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예정론에 나오는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이라는 표현을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제21장. “영원한 선택: 하나님은 이로써 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또 어떤 이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음” 제7절. “개개인의 선택”
선택 교리에 대한 요약적인 정리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보여 주는 바와 같이, 그의 영원하고도 불변한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도록 받아들이실 자들과 또한 그 반대로 멸망에 내어주실 자들을 오래 전에 단번에 정하여 세우셨다고 말한다. 택함 받은 자들에 대해서는 이 계획이 인간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긍휼하심을 기초로 한 것이라는 것과, 반대로 정죄에 내어주신 자들에 대해서는 공의롭고 비난할 수 없으며 또한 불가해(不可解)한 그의 판단에 의하여 생명의 문을 막아놓으셨다는 것을 주장한다. 택함 받은 자들에 대해서는 그 부르심이 선택의 증거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칭의를, 그들이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 선택이 완성되기까지 그 선택의 사실을 드러내 주는 또 하나의 표징으로 본다.
그러나 주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부르심과 칭의로서 인치시듯이, 버리운 자들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의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접하지 못하도록 막으심으로써, 말하자면 이런 표지(標識)들을 통해서 과연 어떠한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정의 교리를 뒤엎기 위하여 만들어낸 온갖 허구들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것들은 반박할 필요조차 없다. 제기되기가 무섭게 그 거짓된 것이 너무나 풍부하게 입증되기 때문이다. 학식 있는 자들의 주장이나 혹은 생각이 단순한 자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논리나, 아니면 불경한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공격하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제시하는 논지에 대해서만 그때그때마다 잠깐씩 다루고 지나가기로 하겠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크리스챤다이제스트), 3.21.7. |
위 칼빈의 선택교리 설명에 불가해(不可解)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개혁주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을 하는데요. 고신대 교수였던 이근삼은
하나님의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이란, 하나님은 완전한 계시를 주시지만 인간의 유한한 이해를 가지고는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완전무결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함을 뜻한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
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무지 많이 읽고 매우 성령 충만한 성도들조차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다(all, perfectly)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 완전히 다른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래 성경구절(욥37:14~24)은 불가해성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욥37:14~2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
첫댓글 불가해성에 대한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 교리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만이 하나님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불가해성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다고 하면 그게 이단일 겁니다. 유한하며 불완전하며 육체에 갇혀 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결코 다 알지 못하며 계시된 것 일부만을 희미하게 알 뿐입니다. 그러나 수건을 벗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부활해서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할 때 계시된 것들을 비로소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이단들은 성령 충만을 빙자하고 사칭하여 하나님을 다 아는 척 하고 혹세무민 합니다.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불가해성이 무슨 뜻인지 쉽게 설명해주셔서 장코뱅님의 글은 이해가 잘 되네요. ^^ 코람데오님 말씀처럼 수건을 벗게 되는 날 우리 주님을 온전히 알게 되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전에 라벤더님의 좋은 분별력에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의 불가해성에 대한 교리를 욥기와 함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방문 및 공감 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불가해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보니 성도가 취해야 할 겸손한 믿음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가해라는 말을 그냥 읽어보고 대충 넘어갔는데 이제서야 이런 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공감하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 속에서 진리를 증거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