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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우리 언약의 교회에 땡칠이가 분양돼왔다. 동아일보 복산지국에서 지국장 아빠를 따라 새벽 신문 배달에 나섰고, 동네의 지리를 네비게이션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알던 땡칠이는 복산동 일대의 터줏대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지국을 넘기고 간다며 지국장은 정든 땡칠이를 맡기게 된 것은 전에 땡칠이가 낳았던 새끼 가운데 귀여운 강아지 해피가 우리에게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땡칠이가 지국장 아빠를 따라 산전수전 겪으며 신호등까지 사람처럼 기다렸다 건널 줄 알았는데 해피는 신호등으로 건너는 것을 알았지만 미처 빨간 신호, 파란 신호를 구분할 줄 몰라 교통사고를 당해 순식간에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바람 쐬라고 나갔는데 엄마 이금희 목사 품이 그리웠던 해피는 혼자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해 죽었기에 10년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할 때면 마음이 아려오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엄마 땡칠이와 함께 행복한 몇 달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 땡칠이가 언약의 교회에 왔다가 몰래 지국으로 도망갔다가 덜컥 또 임신을 해버렸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마리 새끼를 낳았는데 그 동생들과 한동안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기에 그나마 해피를 생각할 때 위안이 되곤 한다. 작은 교회 환경에서 6마리 개를 다 기를 수 없어 의논 끝에 봄이는 먼저 교회 지킴이로 결정되고, 여름이는 큰 교회 집사님 집으로 입양이 되고, 가을이는 작은 개척교회 집사님 집에 분양됐다. 엄마 땡칠이도 지인의 집으로 떠나보냈다. 전도사의 외사촌 김진만 형제의 영천 집에 겨울이를 분양했지만 회사 출퇴근에 잘 돌볼 수 없다며 못 키우겠다고 해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봄이와 겨울이 형제가 최종적으로 언약의 교회에 남겨졌다. 마침 언약의 교회 바로 옆에 작은 손골공원이 있어 봄이와 겨울이는 수시로 공원에서 흙냄새 풀냄새를 맡고,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놀곤 했다. 희한한 것은 봄이와 겨울이는 놀기만 하는 데 공원에 놀러 온 아이들은 “강아지 만져봐도 되냐?”며 묻고는 쓰다듬어 주면서 인사를 하는데 그렇게 어울려 짧은 시간 같이 놀다가도 강아지들이 교회로 돌아오면 아이들도 봄이 겨울이를 뒤따라 교회로 들어왔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강아지와 어울려 놀게 되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되니 아이들은 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강아지 형제들을 보러 교회를 수시로 찾아오곤 했다. 처음에 땡칠이와 해피가 있었고, 갓 낳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마리 형제가 눈뜨기도 전에 아이들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청년들도 많았는데 주일이면 오후 예배를 마치고 정자나 주전이나 대왕암공원, 선암호수공원, 태화강 국가정원, 반구대 암각화 등 울산의 곳곳으로 강아지와 어울려 함께 산책을 나갔다. 아이들은 그렇게 강아지가 귀엽고 예쁘다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예배를 강아지와 함께 드렸다. 아이들이 하도 강아지와 어울려 다니니 불교를 믿는 아이까지 교회로 따라 들어와 정성껏 헌금을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강아지와 스킨십(skiship)을 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 날마다 교회를 찾았다. 해인이라는 예쁘고 착한 아이는 친구 따라 왔다가 강아지와 어울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일날 엄마가 같이 교회에 따라와서 우리 해인이가 너무 좋아한다며 십만원을 감사헌금으로 봉헌했다. 비록 교회에 다니시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힐링되는 모습이 너무 좋다”며 말해줄 때 참으로 느꺼웠다. 우리 봄이는 공을 던지면 리오넬 메시처럼 얼마나 날래게 잡아채는지 모른다. 하늘을 날 듯이 허공으로 붕 점프를 하며 몸을 날린다.
