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유물론
마르크스(K. Marx, 1818-1883)에서, 인간은 동물과 사유, 언어,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역사적 존재이라는 사실에 의해서 구별된다. 인간의 생활양식은 자연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자기 존재 수단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물질적 삶의 생산은 인간에게 동시에 자동 생산(autoproduction)이다. 역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행하는 인간 활동의 여러 형식들은 인간존재와 인간존재의 사유를 규정한다. 거기서 이른바 역사적 유물론이 성립한다.
"내가 도달한 일반적 결과, 나의 연구에서 인도하는 실을 이용하여 일단 획득된 결과는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생산작용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독립적이고, 필연적이고, 결정된 관계 속에 들어가며, 결정된 관계 즉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정해진 발전의 정도에 상응한다. 생산관계의 집합은 사회의 경제구조, 즉 구체적 구조를 구성하고, 이 구조 위에 법률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며, 이 구조에 상응하여 규정된 사회 의식의 형식들이 성립한다. 물질적 삶의 생산 양식은 사회적, 정치적, 지적 삶 일반의 과정을 조건 지우다. 자신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들의 의식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존재이다. 이들의 발전의 어떤 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les forces productives matérielles)은 존속하는 생산관계와 모순에 빠지고, 이에 대하여 법률적인 표현을 쓴다면, 그 당시까지 생산력이 활동해서 이루어놓은 소유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서설(1859)』의 서문, 마르크스 전집II, 갈리마르/쁠레이아드, 1979(1968), pp. 272-273(P. 1970)
생산관계와 생산력(Rapport et forces production)
<생산력>이란 사회의 기술 수준 즉 부를 생산할 수 있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능력을 말한다. 부의 생산은 노동의 엄격한 분배(répartition), 즉 사회계급의 분할의 수단을 확정해 준다. <생산관계>는 모든 개인에게서 각 존재를 조건 지우는 구속의 총합을 구성한다. 이제 경제 활동의 조직화를 규정된 요소로서 이해해야한다. 규정된 요소란, 주어진 사회에서 주어진 순간에, 실제적으로 법률적 구조를, 구조 속에서 사회관계가 이루어지는 형식을, 정치적이며 지적인 생활을 고려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이론의 반성(réfléchir)이 주요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론 속에 사회가 어떻게 반영되는(réfléchir)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에서 혁명의 사실들
이런 전망에서 보면, 항상 역사에서 위기의 시대들은 생산력의 진보(진화)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생산력의 발전은 현존하는 생산관계에 의하여 방해받기(또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회조직화는 새로운 사회조직화를 떠 받쳐주기 보다 방해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의식이 변화의 한계점에 이르기까지, IMF위기에 이르기까지 이상이 없다고 주장한 문민정부처럼,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 김남주의 시에서 "까치밥(조선의 마음)"은 남겨두어야지 - 새로운 조직화는 기존 조직화의 틀의 틈새를 뚫고 나온다. 이 뚫고 나오는 힘(poussée)을 진화의 힘이라고 부른다. 까치밥은 다음에도 열매가 맺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하 우화적 표현이다.]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욕구들(revendication)은 부차적 표현, 즉 모든 역사적 투쟁의 핵심에서 나온 (이데올로기의) 파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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