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23.
장마도 지났고 올 여름도 푹푹 찌는 더위와의 전쟁만 남은 듯하다. 물인지 땀인지 분간 조차 안갈 만큼 온종일 더위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기운이 떨어지면서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며 몸이 축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부터 복중 일수록 이열치열을 강조하며 육류 중심의 보양식들을 권장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닐터다. 가뜩이나 더운데 불앞에서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만드는 과정이 그야말로 고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설령 애써 만들어 봤자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고 더구나 요즘은 외식과 혼밥도 많다보니 무턱대고 힘든 보양식을 조리하는 것도 무리다.
무엇보다 무더울 때는 입맛이 뚝 떨어져 미각을 돋우는 식재료와 함께 몸 속에 내재된 열을 식혀주는 식품들을 잘 선택해 먹는 것이 선결 과제다. 무더위에 지쳐 체력이 떨어지면 평소 속이 튼튼했던 사람들도 탈이 생기기 십상이다. 사실 밥이 보약이라고 무더울수록 잘 챙겨만 먹어도 기본적인 체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몸의 열을 내리고 미각까지 돋울수 있는 메뉴로는 콩국수가 으뜸이다.
더위에 지친 입맛을 북돋으며 다이어트에도 역행되지 않는 산뜻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콩국수 한 그릇의 열량은 500Kcal 정도로 혈관의 흐름을 원활하게 돕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으며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쾌변을 유도하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를 예방하고 콩 속의 사포닌 성분이 혈액 속에 콜레스테롤 양을 감소시키고 비만 체질을 개선해 준다. 콩 속의 이소플라본은 식물 에스트로겐으로 여성의 유방암과 골다공증, 남성의 전립선 비대 및 전립선암 예방에 좋다. 특히 흰콩(대두)은 오장을 보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며 장과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콩에 들어 있는 기름은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비타민 E는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한마디로 콩국수는 땀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하면서 시원한 입맛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여름 음식이다.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인 콩과, 성질이 차면서 열을 내리게 해주는 밀의 조화가 좋은 궁합을 이룬다. 콩과 함께 주재료가 되는 밀은 한방에선 '소맥'이라 부른다. 소맥은 몸에 불필요한 열을 내려주고 답답한 증상을 없애주며 갈증을 해소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콩국수 역사는 19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00년대 말 지어진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보면 "콩을 물에 불려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밭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말고, 웃기(고명)는 밀국수와 같이 한다"고 적혀 있다.
옛사람들도 콩국수의 재료인 콩의 영양가는 익히 인정하였던 듯하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귀현(貴顯)한 자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직 이 콩뿐이다. 맷돌에 갈아 정액만 취해 두부로 만들면 남은 찌끼도 얼마든지 많은데 끓여서 국을 만들면 구수한 맛이 먹음직하다"며 콩의 영양적 가치를 극찬하였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콩국수는 옛날부터 서민들의 음식으로 우리네 선조들도 콩국수를 여름철 별미로 삼고 즐겼던 것 같다. 콩국수가 서민 음식이라는 사실은 조선 후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에 잘 소개되고 있다. 다산시문집에는 "춘궁기를 당하여 뒤주가 비는 일이 갈수록 심해져서 콩국 마시는 걸로 만족해야 하니, 참으로 옛사람들에게 부끄럽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더울때는 바깥에서 사먹는 콩국수도 좋겠지만 무더위에 지치고 상한 가족의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정성이 반이라고 한번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렇게 마음이 실린 콩국수야 말로 여름 보양식 중에 보양식일수 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메주콩이라 불리는 대두를 사다가 반나절쯤 불렸다가 믹서에 갈아 소금으로 간해 만든 콩국을 준비한다. 이를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삶은 메밀이나 소면에 준비한 시원한 콩국을 충분히 부어서 먹으면 환상적이다.
김연수 / 푸드테라피협회 대표
자료출처 :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