십중팔구 봄이는 공을 너무 잘받고 손흥민 선수처럼 경기를 할줄 안다. 그렇게 봄이가 운동신경이 뛰어나니 어느 순간 같이 놀던 겨울이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일체 공놀이에는 미련을 접어버렸다. 대신 겨울이가 선택한 것은 애교작전이다. 엄마 아빠가 외출했다 오면 머리를 처박고 하늘로 엉덩이를 치켜든 채 온갖 애교를 부렸다. 겨울이가 수컷인데도 하도 애교가 많아서 암컷이었던 무뚝뚝했던 가을이 대신 우리 교회에 선택됐다. 봄이 겨울이 둘 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힘껏 반겨주지만 겨울이가 유독 더 애교를 부리며 반겨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겨울이는 반기다 못해 숨이 넘어갈 정도로 반기곤 했다. 이처럼 정말 강아지가 목숨 걸고 엄마 아빠를 따르니 강아지를 애틋하게 챙겨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교회가 형편이 조금 힘들어져 성남동 1년을 거쳐 우정동에서 10년 세월을 보냈는데 찻길 험하다고 아이들은 다른 교회로 출석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도 봄이 겨울이는 방과 후 아이들이 길가로 지나가기만 하면 자기들을 반기던 주일학교 아이들로 착각하고 빨리 자기들에게 오라고 컹컹 짖어대곤 했다. 우리 언약의 교회는 우정동에서 굿뉴스울산을 창간하고 10년 세월을 맞게 되는데 강아지들이 신문 지국 출신 땡칠이 엄마의 자식답게 신문을 깔아주면 대소변은 항상 그곳에 잘 배변했다. 작은 개척교회에서 신문에 많은 재정을 쏟다 보니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고, 보증금까지 다 까먹자 새로 바뀐 주인은 매몰찬 음성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https://youtu.be/tlPEQboROKI
울산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얻으려 해도 강아지가 있으니 세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생 끝에 이곳 염포동에 겨우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이곳 길 건너편이 바로 현대자동차 공장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제작한 온갖 종류의 차들은 선적하는 배가 입항하면 실리는데 공장 주차장에는 수천 대의 차들이 군인들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우리 강아지 봄이 겨울이와 이곳에 함께 온 지가 1년 조금 넘어섰다. 복산동에서 교회할 때 주일학교 아이들은 벌써 시집가고 장가갈 나이가 됐다. 어느덧 10살이 훌쩍 넘어버린 우리 강아지들과 이곳에 와서 현대자동차 공장 너머 아산로에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보면서 ‘참 황홀한 그림이다’ 감탄했다. 그러면서 우리 강아지들도 나이가 많으니 저 불타는 노을처럼 이제 애잔하게 사라지려나 마음이 아려왔다. 그 슬픈 예감처럼 올 초 우리 겨울이가 13년 6개월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겨울이는 죽기 전 몇 달을 아팠는데 서서히 힘이 빠져 기진해서 죽었다. 그날따라 외출하고 늦게 돌아왔는데 겨울이가 힘이 빠져 죽어있는 모습에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듯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엄마 아빠 보는데서 조금 안심하며 떠났을 텐데. 처음 접하는 형제의 죽음조차 봄이는 처음에 깨닫지 못했다. 겨울이 장례를 치르러 갈 때 봄이에게 형제 떠나는 장면을 보여줬는데도 봄이는 형제의 죽음을 잘 깨닫지 못했다. 혼자 남은 봄이는 엄마 아빠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꼬리가 떨어져 나갈 만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를 보고 행복해하던 우리 봄이가 외롭지 말라고 구정 때 대왕암공원에 바람을 쐬줬는데 우리 봄이는 날아갈 듯 좋아했다.
https://youtu.be/DQLn7UI47SE
겨울이와 13년을 함께 했는데 혼자 남겨지니 그래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는지 엄마 아빠가 외출했다 오면 정말 많이 반가워했다. 우리 봄이와 봄에는 선암호수공원에 산책을 다녀왔고, 초여름엔 주전 보밑항을 산책하며 물놀이와 해변가 산책을 함께 했다. 주전마을 방파제 등대에도 쏜살같이 잘 다니던 우리 봄이,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봄이가 어느 날 산책하다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져 학성공원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했다. 다행히 “다리에 인대가 늘어난 것이니 활동을 금하고 조심하면 된다”고 해서 3주간 안정을 취하고 염포동 성내마을의 공원에서 산책을 나갔다. 건강이 회복된 봄이는 산책을 마음껏 즐겼다. 우리 봄이 혼자 남게 됐으나 밤마다 산책을 다녀오면 세상 다 가진 듯 그렇게 좋아했다.
