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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족구//김 삼식
내 이름은 김 삼식입니다.
저로 말씀 드리자면 태권도가 자그만치 검은 띠, 검은 띠 아십니까?
그 자랑스런 검은 띠 딸랑 1단입니다.
뿐만 아니라 쿵푸,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자면 우수라고 불리는 중국무술 또한 검은 띠입니다. 5년이나 배웠죠.
몇 단이냐고요? 네, 딸랑 1단입니다. 하.하.하.
하나 덧붙이자면 제 발차기가 어느 정도냐면요.
용꼬리 말아 차기라고 들어나 보셨나요? 공중에서 720도를 돈 다음 돌려 차는 기술이죠. TV에서 보셨죠? 공중에서 세 바퀴 반을 돈 다음 돌려 차는 멋진 기술, 네 바로 그 기술입니다.
할 수 있냐고요? 말씀 드렸죠? 전 검은 띠라고요. 당연히, 아~주 당연히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저는 딸랑 1단이니깐요.
이 이야기는 군대 훈련병을 마치고 자대에 입대한 이등병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충성 이등병 김 삼식. 전입신고 합니다.”
신병이 나타나자 고참들이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 내었습니다.
“어이, 신병, 애인은 있나?”
“없습니다.”
“뭐야, 아직까지 애인이 없어?”
“네, 없습니다.”
“그럼 여동생은 있나?”
“없습니다.”
“뭐~ 없어?”
“네, 없습니다.”
“넌 군 생활 꼬였다.”
“군 생활 꼬였다” 는 말에 제가 바짝 쫄아 있자 최고참쯤으로 보이는 병장님이 물었습니다.
“애인도 없고 여동생도 없고 잘하는 거는 있냐?”
병장님의 물음에 전 자신 있게 대답했죠.
“네, 제 주특기는 쿵푸입니다.”
제 대답에 고참들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그래 그럼 발차기 한 번 보여줘 봐.”
고참들의 요구에 저는 군생활 안 꼬일라고 제가 배웠던 기술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줬습니다.
전소퇴. 후소퇴. 선풍각. 등각. 파각. 단비각 등등등....
화려한 기술들을 보여줬죠. 근데 기술 이름들이 조금 어렵죠?
굳이 한국어로 풀어 보자면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뒤차기라고나 할까요.
네~ 맞습니다. 태권도 학원 석달만 다니면 배울 수 있는 기본 기술입죠. 하.하.하
어쨌든 그래도 발은 쭉쭉 올라가니까 고참들이 박수를 쳐주긴 합디다.
제 발차기를 유심히 지켜보던 예의 그 병장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이야~ 발 정말 높이 올라가는데, 너 족구하면 잘 하겠다.”
헉, 족구라뇨?
전 족구의 족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군대에 오기 전까지 족구공이 삼각형인줄 알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족구뿐만 아니라 전 모든 운동에 젬병입니다.
초등학교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핸드볼 선수 해보라고 해서 처음으로 공을 만져봤습니다. 하지만 거짓말 안 보태고 딱 이틀 만에 선생님이 그냥 가라고 하더군요.
전 정말 핸드볼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아~ 야속한 선생님 ㅠ.ㅠ
그 이후로 전 공 곁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자신 있고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
“네, 잘 합니다.”
왜 그랬냐고요? 말씀 드렸잖아요. 군 생활 안 꼬일라구요.
“오케이, 넌 오늘부터 스트라이커다. 짜샤. 이등병 스트라이커는 군대 역사상 네놈이 처음이다. 잘해봐.”
허걱, 스트라이커라뇨? 실력이 없어도 작대기를 네 개(병장)면 할 수 있다는,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작대기 세 개(상병) 미만은 낄 수도 없다는 그 전설의 최전방 공격수,
오! 신이시여 저를 살펴주소서.~
족구의 족자도 모르고 공만 보면 숨어 버리는 절대 개발인 제게 스트라이커랴뇨?
저는 스트라이커라는 막대한 사명을 짊어진 채 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휘슬이 울리고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빠라~ 빠라 빠라~밤(영화 황비홍의 배경음악)이 족구장에 울려 퍼지고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된 저의 활약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요. 낭중지추였습니다.
한 마리의 학처럼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돈 다음 내리꽂은 족구공은 적진의 한 복판을 총알보다 빠르게 날아서 수비수들이 발을 뻗기도 전에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강하게 내리꽂은 스파이크는 저의 화려한 발기술인 등공파각에 걸려 적진의 코트에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저의 이러한 빛나는 활약으로 인해 우린 앙숙인 1소대를 15:0 콜드 게임으로 아주 가볍게 눌러 주었습니다.
그러자 고참들이 저를 껴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헹가래를 쳤습니다.
