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슝
꾸역꾸역 쓰는 것도 모자라 노래하기 시작했다, 라는 문장에 깔깔 웃었어요. 쓰기와 노래하기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 노래와 글 창작은 상호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목숨을 걸기엔 지루했고 놓기에는 불안했다’처럼 문장에 리듬이 있어 글이 경쾌하게 읽히는 건 원래부터 큰 장점. 노래를 만들어서 그런지 더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지금의 나를 만든 경험들은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 진다.’ 이런 문장은 일반적이죠. 객관적 진리에요. 근데 그게 정말 그런가? 왜 그렇지? 슝슝의 삶으로 증명해내는 사례가 없으면 그 문장이 힘을 못 받으니까 안 쓰는 게 나아요.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불편을 겪었는가, 삶으로 녹여내서 문장을 써주세요. 어떤 독자에게 ‘너만 받을 수 있는 강속구’ 같은 글이 될 거에요.
보라
원주에서 춘천으로 나아간 문학소녀의 탄생. 전국구로 활약하는 세계문학전집 읽는 친구와의 대면과 동경. 여기서 글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네요. 글쓰는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하니까. 첫사랑의 몽환적 시간을 거쳐 만난 삶의 사건들. 아버지의 사라짐. 엄마의 우울증. 남동생의 자퇴.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시간들이었을 텐데요, 난 울었고 글을 썼다라고 간단히 하기보다 한 가지씩 응시해서 기록하면 좋겠어요. 고통스러워 덮어두면 나중에 곪아 있거나 삶의 다른 사건으로 돌아오곤 하더라고요. 직장인이 되어서도 ‘답답할 때’와 ‘눈물이 흐를 때’가 언제인지 구체적인 정황이 나와야 합니다. 글이 말끔해요. 설명하는 문장에 구체적인 서사를 붙여주어 글에 생기가 돌게 해주세요.
세콰이어
내공이 느껴지는 한 편의 글. 전업주부의 교통사고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좋은데 ‘보상금이 없다고 한다.’는 말은 정확한 근거가 나와야겠네요. 이야기를 끌고갈 핵심 사건이니까 보험회사 규정을 알려주는 식으로. 집안 일마저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어느 주부. 아이들을 위해서 글을 쓰는 엄마. 독서록은 싫고 그냥 글이 좋은 자유인. 끊임없이 읽고 쓰는 무명의 독서인이자 공부인의 삶 자체를 꿈꾸는 마무리가 편안해요. 그런데 이 글에 긴장이 없어서요. 모범생 같아요. 무명의 공부인의 삶이 어떻게 무엇이 좋은지, 강유원의 언어가 아닌 세콰이어의 말로 풀어주세요. 주제에 해당하는 문장이니까. 그리고 유명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는지 없는지, 더 들여다보고 더 솔직하고 더 거칠게 써도 좋겠어요.
옥수수
아마추어 소설가의 활약이 재미납니다. ‘재밌다’는 댓글에 힘을 얻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학교에 출근을 했다, 는 대목에서는 어디서 글쓸 힘이 나왔는지 신기하다, 라고 하지 말고 더 사유해주세요. “한 사람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정리해주면 글이 탄탄해지겠어요. 글쓰기가 자기 의지로 쓰는 게 아니라 공동작업이라고 해도 될지. 그런 물음들.
이어지는 ‘고3학생’과의 만남, 그리고 글쓰기. 그 사건이 글을 쓰게 했는데 그건 ‘내 안의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이 부분이 비약이 있어요. 내 안의 울고 있는 나에 대한 근거가 나오지 않아서죠. 그 부분이 분명해야 글이 균형이 잡히겠어요. ‘진짜 나의 목소리’ 찾는 일이 ‘내 안의 울고 있는 나’를 쓰는 일이 될 거 같습니다.
여백
‘석 달을 꼬박 이어온 야근’ ‘매일 시켜주는 ‘안동장’이 공포영화처럼 충격으로 다가오네요. 또 하나. 회사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업계에서 먹어주는 사람이 됐을까. 외화내빈의 한국사회니까 가능하겠죠. 자기 직원을 돌보고 회사를 살피는 것보다 밖에서 얼굴 내밀고 다녀야 알아주고 인정해주니까요.
