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코스 : 장수폭포 입구 - > 강천면사무소
경기 둘레길 32코스 들머리인 도전 2리는 “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崔時亨,1827 – 1898) 선생께서 동학 혁명의 좌절 이후 관군을 피해 1897년 8월부터 1898년 1월까지 5개월간 은거하던 곳이다.
해월 선생은 71세라는 고령과 병환 등으로 거동이 쉽지 않을 때, 이곳에서 「이천식천(以天食天)」,「이심치심(以心治心)」 등의 법서를 펼쳤다. 특히 「이천식천」의 법설은 오늘 인류에게 가장 긴요한 사안이 되는 생명, 생태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 중요한 가르침으로 많은 석학들의 관심이 되는 가르침이다.
이곳은 해월 선생이 1897년 12월 24일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 - 1922)에게 동학의 도통(道統)을 전수한 곳이기도 하다. 해월 선생이 체포되어 순도(殉道) 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추적과 은둔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행해진 도통 전수는 훗날 일어나는 3.1 혁명으로 이어진다. 도통 전수를 통해 스승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정신을 이어받은 의암 손병희의 용단과 결의가 거국적인 3.1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해월 선생의 둘째 아들이며, 항일운동과 3.1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인 최동호(崔東昊, 1897 – 1923) 선생께서 태어난, 유서 깊은 독립운동의 산실이기도 하다.” (전거론 동학 유적지 안내문에서)
해월 선생의 높은 뜻에 고개 숙여 추모하고 강천 면사무소를 향해 아스팔트 길을 걸어간다. 원심천을 건너는 전거론교를 지나 원심천과 헤어져 목아 박물관 방향으로 걷는다. 자동차 도로이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차라리 종주 산행을 좋아하여 백두대간을 종주한 우리로서는 보금산 능선을 타고 걸어가는 것이 눈이 오면 넘어갈 수없을 것 같은 도로 길보다 산길을 걷는 묘미를 느끼면서 안전하고 편한 길이 될 것 같았다.
도로 따라 걸어가니 문막, 부평리 방향과 여주, 강천 방향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에서 여주, 강천 방향으로 진행하니 마치 보금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처럼 가파른 오르막길로 계속되었다.
제설작업을 위한 모레 함에는 겨울철 사용하고 남은 염화칼슘 몇 포대가 놓여 있고 모레가 준비되어 있다. 도전리가 여주의 끝자락에 소재한 오지 마을을 실감하면서 고갯마루에 오르니 금마교가 놓여 있다.
진행 방향 오른쪽의 보금산과 왼쪽에 있는 마감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보니 경기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안전한 산길을 버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위험한 도로로 진행토록 길을 만든 것이 다소 아쉬웠다.
산길로 경기 둘레길을 조성하였다면 보금산과 마감산을 종주 산행도 하고 경기 둘레길도 걷는 이중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터라는 아쉬움 속에 금마교에서 마감산을 향해 오른다.
산길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가파른 오르막길로 계속된다. 다행히 고스락은 그다지 높지 않아 힘은 들었지라도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고스락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팔각정이 있었다.
마감산(▲388m)은 보금산(▲365m)의 남쪽 봉우리로 말감산이라고도 하는데, 말은 머리 두(頭)와 수(首)자에서 유래되었고, 감은 큰 대(大)자에서 유래되었다. 제일 큰 산이라는 뜻으로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여주군지》에서 유래를 찾아보면 북벌의 공을 세웠던 이완 장군이 영월루에서 말을 풀어놓았더니 말이 이 산으로 갔고, 그때부터 이 산을 마감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감산 [馬甘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주변을 조망코저 팔각정에 올랐으나 나뭇가지가 시야를 방해한다. 조망을 할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산바람이 땀을 식혀 주고 진달래가 방긋이 웃고 있다. 산속에 외롭게 피어나 손님을 맞이하였으니 기쁜 마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봄의 향기가 이곳저곳에서 물씬거린다. 나뭇잎은 파랗다. 봄을 찾아온 것이 아니지만 봄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중년 부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산에 오면 모두가 착한 마음씨가 되어 서로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면 사람의 타고난 착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도 푸른 하늘과 짝이 되어 걸어갈 때 마귀할멈 바위가 있었는데 사방이 탁 트이어 여주 시내와 남한강이 두 눈에 사로잡힌다. 고스락에서 못내 아쉬웠던 조망을 할 수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면 부둥켜안고 기쁨을 발산하듯 조망은 산과 산이 하나가 되는 화합의 축제인데 그 만남을 바로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다.
여주 시내와 여강을 바라보며 여강길을 걸었던 때를 떠올리며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귀할멈 바위는 치마 입은 여인이 턱을 두 손에 괴고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전에 내려오는 전설이 흥미롭다.