하나, 둘, 셋,
기합소리와 함께 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 꼭 구름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기분도 잠시 제 뒤통수에 무언가가 강하게 부딪쳤습니다.
아팠습니다. 눈물도 찔끔 났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성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막내가 빠져가지고 제일 늦게 일어나.”
저는 너무 놀라서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고 눈앞에선 별이 반짝였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있었고 기상시간에도 일어나지 않자 고참이 제 뒤통수를 상황판으로 이쁘게, 아주 이쁘게 살짝 때려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쁘게요. 혹이 한 3센치 정도만 나게요.
일과 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기대에 찬 첫 시합.
-최전방 스트라이커 삼식이-
저는 군 생활 안 꼬일라고 눈에 힘을 주어 족구공을 노려 봤습니다.
저는 정말 공을 차기 위해 노려봤습니다. 네. 그냥 노려만 봤습니다.
제가 공을 노려보는 동안 공은 제 앞에 툭 떨어지고 데굴데굴 구릅니다. 네 저는 역시 공을 노려만 보고 있습니다. 그 때 고참이 소리칩니다.
“야 김 이병 뭐하는 거야. 발차기를 해야지.”
“이병 김 삼식. 알겠습니다.”
저는 고참의 말에 허공에 대고 그 멋진 발차기를 보여줬습니다. 공은 바닥에 구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바닥에 구르는 공이 한심하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고 있고 고참들도 이런 저를 한심하게 쳐다봅니다.
또 다시 공이 날아옵니다.
이번엔 절대 안 놓치리라 다짐하며 공을 노려봅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공보다 먼저 발이 올라갔습니다. 네, 공보다 훨씬 빨리요.
공중에서 혼자 놀던 발은 지쳐서 바닥에 떨어지고 뒤늦게 날아온 공이 저를 바라보며 “메롱” 하며 지나갑니다.
“야, 김 이병 장난쳐. 발차기만 하지 말고 공을 차야지, 한번만 실수하면 너 디진다.”
“네 알겠습니다.”
또 다시 공이 날아옵니다.
저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발차기를 시도했습니다.
-빠앙-
아! 이 경쾌한 타격소리 들리십니까?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들려오고 군악대의 멋진 빵빠레가 제 귓가에 들려옵니다.
네. 드디어 제가 공을 맞춘 것입니다. 저는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제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또 다시 눈앞에 별이 반짝입니다.
아침에 맞은 것 보다 더 아픕니다.
“야 김 이병 너 미쳤어?”
제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발에 맞은 공은 허공을 날아서 족구장 뒤편 산속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네, 야구로 치자면 한마디로 홈런이죠. ㅠ.ㅠ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유 소리.
“뭐야 쟤 그냥 개발이네. ㅋㅋㅋ”
“스트라이커는 무슨, 그냥 볼보이나 해라.”“괜히 기대했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스트라이커 딱 10분 만에 수비수도 아닌 그냥 물주전자나 나르는 볼보이가 되었습니다.
볼보이로 쫓겨난 후 언젠가는 이 치욕을 씻으리라는 굳은 일념 하나로 군 생활을 하던 중 마침내 제게도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촌면장배 천하쟁패 무술대회였습니다. 뭐 말만 거창하지 그냥 촌 동네 무술시합이었죠.
저는 혹시라도 예선 탈락할까봐서 고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당직사관의 외출 허락을 받아서 무술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저는 번쩍이는 은메달과 빛나는 상장 그리고 부상으로 받은 거금 5만원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내무반으로 금의환향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내무반원들은 내 상장과 트로피를 보고 그제서야 축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금 5만원은 내무반원들에게 거나하게 한턱 쐈지요. 저의 은메달 무용담과 함께 말입니다.
“이야, 김 이병 족구는 못해도 겨루기는 끝내주나 본데~ 이거 봐라 은메달~”
“그러게요 김 병장님. 이야 이거 트로피 때깔 좀 보세요. 반짝 반짝 하는 게 폼 나지 않습니까?”
회식을 하면서 소대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말 했습니다.
“우리 김 삼식 일병이 말입니다. 족구는 땅강아지처럼 해도 싸우는 거 하나는 끝내 줍니다.
발차기 하는 거 보셨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김 일병 발차기 한 대 맞으면 아마 달나라까지 날아갈 겁니다.”
과분한 칭찬에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고 한마디 했습니다.
“과분하십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은메달 딴 겁니다.”
그러자 저희 고향에서 올라온 후임 한명이 과도한 과장을 덧 붙여서 저를 띄우기 시작했습니다.
