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굶는 밥
이영백
제목이 왜 이래? 밥 중에는 먹는 밥이 있어야지, 없어서 못 먹는 “굶는 밥”이 진정 있을 것인가? 사람으로서 굶는 설움만큼은 없어야할 일이다.
초임(1973년)을 바닷가에 교사로 발령받았다. 그때만 하여도 그렇게 살기가 어려웠을까? 하기는 나 자신부터 가난을 잊으려고 국가 교육공무원 별정직 교사가 되었지 않았던가? 너무나 어려운 경제시대에 살았다.
여름날 수업 중에 판서하고 있다. 돌아서서 판서 중에 있는 데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그 원인을 찾았다. 쉰 명 학생 중에 가장 번지러웠던 한 학생이다. 그 자리에 갔는데 책, 공책, 연필도 없다. 단지 책상서랍 속에 발견된 것은 생 미역귀다리가 수북이 들어 있을 뿐이다.
수업시간에 그 미역귀다리를 먹으면서 꼬투리 던지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수업 마치고 그 학생을 남게 하여 만나 조곤이 이야기 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엄마는 바닷물에 해조류 채취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초임부터 영일군(오늘 날 포항시 남구)에서는 점심시간에 빵이 지급되었다. 농․어촌학생들에게 영양을 도와준다는 취지로 점심인 것이다.
교사를 그만 두고 대학 행정직으로 전직하였다. 새로 전입한 직원이 안동에서 교사를 그만두고 나처럼 행정직으로 들어왔다. 교대후배인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고교 다니면서 “굶은 밥”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네 시간 수업마치면 배고파 왔다. 수돗물 틀어 배부르게 마셨다. 양지바른 자갈 선에 앉아 졸았다. 5교시가 시작되어도 모르고 잤다. 깨어나서 늦게 교실에 들어갔다. 과목선생님에게 다짜고짜로 뺨을 얻어 터졌다. 맞아서 아픈 것이 아니라, 배고픔이 서러워 울었다.
밥 먹을 때 못 먹고, 굶으면 거지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교 2학년 때 나흘간 굶어보았다. 하늘은 반짝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려 걸음조차 걷지 못하였다. 굶는다는 것을 체험 없이 엉뚱한 위로의 말은 말하지 말라.
“굶는 밥”이 진짜 있다. 결코 다이어트 한다고 굶은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 버려진 상태에서 굶었다. 그 다음부터 굶는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고통인 것을 직접 알았다. 이제 굶지 않고 살아간다.
결코 굶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에도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쳤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