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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생활의 변화
책상 앞에 놓인 영양제 한 알을 입에 툭 던진다. 물을 마시고 삼킨다.
병원, 약, 건강식품 등등 나와 많이 친하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원정? 이제 원정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일반적인 등반지가 되어버린 요세미테를 가기로 결정하고 아니 항공권을 예약하고 부터 먹기 시작한 건강보조제들이 생겼다.
미리 챙겨먹어야만 하는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았다.
두 세시간 후 다시 작은 알약 2개를 먹는다. 면역력을 놓여 준다는 싼 홍삼정이다.
홍삼액기스 그 밖에의 것은 나만의 목적을 위해 챙겨 먹기에는 비싸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 중 가장 저렴한 홍삼정을 택했다. 매일 하루 세 번을 챙겨 먹어야 했지만
원정을 다녀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남을 몇 알을 먹는 것이다.
II. 설마,,,
작년 가을인가 동기 모임을 인수봉에서 하면서 자연스레 나온 얘기가 원정얘기고
다음에 누가 가느냐며 서로 가라가라 하다가 몇몇이 거론되었고 그 중에 나도 있었다.
막연하게 언젠가 가게 될거라 생각만 했지 실천에 옮겨지는 건 아주 먼 훗날일거라 생각했었다.
2015년 졸업하던 해에 동기 세명과 다른 인원1명으로 조디악을 다녀오고 이듬해 작년 2016년 동기 중 동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산악 대선배님 두 분과 총무였던 언니, 그리고 동문 한 명이 텐저린트립을 등반 했다.
다정다감팀의 등반 원정 준비와 훈련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했던 것이 구체화되고 본격적으로 팀 구성을 하기로 했다.
이미 그 전에 합의가 된 세 명과 1명을 섭외하기 위해 여기 저기 도움을 요청하고 권유해보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해가 바뀌었고 얼음은 녹아 들고 있었다. 세 명~~!!!! 이서 등반은 가능은 하겠지만 남자 한 명은 엄청 고생할 것 같았다..
그래도 팀이 깨지거나 못 가게 되는 상황은 발생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한 번 결정했으니 무조건 go다.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고 그 무렵 남은 남자 동기는 개인 사정으로 올해는 갈 수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언니와 나는 고민 고민,,그래도 누군가 나타나겠지,,있겠지,,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지만 그렇게 그냥 시간만 보낼 수 없었다.
가긴 갈건데,,,종로에서 겸사겸사 선배님들과 예비모임을 가졌고 그 날이 2월6일이다.
그냥 분위기가 좋았고 어쨌든 가긴 갈 거니까,,그러다 술기운인지 본능적인 감인지 우리끼리 가게 될 것 같은 기운이 휘돌았고
언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가자고 내뱉어버렸다.
차라리 잘 됐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 자리서 결정했다. 둘이 가기로 그리고는 그 자리는 발대식처럼 되었고
앞으로 차근 차근 준비할 일만 남은 듯 했다.
III. 훈련
그 날 이후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매 순간 온통 머릿속은 요세미테 원정에 대한 것으로 차고 넘쳐 흘렀다.
그 중에 걱정덩어리가 홍수가 되어 있었다.
간다고는 했지만 초보자 둘이 그것도 여자만, 아무리 준비를 잘 한 다해도 들은 경험담이나 등반기를 보면
고생문이 훤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이미 결정을 해놓고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때 문득 캠프매니저 역할을 해 주실, 아니 원정 대장 역할을 해 주실 것만 같은 한 분이 머리 속에 떠올랐고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고는 간절한 맘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너무나 쉽게 흔쾌히 응해주셨다.
아~~~하~~~흐~~~ 안도의 한숨은 가슴 밑바닥 끝에서부터 올라왔다.
원정 대장님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룬 듯 했고 언니도 넘 다행이라고 하고
이제 우리는 모든 게 다 준비된 듯 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제 실무적인 것들만 신경 쓰고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항공권도 예약하고 훈련일정도 잡고 3월달 부터는 매주 빠짐없이 본격적으로 훈련하기로 맘먹고 언니와 의논해서
첫 훈련을2월18일 유양리서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 팀을 서포터 해주시는, 팬클럽을 만들어도 될 만큼, 원정 대원보다 더 큰 열정으로 지지해 주신 선배님들이 계셨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3월 한 달은 등반 연습, 4월은 등반과 시스템, 5월은 시스템, 몸 관리 위주로 계획했던 것들을 지켜가면서
어느 새 5월 초가 되었고 출발까지 한달 남짓 남았다.