“김 삼식 일병님 우리 고향에선 유명합니다. 길 가다가 깡패를 만났는데 아마 대여섯 명 됐을 겁니다. 그들이 덤벼들자 돌려차기 한방에 보내버렸습니다. 깡패 여섯 명을 맨손으로 때려잡았습니다. 저희 고향에선 6:1의 전설입니다.”
그 날 이후 소문은 돌고 돌아서 6:1이 8:1 9:1 이 되더니 어느 순간 17:1 이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진짜로 6:1로 깡패들을 물리쳤냐고요?
쉿~ 그건 비밀이에요~
자 뭔가 이상하죠? 분명 저는 모든 운동에 젬병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6:1이니 은메달 리스트이니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거짓말이라구요? 이것 보세요.
거짓말이라뇨? 전 거짓말 같은 거 안 해요. 가끔 뻥은 치지만요.
하지만 위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드릴까요?
먼저 17:1이 되어버린 전설의 발단이 된 6:1의 전설부터 말씀 드리죠.
그 때 전 고등학생이었고 쿵푸 도장에 다녀오던 중 여섯 명의 깎뚜기 형님들을 만났죠.
그때 마침 저는 도복을 입고 있었고 형님들 중 한명이 저를 보고 시비를 걸었죠. 제가 겁에 질려 정중히 인사를 하자 그 형님이 돌려차기 한번만 보여주면 그냥 보내주겠다고 합디다. 그래서 저는 안 맞을라고 돌려차기를 보여줬죠. 그러자 그 형님이
“이 놈 말 잘 듣네. 그만 가 봐라.”
형님의 말에 저는 꽁지 빠지게 도망쳤죠. 마침 그 때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 녀석이 내용도 모른 채 6:1 깡패의 전설을 만들어 내었죠.
그럼 은메달은 뭐냐구요? 뭐요? 문방구에서 사온 거 아니냐구요?
참나...난 거짓말 안 한 다니깐요.
저 진짜로 은메달 리스트 맞습니다. 천하쟁패 무술대회 은메달 리스트요.
진짜 은메달 리스트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된 건지 설명 드리죠.
그 날 저는 천하쟁패 무술대회에 우슈종목에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승에 올랐죠.
마침내 결승 시합장에 선 두 선수
김 삼식과 그 상대자 배 일국
두 선수 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서로의 빈틈을 찾으려 빙글빙글 도는 사이 어디선가 주먹이운다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옵니다.
~***할렛데이~****할렛데이....
잠시의 숨 막히는 탐색전이 흐르고
-주먹이 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선수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을 향해 날아듭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나는 분명 주먹이 하나인데 배 일국 선수의 주먹은 12개로 날아옵니다. 하나는 막겠는데 나머지 열 한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반칙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열 두 개입니다. 뭐 아시죠? 발차기를 무지 빠르게 하면 수십 개로 보이는 착시 현상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팔을 뻗기도 전에 넋다운 되었습니다. 코에선 코피가 흐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K.O 패를 당했더군요. 저는 카운터 소리조차 못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전 은메달을 딴 것이었습니다.
아~참 그런데 어떻게 결승까지 올라 갔냐구요?
히히..그게 바로 비밀입니다. 말씀 드렸죠. 전 검은 띠 딸랑 일 단 이라구요.
사실 우슈는 사양길에 접어들던 시기라서 배우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비 인기종목이다 보니
참가선수도 저를 포함해서 딸랑 세 명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주 운 좋게도 제가 부전승으로 결승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은메달 리스트가 된 겁니다. 물론 상대 선수 한번 때려보지도 못하고 한 거라곤 매트바닥에 벌러덩 누워 별만 세었는데 은메달 리스트가 된 것이죠. 하. 하. 하
과정이야 어떻든 저 은메달 리스트 맞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첫댓글 주간 결승 통과하고 월 결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총 2회 방송이 됐네요 ^^ 가볍게 웃어보시고 글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파일열면 조영남 최유라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셔도 재미집니다. 방송과 글 내용은 일부 편집및 삭제된 내용이 있습니다.
첫 머리부터 재미가 있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실제의 김소설가의 주인공이네요?
끝 마무리도 멋지게 재미있게 맺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훌륭하십니다. 이은집 선생님으로부터
격려의 한 말씀 하시겠습니다. 그리고 참 좋아 하겠습니다. '소림족구' 탄생 축하합니다. Thank/Gasan. :)
감사합니다. 제 꽁트는 주인공이 모두 삼식이랍니다. ㅎㅎ 주신공이 상당히 덜 떨어진데다가 아주 덜렁대는 캐릭터거든요. ㅎㅎㅎ
ㅎㅎㅎ 재밌게 놀다 갑니다
시사랑님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게 읽었다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김작가님! 방송에도 나오고 축하드려요. 목소리로 들으니 더욱 드라마 같이 실감나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꽁특극장 재미지게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