 받음과 구원(3~7절)
3) 내가 토설치 아니할(입을 열지 아니할, 죄를 고백하지 아니할) 때에는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밤낮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5) 이에 내가 주께 내 허물을 자백하리라 결심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6) 이로 인하여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그러면)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재앙이 홍수처럼 밀려올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리이다(구원의 노래가 나를 감싸게 되리이다)(셀라).
- 자백하리라(5절) :
자백은 댐의 수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께 죄를 고백하면, 그 죄로 인한 압박과 갈등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 경건한 자(6절) : 하 시드
‘경건한 자’에 해당하는 ‘하 시드’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6절) :
주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직역하면 ‘하나님을 만날 때가 되어서’인데,
본문에서의 뜻은,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바로 그 순간에 기도하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리이다(7절) :
‘두르리이다’는 ‘주변에 가득하게 되리라’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의 환호성과 같이
큰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3. 백성들을 향한 다윗의 훈계(8~11절)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 주리라, 인도하리라).
9) 너희는 무지한(미련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재갈과 굴레를 씌우지 않으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고통)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변함없는 사랑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 정직한(11절) :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 묵상 point
1. 죄를 고백하지 않은 자의 아픔과 고통
시편 32편은 시편에 나오는 일곱 편의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일곱 편의 참회시 중에 32편과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인 후에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예수께로부터 완전한 자로 인정받을 만큼
구약에 나온 인물 중에 그 신앙이 뛰어난 자였으나,
이런 엄청난 죄를 저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32편은 다윗이 그런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도
주께로부터 완전한 자로 인정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1) 내가 고백하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3절)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한 후에 그의 남편 우리야까지 죽였습니다만,
블레셋 군사들을 통해 우리야를 죽게 하였으므로
이 일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다윗은 보통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다윗은 아주 큰 고통에 싸여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그가 주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는
종일 신음하므로 그의 뼈가 쇠할 정도였다고 고백합니다.
죄책감에 뼈가 녹아내릴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죄를 지었으니 염려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윗의 내부에서 양심이 그를 공격하여 죄책감에 큰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2) 주의 손이 밤낮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4절)
주의 손이 밤낮으로 누른다는 것은,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중압감이 마치 울산바위가 내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답답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죄를 어찌할까,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서
마치 나무들이 여름 가뭄에 바싹 마른 것처럼 다윗의 몸의 진액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 묵상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죄를 짓고도 애통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먼 훗날에 일어나는 일이니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다며
그저 그렇게 넘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그 아픔과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죄입니다.
죄를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는 그 죄의 사함을 받지만,
아파할 줄 모르는 자는 그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아파하며 아뢰는 이것이
바로 다윗이 주께로부터 완전한 자로 인정받는 그 첫 출발입니다.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아파하며 애통하며 부르짖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죄는 지었지만 죄에 대한 감각까지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뼈가 녹는 것과 같은 아픔이나,
주의 손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죄의 감각을 잃지 않는 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기도를 멈추면 죄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다윗의 탄식 : 허물과 죄를 용서받은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1) 허물의 사함을 받고(1절)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뼈가 녹아내리고, 바위가 가슴을 누르며,
진액이 다 마른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던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만일 시간을 되돌려 죄를 짓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엄청난 죄를 지었으니 어찌할까,
다윗은 앞으로 1,000년을 더 산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싸입니다.
여기에서 허물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허물을 용서하시면
그가 저지른 반역 행위를 모두 지워버리셔서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자와 같이 됩니다.
죄를 저지르기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간 것과 같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그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지은 죄가 너무나 커서
주께로부터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싸입니다.
2) 그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1절)
만일 그 죄가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면,
누군가 자기의 죄를 가려주어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죄가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이 죄를 지었더라도 죄 없는 자로 여김 받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자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그 죄가 가리움을 받아 심판을 받지 않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다윗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자기의 죄가 너무 큽니다.