IV. 떠나기
난 그냥 떠나야 했다. 난 그냥 가야지. 뭘 하든 일단 가야지, 요세미테로 샌프라시스코로, 미쿡으로,,,
태평양 건너 태어나 처음 가는 일인데,,,
언니가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할때 이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떠나는 연습이라도 하듯,,,
등반, 원정을 떠나 무조건 가야지,,그런데 가서 할 건 지금까지 해 온 벽에 매달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생각나지 않았다.
마지막 훈련을 적벽에서 언니 없이 엄마 잃은 4살 꼬맹이처럼 어쩔 줄 모르고 허공 속에서 허우적대다
1박2일을 그렇게 보내고 혼자서 훈련 끝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모든 게 끝인듯,, 끝이네,,
V. Height of route 1800' 16피치
1일차_6월9일 1피치
전날 물과, 장비를 1피치 아래 데포시키고 당일에 식량과 침낭 등을 챙겨 다시 올라갔다. 의정부클라이밍팀도 함께 짐을 올려주었다.
조디악 선발팀, 나, 루나이클립스, 장비 세팅 후 선발팀 출발, 나는 그 사이 루나이클립스 빌레이를 보는데
집중하면서도 눈길은 자꾸 조디악 선등한테로 갔다.
선발팀이 2피치 종료 후 홀링과 회수 시작했고, 나도 빌레이를 끝냈다. 오전이 훌쩍 갔고 등반 준비를 서둘렀다.
시간이 애매했지만 오늘 1피치라도 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시30분 오리지널 루트 등반시작. 별다른 감정이나 느낌은 없었다. 첫 장비가 훅이긴 했지만 너무나 확실했고 그 다음엔 볼트였고
먼저 간 선발팀 선등자가 갔으니 뭔가 설치할 자리는 있겠다 싶어 믿고 출발했다.
중간 중간 선배님들이 말씀해주신 훈련할 때는 왠지 손이 잘 안 가던 BD C3의 활용성을 실감하면서,,
5시정도 등반 완료하고 홀링 준비를 했다. 해지기 전에 등반 끝내고 해뜨기 전에 등반 시작하라는 룰을 지키고자,,,,
하지만 이날 단 하루뿐인 듯하다. 어둠이 오기 전 잠을 잤던 날은,,,정상에 오른 날 말고
2일차_6월10일 2피치, 3피치 홀링시 비 오기 시작함
조금 긴 트래버스를 하는 구간이었고 그 구간이 끝나고 수직으로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반 로프가 올라 오지 않았다.
아무리 당겨도 꿈쩍하지 않았다. 내겐 첫 번째 비상 상태,,,어쩌지 왜 안 올까, 뭐가 문제인걸까,,
고민하다 내려가면서 회수 하기로 맘 먹고 그 지점이 크랙 지점이어서 나란히 캠 4개를 설치하고 이퀄라이징 한 후 백 클린을 시작했다. 직선에서의 회수는 괜찮았지만 1피치 지점으로 가는 트래버스 구간에서는 엄청 힘들었다.
1피치에 가까이 가자 로프가 안 올라온 이유가 보였다.
백에 있던 로프가 로프 백 입구의 조여지는 줄과 엉켜서 뭉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리를 풀고 로프를 풀어 아래로 늘어 뜨렸다. 다시 올라가기 위해 주마링을 하려는데 완전히 꺾여 있어서
옆으로 게걸음처럼 주마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몸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3일차_6월11일 3피치에서 종일 머무름
전날 3피치 홀링할 때부터 떨어진 빗방울은 밤새 손톱만한 우박과 함께 쏟아 붓다 그치다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포타릿지에서 꿈쩍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났지만 내려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길인 3피치에서 하루를 더 자고 빗 때문에 눅눅한 침낭 속에서 잠은 올 리가 없었다. 거의 밤을 새웠다.
4일차_6월12일 4,5,6피치
물길이던 3피치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더 잘 수도 없을 만큼 춥기도 하고 몸도 찌뿌둥해서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낫다 싶었고
하루를 그냥 쉬며 보냈기 때문에 서둘렀다.