그런 회사를 왜 그만두지 않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의 답답함이 잘 전해져와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는 허수경 시인의 시구도 생각나고. 삶은 복잡하죠. 설명할수록 설명에서 멀어지면 입을 다물게 마련이고. 그럴 때 글쓰기가 조금 나은데, 그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싶은지, ‘힘든 상황들 속에서 처리된 내 감정’을 한줄 한줄 써보는 글이면 좋겠어요. 감정 다섯 가지를 정리하려면 다섯 가지 상황이 필요하겠죠. 친구들과 밥 먹는 날의 장면처럼, 앞으로 회사에서 힘들 때 마다 메모해두었다가 기록해보세요. 어떤 말들, 어떤 표정들, 어떤 요구들. ‘왜 이것이 나인가.’라는 말은 시적울음이네요.
윤여사
서점의 cctv가 책 읽는 직원을 감시한다는 게 현실이지만 슬프네요. 책더미 속에서 책과 멀어지고 정물이 되어가는 나. 책을 소유하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나. 서점에서 일하는 일상과 생각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덤덤하게 잘 그려졌어요. 일주일에 한번씩 휴일을 반납하고 공부하는 이유와 절실함은 거의 동의하는데 마지막에 결정적인 단서가 나와요. 이 부분. ‘지적 허영과 콤플렉스가 있는 나는 배움을 갈망했다.’ 이 문장을 풀어써주면 좋겠어요. 콤플렉스가 왜 언제부터 생겼는지, 어떤 자기의 행동이나 성향을 지적 허영이라고 생각하는지. 응시하기 싫은 부분을 응시하는 게 어려운데 그래야 글이 자기 틀을 벗어날 수 있어요.
밤밤
남편이라는 독자를 두면 이런 글이 나오는 건가요. 신혼집 요리책에 나오는 식탁처럼 글이 정갈합니다. 5대 영양소가 다 들어갔어요. 감히 ‘더 많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게 거의 독립운동처럼 되어버렸어요. 명품백이 존재의 옷이 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끼어살아가는 고단함도 느껴지고요. ‘심란한 숫자들을 빠르게 털어내며 나는 남편을 끌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자고 발길을 재촉했다.’ 이런 표현이 좋아요. 일상의 고단함이 자기설움과 자기연민으로 이어져 눈물 터지는 장면은 글의 긴장을 가져오고 남편이 백마 탄 왕자처럼 나오는 장면도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도 줍니다. 궁상 아닌 청빈.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어떻게’라는 건, 타자를 부정하고 거기서 방법을 찾는 건데 그것보다는 ‘적어도 이것만은 누리며 살아야하지 않을까’로. 자기 욕망과 능력에서 출발하는 물음이면 좋겠어요. ‘일시불로 받은 선물을 할부로’ 차곡차곡 갚아나가면 그 물음이 만들어질 거 같아요.
잔디
짧은 에피소드가 나열되고 이어지는 단상. 세 번째 에피소드가 더 상세했으면 좋겠어요. 구구절절 다 쓸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의 정보가 주어져야 유추할 수 있거든요. “누군가 내 삶을 선택해주길 바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며 살아온 건 아닌가?”라는 물음은 일반적이죠.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이 보이질 않아요. 왜냐면 대부분 무책임하게 사니까요. ‘무얼하고픈지 생각했을 때 들어차는 욕망, 그 리스트를 공유해주셔도 좋고요.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질주하는 기능인’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보를 주어야 독자와 공감의 지점이 만들어집니다. ‘생활기계’가 가끔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욕망하는 ‘인간’이 되는 경험으로서의 글쓰기. 이런 표현은 멋집니다. 내용을 충실하게. 좋은 글은 근거가 많다는 것.
바쿠
내가 먹고살기 위한 글과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 합을 찾아가고 맞추어가는 과정이 글쓰기겠지요. 필자의 개성과 직업과 욕망이 적절한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 좋은 글입니다.
애벌레의 꿈
연대기적 서술이 자기정리에는 가장 좋은 방법. 어릴 때, 중고등학생 때가 구체적 사례가 나오면서 왜 쓰기 싫은지 선명한 데 비해 대학생 때, 유학생 때가 산만하게 처리되었어요. 반공글짓기 대회처럼, 대학생 때와 유학생 때 어떤 장에서(정치동아리, 산업의학도) 어떤 글을 썼는지, 거기서 본 나의 ‘거짓된 모습-정리되지 않은 모순과 욕망’을 찬찬히 응시하면 좋겠어요.
