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오류 ★
체리 접시에 놓인 좋은 체리들만 골라 먹는 행위에서 유래한 논리 오류로, 전체를 보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서 논증하는 행위. 바꿔 말하면, 증거 은닉(Suppressing Evidence) 오류.
이 글 목차
제①편
‘포괄(넓은) 의미의 중생’과 ‘엄밀한(좁은) 의미의 중생’
이지끼을 님 세례 중생론 확증편향 렌즈에 따른 체리 피킹 오류
제②편
이지끼을 님 영문 오역
맺는 글: 칼빈 선생님 성례론 독해를 위한 길잡이
************
제①편
하나님께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으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 났기 때문이다.
(요일 3:9)
이지끼을 님에게: 성경은 ‘세례 중생론’을 지지하는가?
https://cafe.daum.net/1107/YlDw/29
ㅡ이하, [성경은 ‘세례 중생론’을 지지하는가?]ㅡ
‘포괄(넓은) 의미의 중생’과 ‘엄밀한(좁은) 의미의 중생’
김홍전 목사님께서는 ‘{산상보훈 강해 4권: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열매} (서울: 성약출판사, 2004)’ 165쪽에서 {기독교 강요}에 적힌 칼빈 선생님 중생관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로 속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더합니다. 배경색 역시 제가 칠합니다.
칼빈 선생 자신도 그것(중생)을 (세밀하게 나누는 현대 개혁 신학과 다르게) 세밀하게 나누지 않고 대범하게, 그가 깨닫고 그것을 받고 ‘그렇구나.’ 하고 믿고 그다음부터 그 위를 향해 나아가는 그 전체(중생과 회심과 점진 성화)를 중생이라는 말로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벌코프 {조직신학} 권수경, 이상원 역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8년 증쇄판)’ 715쪽~716쪽에서 옮깁니다. 배경색은 제가 칠합니다.
칼빈도 역시 이를 새로운 생명을 생성하시는 하나님의 행동 이외에 회심(회개와 신앙)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이 갱신되는 전 과정을 나타내는 용어로 매우 포괄적으로 사용했다. 일부 17세기 저자들은 중생과 회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두 용어를 상호 교환해 사용하며, 중생을 부르심, 즉 효력 있는 부르심 아래 뒀다. {도르트 신조}도 두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벨직 신앙고백}도 중생을 광범한 의미로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중생이라는 용어의 이러한 포괄 사용은 종종 혼동을 초래하고 매우 필요한 구분들을 무시하게 한다. 예를 들면, 중생과 회심이 동일시되는 반면, 회심에서 인간은 어느 정도 하나님께 협력하지만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 사역으로 선언된다. 중생과 칭의 구분은 이미 명백해졌지만, 중생을 더욱더 제한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점차 필수적이고 통상적인 관계가 됐다.
제가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이 글에 옮기는 {기독교 강요} 텍스트는 ‘원광연 목사님께서 우리말로 옮기시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에서 2003년에 펴낸 번역본’에서 옮기는 텍스트입니다.
{기독교 강요 3권} [3장] 제목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중생. 그리고 회개’입니다. 이 제목만 가지고 구원의 서정을 추출하면, ‘믿음→중생’으로, 그 명제는 ‘믿음은 중생에 선행한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강요}에 적힌 칼빈 선생님 중생 개념은 루이스 벌코프 목사님 말씀대로 ‘중생자 삶의 모든 과정’을 포괄한 개념이었습니다. 즉, ‘예정된 자에게 책망의 가치 채를 휘두르시며 다가오셔서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성령, 그분께서 이루시는 중생’과 ‘중생의 발현으로서 회심’과 ‘중생자가 죽을 때까지 걷는 점진 성화’를 포괄한 개념이었습니다. 이를 현대 개혁 신학은 “포괄(넓은) 의미의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포괄 의미의 중생 개념에서 ‘예정된 자에게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성 삼위 성령 하나님만의 단독 사역에 따른 중생’을 “엄밀한(좁은) 의미의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이 ‘엄밀한 의미의 중생’은 {기독교 강요 3권} [2장: 믿음, 그 정의와 특성] <19항>에 드러납니다. 옮깁니다. 배경색은 제가 칠합니다.