등반을 시작하려는데 교무님 무전이 왔다. 일찍부터 서둘렀다 시며 나는 날씨 상황이 어떤지 여쭤보고 걍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등반 시작. 얼마안되서 또 다른 확보점이 나왔다. 볼트 세 개,, 오기 전 사진에서 그렇게 많이 봤었는데 원래 3피치 확보점이었다.
이 때 등반 로프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뭔가 딱 하는 소리가 났다. 로프가 초고속으로 땅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무겁고 등반도 잘 안되고 또 다시 후퇴, 원래 확보점으로 와서 다시 로프를 사려놓고 등반 시작.
연이어 4피치를 끝내고 5피치, 6피치 등반까지 하고 5피치로 내려와 잠을 잤다.
그래도 일찍 서둘고 피치도 짧은 편이라 만회를 할 수 있었다.
5일차_6월13일 6,7피치
5피치 홀백 날리고 6피치 회수, 7피치 시작 벌써 시간은 한참 지났고 블랙타워까지 힘겹게 갔지만 그 위는 더 버거워 보였다.
결국 막바지에 두 번의 연속 추락 후 몸에 있던 장비가 거의 없어서 걱정이 될 쯤 확보점이 보였다.
추락 후 장비 설치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점점 더뎌만 갔다. 이젠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가는 거다.
6일차_6월14일 7,8피치
7피치 회수를 하려고 준비하는데 외국팀 선등자가 올라왔다. 인사를 하다 보니 교무님과 잘 아는 사이였다.
8피치 등반 중에 또 등반 로프가 빠져 나와 블랙타워 크랙에 끼는 일이 생겼다.
로프백을 이리 저리 방향을 바꾸고 경사를 지게 매달아 봐도 트래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자꾸 늘어지면서 결국 줄줄 흘러내렸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의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또 후퇴하여 로프를 당겼더니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이리 저리 흔들다 강약 조절을 하면서 당기기를 수 차례하고 나서야
퉁 하면서 튕겨져 나왔다.
아,,힘들다. 그래도 다행이다. 안 빠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갈 수 있네,,잠시 여유가 생긴다.
다시 올라가려니 팬드럼이 심할 것 같아 약간 머뭇거리는데 외국팀 선등자가 low-out으로 본인 로프를 이용해 나에게 매달라고 한다.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고 일직선이 되어 다시 주마를 하고 남은 구간 8피치 등반을 종료했다.
7일차_6월15일 9,10피치
일찍 일어나려 했는데 점점 기상 시간이 늦어졌다. 4시에서, 5시로 오늘은 뒷팀이 먼저 간다는 걸
내가 일찍 시작하겠다 했기 때문에 간신히 5시에 일어났다.
그래도 출발 시간은 7시가 넘었다. 로프 때문에 고생한 게 여러 번이라 한참을 생각해 보다 로프를 비너에 통과시켜 위에 걸어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링 로프와 등반 로프 모두 그렇게 만들어 놓고 등반 시작. 어느 피치보다 수월하게 아무일 없이 등반이 끝났다.
로프도 너무나 착하게 백에 그대로 있었고, 고정을 하고 회수를 위해 그리그리로 하강을 하려는데 그리그리 레버가 헐겁다.
올리면 올린 상태로 있고 손으로 내려야 내려갔다.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소리는 크게 들렸다.
아침에 옆에서 크게 의지가 되었던 은아가 내려간다 했기에 마음을 다잡아 먹고 어떻게든 난 끝까지 간다.
은아 몫까지 내가 잘 해내야 한다고 맘 먹었는데,,,,,,
교무님께 무전을 쳤다. 상황을 설명 드렸더니 아래에 있는 팀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하셨다. 네,,,
그 팀들에게 내가 있는 8피치에서 사선으로 있는 7피치에서 환자로 인해 내려가려는 그들을 몇 시간씩 붙잡아 두고 그리그리를 빌릴 수 있었던 얘기는 그들에겐 A4 용지 4장짜리 이야기가 되었다.
보조 로프에 해머를 달아 7피치로 날렸다는,,,
8일차_6월16일 11, 12피치
이제 4피치만 남았고 난 평정심을 찾은 건지 뇌를 하도 많이 써서 닳아 없어진건지 무념무상인듯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추락으로 벗겨질 뻔한 신발에 혹시나 해서 테이프를 붙였더니 뜨거운 햇빛에 녹으면서 끈적 끈적 레더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눈으로 보이고 뻔한 해결책인 손으로 한번 한번 떼어내면서 하는 어이없는 등반일지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9일차_6월17일 13, 14피치
그 동안 돌려막고 중간에 회수해서 다시 등반하고 했던 것들은 14피치를 한 밤중에 돌려 막았던 것에 비하면 놀이 수준이었다.