진달래
병을 죄로 느끼는 나. 죄를 짓지 않았는데 수치심이 올라온다. 자기 응시에서 세상 보기로. 병자의 정체성이아닌 다른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욕망. 일상의 안착의 안간힘. 차분히 잘 드러난 글입니다. 병을 얻기 이전에는 글쓰기와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해요. 글쓰면서 나를 알아가면 세상을 알아가고 자기 경험에 찌푸리지 않을 수 있다, 맞아요. 덜 인상 쓰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많은 것을 주네요.
요가왕
욕일기 예시문,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 알아가는 과정과 깨달음들, 기자가 되고 나온 과정을 덧붙이면 살아있는 글이 되겠어요. 글쓰기는 삶의 요약이 아닌 섬세한 결을 만드는 일이에요. 큰 결론에 타협하지 않으면 이 날렵한 문장들로 좋은 글 쓰리라 기대해요.
이보영
글이 밥이고 밥이 일이 되는 국문학도의 삶. 문필하청업자의 일상이 흥미롭고 쓸쓸하게 전해져와요. 기업 홍보의 일이 상세한 데 비해 내 글 쓰기가 헐거워서 글의 균형이 안 맞아요. ‘내 글’의 정의를 필자가 내려주면 ‘글과 제품’의 구분에 독자도 고개를 끄덕이겠죠.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글. 그러나 내 글 쓸 때는 하청업자가 아닌 문학도 이보영이 와야 해요.
깻잎
다른 깻잎 자아의 발견. 이런 글도 좋아요. 하지만 서사가 뒷받침 되어야 함축적인 말들도 더 울림을 주니까 관념적인 문장에 어떻게 나의 고유의 삶을 담아낼까 연구하면 좋겠어요. 헛소리에 대한 무감각과 무기력에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것, 학교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 이런 통찰은 정말 소중합니다.
묘
성탄절 극장에서 개봉하는 미국멜로영화 같아요. 어떻게 보면 서글픈 신세 타령이야기인데 글이 밝고 귀여워요. 그게 신기하네요. 기분 나쁜 꿈처럼 지나간 맞선 사건의 기록이 아닌 나를 알아가는 글이 되려면,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의 욕망을 점검해야겠지요. 나는 적어도 이건 있어야 산다, 이 취향만은 맞았으면 좋겠다, 등등 삶의 세목들을 점검해보세요. 결혼이 침대 같이 쓰는 사람이 아닌 화장실 같이 쓰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말이 있어요. 결혼, 사랑으로 접근하지 말고 내가 뭐할 때 좋고 돈은 어디에 쓰고 누구랑 있어야 좋고 어떤 대접받을 때 몸서리쳐지는지 잘 파악해보세요. 모든 사건은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삼으면 글을 쓸 때 주제를 잡기 수월할 것입니다.
첫댓글 댓글과 숙제 사이에서 오락가락, 갈팡질팡입니다. 정성어린 리뷰에 늘 감동일 뿐이고, 그 감동에 부응하는 글을 써야되는데 하는 부담이. ㅠㅠ 완주해야하는데 도망치면 안 되는데. 용기를 내야지요.
오래, 꾸준히 쓰는 게 감동^^;에 부응하는 길...용기 같이 내요. 저도 글쓰기 앞에서 종종 도망가고 싶어요. ㅜㅜ
글쓰기는 삶의 요약이 아니라 결을 만드는 일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네요.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다려 집니다. ^^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글 외면하지 말고 피드백 붙들고 다시 씨름!!!!! 한다면! 좋을텐데~ 너의 손 꼭 잡고 그냥~ 이 길을 걸었으면~ 내겐~ 의지박약....ㅡ.ㅠ
우와... 정성스런 리뷰ㅜ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에 못간게 아쉽네요ㅠ
저도 제가 요즘 보이지 않네요. 리뷰 감사해요. 앞으로는 세심하게 욕망하는 인간으로 거듭?난 모습을..,,,ㅠㅠ
옥수수님 말처럼 분명 글에 대한 리뷰인데 제 삶에 대한 조언도 함께 있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한 땀 한 땀 애정어린 리뷰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