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작전
원 준 연
이 마을을 찾으면서, 군사용어에 나오는 양동작전이라는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양동(陽動)은, 적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일부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꼭 1년 전 경주의 양동(良洞)마을을 찾으면서 불현듯 이 용어가 떠오른 것은 단순히 한글 이름이 같아서 일 것이다. 작년 7월에 양동마을이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찾았던 것인데, 이번에는 문학기행으로 다시 다녀오게 되었다.
<이향정(二香亭) 중요민속자료 제79호>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넓은 주차장이 마련된 점 외에는 눈에 띄는 변화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지형에 거슬리지 않게 형성된 한적한 시골 마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도시인의 눈으로 볼 때는 더 이상의 인공적 요소가 들어가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촌락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락 시설이 없다고 실망하는 회원도 없지는 않지만.
<향단, 보물 412호 >
양동마을은 안계천을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과 상촌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경주손씨(慶州 또는 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 또는 驪州李氏)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인데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 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영주의 무섬마을 그리고 예산의 외암민속마을 등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향단에 딸린 건물들>
맨 처음 찾은 보물은 442호의 관가정(觀嫁亭)이다. 관가정은 마을 입구 좌측의 언덕에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조선 시대 청백리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선생의 고택이다. 관가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의미인데,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도 숨겨져 있다.
<관가정(觀嫁亭), 보물 442>
관가정의 누마루에 올랐다. 언덕 아래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멀리 경주를 품어 안은 경관보다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이 만들어낸 안강평야의 황금들이 일품이다. 봄에는 열을 지어 모내기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가경일 것 같고, 한여름의 푸른 들녘도 아름다울 것 같다.
때마침 실바람이 불어와 늦더위를 씻어준다. 푸른 들녘이었더라면 실바람에 흔들리는 벼 잎이 군무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귀가 밝은 선비라면, 벼 잎이 스치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에 낮잠을 설쳤을지도 모른다.
들녘에서 일하던 농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탈진 언덕을 올라온다. 일하다가 새참이 모자라서 가지러 오는 것인지, 외부에서 귀한 손님이 오셔서 상전께 고하러 오는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뛰는 듯이 올라오는, 500년 전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잠시 그려보았다. 지금도 관가정 아래에는 하인들의 거처인 가립집(초가) 4~5채가 잘 보존되고 있는데 손 씨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관가정이 지어졌을 무렵 심어졌을 것 같은, 수백 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관가정 옆의 향나무와 함께 훌륭하게 고택을 지켜 낸 후손들을 생각하며 누마루를 내려왔다.
관가정은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어서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단다. ‘觀'은 '본다'라는 의미와 함께 '보여준다'라는 뜻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이제는 집 내부도 보여줄 모양이다. 건물의 평면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 관가정 향나무>
안채의 마루 앞쪽에 조성된 방형의 작은 마당을 '빛 우물'이라는 뜻의 광정(光井)이라고 한단다. 사랑채와 안채의 기와지붕이 이어져 네모난 액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우물에 빗대어 그렇게 붙인 것 같다. 네모를 통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얀 구름이 우리네 인생처럼 정처 없이 흘러간다.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 낸 절묘한 예술작품 같다.
그 옛날, 이곳에는 화초라도 몇 포기 심어져 바깥세상을 맘대로 접하지 못하였던 아낙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을까? 아낙들의 갑갑한 마음처럼 이곳의 광정은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답답한 모습의 광정을 어디선가 또 본 듯하다. 지난가을 경북 영주 문수면 수도리의 무섬마을을 다녀왔는데 그곳 해우당(海遇堂)의 구조가 생각 난 것이다.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제(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안동의 하회마을 그리고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불돌이 마을로 치고 있다. 이곳에는 19세기 말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 선생이 지은 집이 있다. 'ㅁ'자형의 구조가 관가정과 비슷하다 못해 똑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 릴 듯싶다. 이 마을도 반남박씨(潘南朴氏)와 선성김씨(宣城 또는 禮安金氏)의 양 가문이 터를 잡아 이루어진 집성촌이다.
<심수정(心水亭)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양동마을이나 무섬마을이나 모두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그 사대부의 가옥들은 한결같이 소박한 느낌이다.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집의 크기보다도 자녀들을 돌보는 정성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양동마을에는, 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의 뒤를 이어 세 번째의 걸출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단다. 그래서 출가한 두 문중의 여인들은 본가로 돌아와 출산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여인들이 낳는 아기는 두 문중의 아이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미소를 짓게 한다. 군사용어인 양동작전과 어딘가 닮은 듯도 하고.
첫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편집을 해 주시니, 졸작도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
양동마을을 몇 번 갔지만 제대로 보고 온것은 관덕정의 향나무 뿐이었는데 교수님글 로 많이 알게되네요.
대전서 1박2일로 경주에가면
불국사, 석굴암, 천마총은 물론, 안압지 야경에 치어서 양동마을은 마지막에 슬쩍 들렀다 그냥 왔지요.
어떤 때는 거기 민속찻집에서 차만 마시고 돌아온 때도 있었답니다. ㅎㅎ
와우~ 멋지게 단장을 하셨네요!
조성순 선생 덕분입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