“ 옛날에 마귀할멈이 이 산에 살고 있었는데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려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을 빼앗기도 하여 이 근방의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고 한다.”<표지판에서 발췌>
아마 마귀 할멈 바위에서 산악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조심하라는 의미로 여겨지는데 지금은 철제 계단이 놓여 안전하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한편 북내면 석우리에는 마귀할멈의 지팡이로 전해지는 선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등산로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계속되었다. 때마침 평상이 있어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점심시간이다. 쌀국수를 끓여 먹는 간단한 점심이 무엇이 그리 맛있는 점심이 될까마는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꿀맛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날씨도 훈훈한데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땀방울이 맺힐 틈도 주지 않은 봄의 기운에 흠뻑 젖어있는 탓인지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다정스러운 부부도 있고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도 있고 홀로 걷는 사람도 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외로울 것 같았던 산길을 다정한 산길로 이끌어 주며 따사로운 활기가 넘쳐나는 길로 젖어 들게 하여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걸어가 성주봉에 이르렀다. 성주봉을 알리는 표지기 등이 전혀 없어 지도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봉우리였다.
성주봉을 내려오니 태극 바위가 있었다. 장년 부부는 사진 찍기에 바빴는데 바위를 바라보니 태극문양처럼 커다란 바위 중간이 태극문양으로 갈라져 있었다. 신비의 돌이라고 할까!
태극 바위를 지나도 등산로는 완만한 등산로가 계속되어 온종일 걸어도 걸을 수가 있을 것 같았는데 돌연 봉우리가 아니 등산로 상에 성주봉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독도의 착오로 여기고 표지목이 세워 놓은 곳을 성주봉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지만 성주봉은 분명 태극 바위에 이르기 전 야트마한 봉우리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주시에서 세운 안내 표지판을 신뢰하지 않는 고집 분통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지라도 지형과 지도가 일치된 곳을 무조건 여주시의 권위에 억눌려 무조건 동조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뚜갈봉을 향하여 걸어갈 때 호젓한 산길에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조차 희미하여 표지판이 세워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던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행치 고개였다.
“행치行峙고개는 강천면 간매리와 부평리를 사이에 두고 여주와 원주를 넘나들던 고개로 단종 유배 당시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어수정에서 휴식을 취한 후 강천면 이호리 거문동을 거쳐 매화꽃이 만발한 간매리 설경주를 지나 이 고개에 이르렀다. 임금이 행차하여 행치行峙라고 전해진다”<표지판에서 발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를 당하였지만, 그가 물을 마시면 어수정이 되고 고개를 넘으면 행치 고개가 되니 백성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오로지 단종 대왕에게 향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개를 내려가는 길과 오르는 길을 바라보니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없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여겨졌지만, 단종 대왕께서 유배 가실 때 넘어간 길이니 단종 유배길로 조성되기를 바라며 뚜갈봉으로 향했다.
길에 취해 거침없이 달려온 길, 뚜갈봉에 이르니 앞서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인 표지기가 즐비한데 어느 누가 성지 지맥을 알리는 표지기를 매달아 놓았다. 보금산, 마금산, 성주봉, 뚜갈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여강변에 솟은 자산으로 이어지는 성지 지맥을 알려 주고 있다.
산군은 산길을 따라 자산에 이르지만, 도보 여행가는 산길. 자동차길. 물길 등 모든 길을 두 발로 밟으며 우리 국토를 걸어간다. 어찌 우리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 땅을 발목이 시리도록 걷고 싶은 것이다.
4시간을 걸었으면서 여기서 끝을 맺은 것이 아쉬워 더 걷고 싶은 마음뿐인데 여주온천에 이르니 보드라웠던 산길이 다하고 보도 차도가 구별이 없는 아스팔트 길로 이어졌다.
경기 둘레길은 보도차도 구별이 없는 아스팔트 구간을 위험 구간으로 분류하여 각별한 주의를 환기해 주고 있다.
직선으로 뻗어간 길이 아니고 굽어 돌아가는 길은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올 수가 있어 조심하며 강촌 삼거리를 지나 24시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강천면사무소에 이르렀다.
● 일 시 : 2023년 4월 2일 일요일 맑음.
● 동 행 : 빅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
● 행선지
- 09시55분 : 도전리 버스 정류장
- 10시40분 : 금마교.
- 11시10분 : 마감산 고스락. 팔각정 있음
- 11시40분 : 점심
- 13시20분 : 성주봉
- 13시50분 : 행치 고개
- 13시44분 : 뚜갈봉
- 14시25분 : 여주온천
- 15시25분 : 강천면사무소
● 도상거리 및 소요시간
◆ 도상거리 : 11.4km
◆ 소요시간 : 5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