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아내의 지조 (農夫之婦)
한 선비가 말을 타고
시골길을 가는데,
너댓 명의 여인들이 호미를 들고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한 여인이 먼저 선창(先唱)을 하고,
다른 여인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가
보통의 잡가(雜歌)가 아닌 듯하여
유심히 귀를 기울이니,
그것은 서경(書經)의 '무일편(無逸篇)'과
시경(詩經)의 '빈풍'에 있는 내용들이었다.
곧 선비는 선창을 하는 여인이
보통의 무식한 선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끌려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근처 언덕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해가 기울어
여인들이 일을 끝내고
호미를 어깨에 걸친 채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는 선창을 하던
여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하여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종을 시켜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전하게 했다.
그러자 여인은 다음과 같은
시 두 편을 보내왔다.
그 첫 번째 시는 이러했다.
終日相看十目視 하루 종일 바라보며 서로 눈길 주면서
(종일상간십목시)
有情無語似無情 정이 있어도 말을 못해 정이 없는 것 같았네.
(유정무어사무정)
蹇裳涉洧非難事 치마 걷고 강물 건너기 어렵지는 않지만
(건상섭유비난사)
曾與農夫許不更 일찍이 농부에게 허락한 몸 바꾸지 못하리.
(증여농부허불경)
그리고 두 번째 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昔在長安日 옛날 서울에 있던 그 날에
(석재장안일)
何不日黃昏 어찌 황혼시 와서 말하지 않았는고?
(하불일황혼)
晩作農家婦 이제 늦어 농부의 아내가 된 지금은
(만작농가부)
沙田去草根 모래밭에서 풀뿌리만 뽑고 있도다.
(사전거초근)
이 시를 본 선비는
그 여인의 지조를 알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며
발걸음을 돌렸더라 한다.
"나 또한 임자있는몸이거늘 봄을걷자니 왜이리 마음이 흔들리는지? 참 망할 노릇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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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은 사람에 마음에 바람을 들게하는 가 봅니다
왠지 봄하면 설레어 지기도 하고요~
그렇네요. 봄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묘약이 있고, 가을은 괜히 우울하게 하는 마법같은 계절이고...
순응하면서 중심 꽉 붙잡고 살아가는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