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어체(口語體) 성경 간행사(刊行辭)
♡ “그림이 그려지는 복된 말씀(구어체 성경)”을 정리하게 된 동기 ♡
아나운서로 39년(MBC 34년, 프리랜서 5년) 동안의 방송을 끝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의 최대 관심사가 절대빈곤 탈출이어서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지만 다 막으시더니, 하나님께서 적성에 맞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주셔서 인생 과제도 해결하고 한 가정을 무난하게 꾸리게 해 주셨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망극지은(罔極之恩)이었다. 그래서 말만의 감사가 아니라 무엇인가 가시적인 것으로 보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준 목소리로 내 말을 녹음해, 무상으로 받은 목소리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어라.”
녹음실 목사님(녹음 당시에는 목회를 하지 않았음)의 권유로 개역 개정판 성경으로 녹음하다가 민수기 5장 13~15절에서 녹음을 중단했다. 내용을 녹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틀리지 않게 낭독하려고 글자에 집중해 녹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음하는 사람이 내용을 녹음하지 않고 글자를 낭독하면, 그 녹음한 것을 재생해서 듣는 사람은 당연히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 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릿가루 10분의 1에바를 바치는 물건(헌물)으로 드리되…” 한마디로 글이 아니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류도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온전히 바쳤는데 범죄했다? 있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이다. 당연히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로 썼어야 할 오류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는 이런 말도 있다.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니라.”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복음 전파에 지장을 초래하는 말이다.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헬라어 원문(사본)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다. 성경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물론 녹음은 이렇게 풀어서 했다.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그래서 현대어 버전 가운데 하나를 택해 다시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성경도 문장의 호응, 적절치 못한 단어 선택 등, 과연 우리 말에도 정통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표현이 많았다.
[예 • 신하들이 제게 와서 앞에 절하며 • 바로가 전차들을 데리고 갔는데 • 그 밭의 값을 치르고 •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장자를 둘 낳았다는 말) • 여호와께서 축복하신(여호와를 복 빌어주는 분으로 표현) • 시체를 데려와 •죽은 아마사를 말에 태워 등]
그래서 한 절 한 절 일일이 다른 버전과 대조해가며 말 그대로 어려운 글이 아니라 쉬운 구어체로 고쳐서 녹음을 끝냈다. (표준 발음법 규정에 따라 신구약을 녹음해 MP3 CD 넉 장에 담아 1200세트를 무상으로 배포함) 그런데 녹음이 끝나는 날 목사님이 이런 권유를 했다. “구어체로 고치면서 녹음하셨지만 녹음 스케줄에 쫓기면서 하셨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실 텐데, 은퇴도 하셨으니 이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정말 말 다운 말로 한번 고쳐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구미가 당기는 지당한 말이기는 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아 손사래를 치며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그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래 성경이 얼마나 어려우면 ‘쉬운 성경’이라는 제목의 성경책에 나왔을까? 그리고 교인들에게 성경을 한번 읽어 보았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읽어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라는 말을 할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키며 “그래 맞아, 인간의 능력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셨을 리가 없어. 그게 내 여생에 해야 할 일이구나.” 하며 “딱” 소리가 나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엇갈려 튀겼다.
그리고 2011년 5월 중순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1937년에 발행된 신구약 성경과 히브리어 헬라어 직역 성경 그리고 스트롱코드 성경을 포함해 한글 성경 열 권, 영어 성경 다섯 권, 성경 사전, 성경 주석, 성경 지도, 히브리어 헬라어 사전 등을 펼쳐놓고 한 절 한 절 대조해가며 난해한 글을 쉬운 구어체로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말씀해주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라는 관점으로….
물론 이 “그림이 그려지는 복된 말씀”이 감히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장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으로 확신하고 10년 10개월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구어체로 정리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그림이 그러지는 복된 말씀”이 보다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해, 더욱 쉽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에 이르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추신 : 언젠가 잠시 귀국한 선교사 한 분이 “이런 성경이 나오면 제일 먼저 해외 선교사, 특히 자녀를 둔 선교사들에게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어려운 글이 아닌 하나님의 쉬운 말씀과 더불어 자녀들의 한국어 교과서로 사용하면 일거양득이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2022년 3월 서빙고동에서 최창섭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