너무나 힘들고 긴 밤이었다. 그래도 확보점에 고정하고 피넛렛지로 다시 내려와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제일 값진 보상이었다.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것도 그때서야 보였다.
10일차_6월18일 15, 16피치
아마도 오늘로써 등반은 마무리 될 거라는 걸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들뜨기 시작하고 끝이 보이고
이제 더 가야할 곳이 없어지고 먼 나라에 와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볼트 세 개는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많이 봤었다. 이제 끝났다.
날씨가 너무 뜨거웠다. 너무 흥분하면 안될 것 같았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그래도 마지막 회수와 홀링까지 해야 정말 끝이란 생각을 하면서
어디서 들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정말 마지막은 편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정상에 나무에다 홀링 시스템을 하려다 완전 꼬이고 혼백 무게가 몸에 실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도 몰려오는 게 내 기분과 똑같았다.
교무님께 SOS 치고 차분하게 알려주시는데 어라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너무나 쉽고 자연스레 떠올라야 할 생각이 그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홀링 시스템을 하고 가운데 볼트에 프로트랙션을 설치하고 로플 당겨 홀링을 시작했지만 프로트랙션이 턱에 눕혀져 있어서 로프가 꺾이는 바람에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무거운 홀링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모든 짐들과 나는 그 동안의 모든 것들이 씻겨 내려가도록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마치 영화 쇼생크의 탈출 주인공이 긴 하수구를 통해 탈출하고 나와서 번개와 빗속에서 두 손을 번쩍 들었던 것처럼,,,,,,
6월19일 하산
9시에 만나기로 한 클라이머는 8시에 올라왔다. 그는 나의 하산 길에 동행이 되어줄 길잡이며 짐을 나눠 질 사람이었다.
나를 보자 캔맥주를 주며 한 시간 정도 이런 저런 몸짓과 짧은 언어로 소통하다가 9시쯤 출발,
올라왔다던 길로 하산을 했다. 4번의 하강과 완만한 2번의 하강을 하고 30,40분정도 숲길을 걸어가니 주차장에 닿았다.
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이 말을 의심했지만 정말 우린 2시간만에 내려와 11시에 교무님과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VI. 그 날 이후
10일 동안 단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었다. 하루도 평범했던 날이 없었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건 외롭지 않았냐, 무섭지 않았냐, 열흘 동안,,,
내겐 열흘이 24시간의 열 번이 아니었다.
순간 순간 흘러가는 시간에 모든 걸 맡기고 해야할 것 들을 한 것 같다. 숨을 쉬듯..
감사드립니다.
정보를 나눈 생각으로 작성했지만 잘못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부정확한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영랑아!! 정말고생
많이했어~~
자랑스럽고 존경해^^
장하다 박영랑
영랑이 누나 진짜진짜 대단해요~~~!!!
정말 멋지게 해냈고 또 등반기까지 이렇게 올려줘서 넘넘 고마워요.
곧 한잔 해요~~~~^^
ㅎ 너무 멋져요~~등반때 그 감정이 그대로 밀려오는듯?공감?맥주할때 같이~~~^^
수고했고... 멋지게 잘했어.. 이뽀~~~~ ^^
끊임없는 자기 극복…er의 자랑스런 여성 클라이머 멋짐니다!!! 그리고 완등 축하합니다.
자랑스럽다 친구야 ㅎ
나두 맥주 ㅎ
잔심으로 축하 합니다. 그리고 자랑 스럽습니다.
금년 황금 피켈상은 무조건 박영랑꺼가 당연 합니다.
누나 정말 많이 축하해요.
언제나 안전등반 하시길요....
왜 그랬을까?.....그 벽에서
뭐라 말하기 힘든 짠함이 온다.
고생 많이 했고
첫 원정에 첫 단독에 첫 등정....
축하한다.
안전등반,멋진등반 축하드립니다,,,고생한보람이 영광으로 남기시네요^^
멋지고 장랑스런 37기 영랑씨
고독속에서 피어난 등반의 꽃
축하 축하 다시한번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