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침례교회의 직분 문제를 생각해 보자. 김용해 목사가 아버지에게 김권사라고 부른 일은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침례교회에서 목사와 집사만을 직분으로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한 때나마 침례교회가 장로와 권사 직분을 굳이 받아들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침례교단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장로 직분의 파동을 생각할 때, 이 문제는 나의 침례교 신앙 양심상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장로와 권사의 직분이 침례교회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던 시기는 1946년에서 1951년 사이 불과 6년 정도였다. 1946년 2월 재건회의가 소집되어 장로교로 통폐합하자는 움직임이 기억에서 채 가시기 전, 그 해 9월에 대화회를 열어, 교단의 교규를 대폭 바꾼 일이 있었다. 여기서 대화회를 총회로 변경하고, 감로를 장로로, 통장을 권사로, 총장과 반장을 집사로 변경했다. 새로 선택된 임원 가운데 장로는 포항구역의 이종학(李鐘學), 임성용(林成龍), 예천구역의 이덕상(李德相), 이학이(李學伊), 김성기(金成基), 이성암(李成岩), 윤종성(尹鐘成), 박맹춘(朴孟春), 공주구역의 조병진(趙炳眞), 임건수(林建洙), 이현구(李鉉九), 유동현(柳東賢), 강경구역의 윤상순(尹相順), 한찬필(韓贊弼), 울도지역의 김석규(金碩奎) 등 17명이었다.
왜 동아기독교는 갑자기 장로와 권사직을 수용하게 되었을까? 이 문제는 애초에 펜윅 선교사가 한국 기독교계에서 주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장로와 권사직을 거부하고 왜 감로, 통장, 총장, 반장 등으로 호칭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이것은 직분과 관련해서 한국 침례교의 정체성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초기부터 이 생소한 동아기독교의 직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원로목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준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들의 추측에 따르면 동아기독교는 장로교단이나 감리교단과 같지 않다는 차별성을 표명하기 위해서 그처럼 다른 명칭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장로의 기능을 별도로 보지 않고 목사나 감독과 동등하게 간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일본의 정치행정 체제를 적용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 원인인지도 모른다.
교단 창립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사용되던 동아기독교의 직제가 개편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근원적으로는 펜윅 선교사의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결정적인 요인은 해방 후 재건회의에서 장로교와 합동하자는 일부 세력들의 여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이 교단을 이끌어 왔던 원로목사들의 방관도 그 원인으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직제에 대한 교단 지도자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그에 대한 일관적 신념이 결여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