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장 철마면 웅천리(熊川里)
때묻지 않은 산골마을이 주는 여유
웅천리는 철마와 정관의 경계지점이다. 웅천 고개를 넘으면 정관이 등장한다.
웅천리의 옛 이름은 곰내다. 이 지명은 아직 쓰이고 곰내터널이 있다. 웅천리는 석길마을, 중리마을, 미동마을을 합한 법정동리명이다. 옛 이름 ‘곰내’ 의 곰자는 짐승을 뜻하는 말이 아니며 검(儉), 님금(王), 곰(神)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옛 말을 뜻이 아닌, 소리대로 표기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 지명의 이름으로 熊(웅)자로 쓰이고 있는 곳은 49곳, 龜(구)자는 33개, 鼎(정)자는 16곳이 있다고 한다. 철마면과 정관면에 있는 지명에서 마을이름으로 쓰이는 것 중에는 곰, 검, 가메가 많으며 이를 지명학에서는 검(君)계 지명이라고 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산은 大山(대산)을 의미하고 마을은 大村(대촌)의 뜻으로 수장이나 촌장이 있던 큰 마을을 의미하고 있다. 熊川(웅천)의 상류 계곡은 거문산(巨文山) 이다. 거문산은 검산, 곰산의 표기로서 熊山(웅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웅산, 죽 곰뫼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곰내(熊川)가 된다.
웅천리의 내 川자는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시내를 뜻하고 있으며 웅천이라는 뜻은 尊長(존장)이 있는 곳을 표시하며 마을의 위치는 시냇가에 있슴을 표시한 것이다.
옛날은 기장현 상서면 웅천방이었으며 1895년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상서면 웅천동이 되었다. 1914년 지방 행정 통폐합 당시에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가 되었다.
이 곳의 주민들의 구전으로는 옛날 이곳 시냇가에 곰이 많이 살고 있어서 곰들이 냇물을 먹고 가는 곳이라 하여서 웅계(熊溪)라고 하였다가 웅천으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길마을은 웅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이며 ‘석’ 자는 높다 라는 뜻이 있는 옛 고어의 돌, 달에서 온 명칭이며 ‘길’ 자는 길다 라는 의미의 永 자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석길마을은 와여리에서 길고 높은 협곡을 거쳐서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래서 높고 긴 곳에 즉,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민들의 구전으로는 이 마을에 유달리 돌이 많아서 이 돌들이 마을을 앞으로 길하게 하리라는 뜻으로 석길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중리마을은 웅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이며상리, 중리. 하리 등으로 구분되는 전형적인 지명이다. 보편적으로 내리와 중리는 같은 뜻의 이름으로 각단마을의 이름이며 웅천리의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이다.
미동마을은 예전에 고사리 밭이라고 하여서 미전(薇田)이라고 하였으며 이 마을에는 예전에 부뚜막에도 고사리가 난다고 할 많큼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의 구전으로도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여 고사리 밭이라고 하였으며 미전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남평 문씨가 처음으로 정착하였으며 김해 김씨, 박씨 순으로 입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기장군청


혹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철마에서 정관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 못 미쳐 진행방향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임도를 구경하시길 바란다. 수도암 윗쪽으로 건설된 임도는 점입가경이다. 임도도 꽤 길어서 차를 몰고서도 3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다.
때묻지 않은 산속의 경치도 좋지만 내려다 보는 산아래의 풍광도 멋지다. 다만 군데군데 건설 중인 송전탑이 옥에 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