8월 말경 봄이에게 호흡곤란 증세가 생기더니 천천히 증세가 진행됐다. 처음에는 밤중에 간헐적인 증세를 보이더니 죽기 한 달 전에는 밤에 한두 시간마다 ‘켁켁’ 거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가 교대로 어루만져주며 안정시켜 주었다. 약국에서 마이신을 처방해 한 달 동안 먹였더니 처음에는 조금 좋아지더니 나중에는 또다시 심해지기 시작해 11월이 들어서고는 점차 병이 진행됐다. 우리 봄이가 11월 11일 죽었는데 보름 정도는 복부팽만이 심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여태 몸짱이었는데 안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까지 산책을 나가면 뒤뚱거리면서도 얼마나 잘 돌아다녔다.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봄이는 죽기 이틀 전까지 산책을 즐겼다. 죽기 하루 전에는 엄청 심한 호흡곤란이 왔다. 거의 4달을 봄이 간호하며 세심하게 돌봤는데 엄마 아빠가 동구청에 혼인신고를 하고 온 사이 마치 혼인신고의 증인인 것처럼 불과 두 시간 사이에 봄이가 죽어있었다. 그것도 아빠가 잠잘 때 베개를 베고 눕는 바로 그 자리에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는 듯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웠고, 그동안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희한한 것은 봄이는 워낙 건강했기에 형제 겨울이의 죽음도 잘 알아채지 못했는데 자기 몸이 병들고 서서히 병이 진행되니 마지막에는 자기도 죽는 존재임을 좀 알아챈 거 같았다. 죽기 하루 전에 봄이는 엄마 아빠가 누워 자는 곁에서 자기 자리에 앉기 전 아빠 가까이 와서 아빠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두 걸음 옮긴 뒤 엄마 얼굴을 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게 두 번을 똑같이 반복하니 우리는 ‘봄이가 자기가 죽는 것을 아는가 보다’ 알게 되었다. 그렇게 봄이의 마지막 인사를 받았기에 봄이의 마지막 한두 시간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조금 덜 슬펐다. 봄이는 “엄마 아빠, 지금까지 우리 형제를 잘 길러주고 많이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요”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봄 사랑해. 천국에서 만나자. 사랑해 봄” 죽고 나서 우리는 봄이의 장례를 잘 치르고 형제 겨울이 옆에 같이 있도록 해주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하고 괴로워할까 염려됐는지 봄이는 엄마의 꿈에 나타나 겨울이와 함께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하는 우리 귀염둥이 강아지 겨울이는 13년 6개월, 우리 봄이는 14년 4개월의 행복일지를 끝으로 지상의 호흡을 끝마쳤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듯이 우리 강아지들도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 그런 좋은 곳에서 다시 해후할 수 있는 믿음을 품고 있다. 우리 교회 전도하는 강아지 봄이 겨울이와 함께했던 행복일지를 나중에 소책자로 발간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때 입양 갔던 여름이와 가을이와 함께 6개월 만에 급히 하늘나라로 떠났던 해피와 엄마 땡칠이의 이야기를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과 함께 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자신을 위해 자신의 단체를 위해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세상에서 강아지들이 보여준 태도는 기품있는 신사의 품격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 강아지들은 그렇게 교회를 위해 봉사했고, 그렇게 엄마 아빠를 사랑하다 모든 사랑을 다 주고 나서 지상에서의 자신들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다.
굿뉴스울산 이금희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