남의 아내를 임신까지 시키고,
그것을 숨기겠다고 그 남편까지 죽인 이 엄청난 죄는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영원히 이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어찌 될까,
영원히 그 죄가 가려질 수 없다면 어찌 될까,
하나님의 심판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다윗이 절규하며 말합니다.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 다윗이 저지른 죄가 덮어져서 하나님께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3)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2절)
그렇게 하나님께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가려져서 하나님께로부터 죄 없는 자로 여김 받게 된다면,
그는 죄를 짓지 않은 순전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고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자는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할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과거에 그가 죄를 범했다는 것은 천년이 지나도 변할 수 없습니다.
그가 지은 죄가 이미 그의 몸에 있으니
이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용서받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자처럼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죄를 짓지 않은 자처럼 여김 받는 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윗은 그가 죄를 짓기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3. 용서받은 자의 기쁨
1) 내 죄를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 죄를 사하셨나이다(5절)
그러나 영영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죄를 용서해 주실 자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해 보기로 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또 혹시 누가 압니까?
다윗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용서받을 자신 없는 가운데 죄를 지었음을 고백합니다.
나 같은 자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며 간절하게 간구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 바로 그 순간에
곧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기쁨을 어찌 표현한단 말입니까?
만일 자기가 하나님이라면 자기 같은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큰 죄를 지었는데도 주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다윗은 어떻게 알았나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닐 텐데
다윗은 그것을 어찌 알았을까요?
3~4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고, 말씀을 보아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고, 좋은 경치를 보아도 아름다운 줄 모릅니다.
그러나 주께 회개를 한 후에 이 모든 일이 회복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에 회복된 것입니다.
바울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는데,
다윗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회복되었으니
이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3)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기도할 것이라(6절)
➀ 주를 만날 기회 : 하나님을 찾아야만 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주께 용서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은 허물도 죄도 다 가려졌고,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의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기도하라”하고 외칩니다.
주를 만날 기회를 얻으라는 것은
주께서 기도할 기회를 주실 때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죄의 아픔을 느낄 때, 혹은 병이 들었을 때, 갈등과 번민에 싸여 있을 때,
언제든 하나님을 찾아야만 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➁ 그러면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미치지 못하리라(6절)
답답해만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 답답한 마음을 주께 고백하고 아뢰는 것이 기도이고 회개입니다.
이렇게 주께 고백하고 기도하면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홍수는 갑자기 밀려오는 재앙을 뜻합니다.
홍수처럼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할 때마다, 고민과 갈등과 번민이 생길 때마다 주께 기도하십시오.
죄를 범한 것을 깨달았을 때마다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4) 주께서 나를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두르리이다(7절)
이렇게 주께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면
주께서 우리를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우리를 구원의 노래로 두르실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로 두른다는 것은
마치 군사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환호하듯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변이 온통 기쁨으로 가득한 것, 내 몸과 마음에 기쁨이 가득한 것입니다.
주께 용서받은 자에게 이런 기쁨이 주어집니다.
4. 백성들을 향한 다윗의 훈계
1) 너희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지어다(9절)
그러므로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라고 다윗이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말이나 노새는 그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자들은 많은 슬픔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나마 슬픔과 고통 중에라도 주께 돌아오면 다행인데,
더 많은 사람이 슬픔과 고통 중에도 주께 돌아오지 않고 멸망 중에 인생을 마감합니다.
다윗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외칩니다.
2)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10절)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이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기만을 고집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가 하나도 용서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두르게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여 결국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면
주님의 사랑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게 되는 것입니다.
3)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1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 죄의 용서함을 받은 의인들은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하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다 즐거이 외치십시오.
마음이 정직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오직 용서받은 자만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 순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천국 백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일을 즐거이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기도제목
1. 우리도 다윗처럼
허물과 죄에 대하여
아파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하게 하옵소서.
3. 우리도 다윗처럼
용서 받은 자의 기쁨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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