19: 연약한 믿음이라도 참 믿음임
정리해 보면,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떨어지면 그 즉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화롭고 고요하며 은혜로우신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분을 분명히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속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하략)…
“마음속에 떨어지면”에서 보는바 “아무리 작은 믿음”은 ‘겨자씨 같은 아주 작은 씨앗’을 뜻합니다. 그 씨앗은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후예 존 머레이 목사님께서 밝히신 20세기 개혁 신학의 보물 ‘순간 중생 시 확정(단회) 성화와 회심’의 현대 개혁 신학 용어로는 ‘믿음의 씨(Semen fidei)’입니다. 중생의 신학자 요한 사도 용어로는 “하나님의 씨”(요일 3:9)입니다.
물론, {기독교 강요 3권} [1장: 그리스도 은혜는 성령의 은밀한 역사로 베풀어짐] <4항: 성령의 역사로서 믿음>이라는 제목에서 보는바, 이 씨는 성령께서 주시는 씨입니다. 성 삼위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하나님 말씀)을 은혜의 방편으로 삼아 우리를 낳으실 때(약 1:18. 롬 10:17. 고전 4:15) 주시는 씨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능동(율법 준수) 순동의 의로 획득하신 영생(부활)의 씨인 하나님의 씨’입니다. 부모의 DNA가 자녀에게 전달되는 일이 자녀의 ‘행위(첫울음, 엄마 젖을 빪)’나 ‘예식(부모가 족보나 호적에 자녀 이름을 올림)’ 이전에 일어나는 생물학적 필연이듯,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행 20:28)가 담긴 흠 없는 거룩한 씨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같은 피로 맺는 영원한 생명의 연합을 뜻하는 영원히 썩지 않을 씨입니다.
이지끼을 님 세례 중생론 확증편향 렌즈에 따른 체리 피킹 오류
다음은 [성경은 ‘세례 중생론’을 지지하는가?] 답글란에서 옮겨오는 답글입니다. 루이스 벌코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이라는 용어의 이러한 포괄 사용은 종종 혼동을 초래하고”를 보여주신 글입니다.
이지끼을 26.03.15 10:49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그분 교회의 교제 안으로 접붙이시고 양자 삼아 주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을 지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섭리적인 부모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기독교 강요 4. 17. 1)
칼빈(A)은 (기독교 강요 4. 17. 1)에서 세례로 중생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칼빈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 이것을 보여 드렸더니 사계 님은, 칼빈은 넓은 의미의 중생을 말했다고 하셨는데 칼빈의 말을 잘 보시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위 답글은 이지끼을 님 ‘세례 중생론 확증편향 렌즈에 따른 체리 피킹 오류’를 보여주는 답글입니다. 다음은 {기독교 강요 4권} [17장] <1항: 성찬의 신비>에 옮깁니다.
…(전략)…
첫째로, 그 표징들은 떡과 포도주인데, 이것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부터 받는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식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 교회 교제 속에 접붙이시고 입양을 통해서 우리를 자기 것으로 만드시듯이, 그분께서는 그분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사 새 생명을 얻게 하셨고, 그 생명을 유지하시고 지탱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심으로써 사려 깊으신 아버지의 임무를 다하시는 것이다.
…(하략)…
“그분께서는 그분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사 새 생명을 얻게 하셨고”, 이 문장은 ‘엄밀한 의미의 중생: 확정 성화, 단회 성화’를 뜻합니다. “그 생명을 유지하시고 지탱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심으로써 사려 깊으신 아버지의 임무를 다하시는 것이다.”, 이 문장은 점진 성화 길을 걷는 중생자를 ‘하나님 말씀과 성찬이라는 은혜의 방편들’을 쓰셔서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양육을 뜻합니다. 물론, 이 문장에서 “그 생명”은 당연히 ‘엄밀한 의미의 중생’ 시 주신 “새 생명”을 뜻합니다. 즉, 칼빈 선생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례라는 거룩한 외적 의식을 통해 인치신 그 새 생명이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만 중생자 영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말씀(히 4:12)과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효력을 발휘하는 의식, 눈에 보이는 말씀으로서 성찬이라는 이 두 신령한 양식을 통해 점진 성화의 길을 걷게 하시는 배려’, 사려 깊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분 돌보심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다음에: ②편으로 이어짐)…
@四季 朴埰同
그리고 사계님은
(2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마음의 할례를 받은 상태로 이해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그러시면 모세가 말씀을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