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孤峯亭重建 (고봉정중건)
東 郡 名 區 在 (동군명구재) 동쪽 고을에 이름난 마을 있으니
層 巖 繞 似 屛 (층암요사병) 겹겹이 쌓인 바위 병풍처럼 둘러
忠 魂 寒 月 白 (충혼한월백) 충성스런 혼령 차가운 흰 달같고
勁 節 孤 松 靑 (경절고송청) 꿋꿋한 절개 외론 소나무 푸르듯
江 聲 三 出 派 (강성삼출파) 강물 소리 세 군데에서 들려오고
山 色 五 羅 星 (산색오라성) 산 모양 다섯개의 별이 늘어선 듯
北 門 當 日 事 (북문당일사) 당시에 북문의 일을 생각해 보니
感 慨 倚 孤 亭 (감개의고정) 안타까운 맘에 고정에 기대 보네
<감 상>
이 시를 지은 분은 나의 族祖이신 然자 七자 어른의 한시(漢詩)이다. 公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에서 태어나, 한약방과 여관 등을 경영하시며 지역의 유지로 지내셨다.
공이 사시던 마을에는 고봉(孤峯)이라는 작은 산이 외따로 들녘에 떨어져 있었고, 이
산자락에는 고봉정사(孤峯精舍)라는 사적지가 전해 온다. 이 고봉정사는 조선 조 중엽
인물들인 金淨, 崔壽城, 具壽福 이 세 분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金, 崔 두분 선생께서 잇달아 정쟁의 참화를 입고 별세하시자, 구수복 선생과
그 자손들이 이 사적지를 보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만큼이나 관련 정자나 강학소와 세 분을 제향하는 사당 등이 노후되어 여러
차례 개보수를 해오다가, 1980년 7월 22일에 이 지역에 큰 호우가 발생하여 기존 건물
들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 후에 崔壽城 선생의 후손인 최규하 대통령께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여, 이 일대를
정화(淨化)하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이 사적지에는 산마루에 고봉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이를 새롭게 복원하게 되어 그 감회를 능성구문의 몇몇 자손이
한시를 지어 후세에 전했는데, 이 시도 그 중의 한편이다.
역시 기묘사화로 인해 벼슬에서 좌천되었다가 끝내 관직에서 물러나 이 고을로 낙향한
具 壽자 福자 할아버지 자손들이 대대로 이 지역에 살아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시인은 기묘사화를 지칭하는 북문(北門)의 일을 7구에 거론하면서 마지막 구절에서 그
감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형식은 오언 율시이며, 운자로는 靑운목의 '屛靑星亭'의 네 글자를 사용하였다.
입향조이신 '壽福' 할아버지를 기리는 후손으로서의 정성과 효심이 간절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