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5
얼마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들의 아파트 및 오피스텔 가격이 평균 3억2000만원 올랐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비서실 소속 1급 이상 전·현 공직자 65명의 보유 아파트·오피스텔의 3년간 시세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개개인이 차이가 있지만 10억원 이상 오른 경우도 4명이나 되었다. 이는 아파트와 오피스텔만 분석한 결과다. 상가주택 및 토지의 상승분까지 합치면 평균 상승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경실련은 이를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빗대어 '불로(不勞)소득주도성장'이라고 이름지었다. 청와대에서는 "오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며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무려 17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심지어 지난달 19일 문 대통령이 '2019 국민과의 대화'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서울 쪽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정부가 강도 높게 합동조사를 하고 있고 여러 (다른) 방안을 갖고 있다"며 말했다. 이어 "지금 방법으로 (가격을) 못 잡으면 보다 강력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 반드시 잡겠다"고까지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참모진들이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재산을 불렸다는 지적은 불편한 진실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은 대통령 참모만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이달 6일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총 24만1621건. 이들 모두의 매매 내역 분석 결과,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 평균값이 2017년 상반기 5억 8524만원에서 올 하반기 8억 2376만원으로 2억 3852만원(40.8%) 올랐다. 즉 2년간 서울 전역의 아파트 거래가는 무려 40% 이상 급등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정부 정책에 커다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키워드는 규제를 통한 수요억제다. 지난 2017년 6월 LTV와 DTI 강화 대책을 비롯, 8·2 부동산 대책, 9·13 부동산 대책, 10·24 가계부채종합대책 등 정부의 정책은 모두 규제 중심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규제는 면역력만 키웠을 뿐 아파트 가격은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다시 올랐다. 그런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다. 정부는 여전히 일부 투기세력을 규제하면 아파트 가격 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바라보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을 심리학에서 '기본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특히 자기중심의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 시장에서는 살만한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정부는 애써 귀를 막고 있다. 정부가 수요라는 상황을 무시하고 개인 탓으로만 몰아 붙이면서 '불로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는 셈이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문재인 정부의 불로소득주도성장 혜택을 입었다. 아파트 가격 상승의 바람이 강북 아파트까지 왔기 때문이다. 동네 아파트의 모바일 커뮤니티에는 "○억원 돌파"라면서 자축하는 분위기다.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재산세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그리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잠재적 불로소득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잇따른 규제 헛발질이 때로는 고맙기도 하다.
며칠 전 대학졸업생들과 저녁 식사를 한 적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째를 맞은 이들은 불안한 미래를 토로했다. 이들에게 아파트 가격의 급등은 남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너무나 오른 부동산 가격 때문에 집을 구입할 생각도, 결혼할 의욕도 잃었다고 했다. 지난해 신입 대졸자들의 평균 연봉은 3334만원. 이들은 방값과 교통비 등 생활비를 제외하고 월 100만원 저금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대통령 참모들을 비롯, 다른 사람들은 연 1억원 가까운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허탈감이 들 것이다. 20대들에게 미안하다. 사회 전체가 불로소득주도성장의 공범이 되어가고 있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