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본문 : 히브리서 11장 1절 ~ 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2) 제목 : 믿음에서 믿음으로
3) 설교 : 구능회 장로 (노량진교회 1남선교회 회장)
- 2025년 3월 2일 12시 반 / 노량진교회 백주년기념관
- 대 상 /노량진교회 1남선교회 회원 54명 (만 71세 이상)
4) 설교 내용
*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3월 월례회에서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조영태 원로장로님께서 하시기로
되었는데, 장로님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일 전에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 계셔서, 회장인 제가 갑작스레 담당하게 되었음을
말씀드리며 양해를 구합니다.
* 오늘 히브리서 11장 본문 말씀은 우리가 '믿음장章'으로 이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1장 전체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하며
믿음에 대해 선언적이고 함축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과 관련하여 뜻깊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에 한 때 이 믿음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에, 서울 광석교회에서 시무하시던 김영수 목사님께서 저의 고향
교회에 오셔서 인도하신 부흥 집회에서 이 말씀에 대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크리스챤의 믿음은 내 눈에 명확하게 보인다거나, 내 손에 확실하게
잡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실체가 희미하거나 내가 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먼저 믿고 가는
것" 이라는 말씀을 듣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믿음觀'을
정립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이 믿음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의 '유형類型'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랑비에 옷이 젖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소낙비에 옷이 젖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가링비를 맞으면
내가 지금 비를 맞는 것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래 계속되면 가랑비라도 내 옷을 흠뻑 적시게 됩니다. 옷이 젖는다는
것은 내 믿음이 성숙해진다는 의미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만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는 수고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아마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은 이런 유형의 믿음일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것
이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 때에 내 믿음이 아주 깊어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낙비에 옷을 흠뻑 적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믿음은
짧은 시간에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믿음을 갖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내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전격적이고도 직접적
으로 개입하여 부어 주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믿음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이런 믿음을 갈망했습니다. 추호의 의심의 여지없는 확고부동한
그런 믿음말입니다.
* 가랑비 믿음의 모델로 저는 사도 도마 선생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
소낙비 믿음의 모델로는 사도 바울 선생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 선생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다른 제자들로 부터 듣고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그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는 도마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도마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친히 "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
고 하셨습니다. 이 때 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무척이나 민망
하고도 송구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손을 조심스레 만지며
못자국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옆구리에 손을 넣고 창자국을 확인합니다.
그리고나서 주님 발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란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 소낙비 믿음의 모델인 사도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잡으려고 멀리 다메섹에까지 출장을 가며 날뛰는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
께서 직접 바울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 새 인생을 열어
주셨습니다. 참 특별하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와 체험으로 다가 온 믿음이었지요.
* 제가 의심과 방황의 늪에서 헤멜 때, 이 소낙비 같은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바울 사도가 부러웠습니다. 그러면, 이상의 두가지 유형의 믿음
중에 과연 가랑비보다는 소낙비 믿음이 우월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주님께서 사도 도마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믿음의 증거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털썩 무릎을 꿇고 신앙고백을
하는 도마와 주변 제자들에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장 29절)"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한걸음씩
착실하게 순종하며 나가는 가랑비와 같은 믿음도, 귀하게 여기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믿음이 지지부진함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하는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말씀이었
는지요. 비록 더디고 약해 보이는 믿음이지만, 낙심치 않고 꾸준하게 말씀
붙들고 나아가면 마침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희미한 믿음에서 분명한 믿음으로, 나약한 믿음에서
확고하고 강력한 믿음으로, 미지근한 믿음에서 뜨거운 믿음으로 나아가는
기독 신앙의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가
면서 보다 성숙하고 고상한 크리스챤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 제가 전에 림인식 원로목사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 우리나라에
많은 목사님들 중에, 가장 존경하는 세분의 목사님들이 계시다고 해서 어느
분들인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채필근蔡弼近 목사님과, 목사
님의 할아버님이신 림목사님, 그리고 한경직韓景職 목사님이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영락교회 시무를 마치시고 여생을 남한산성 거처에서
지내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들께서 한목사님을 찾아 뵙고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목사님들께서 한목사님께 인생과 목회의 선배님으로,
자신들에게 긴요한 말씀을 들려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에 한경직 목사님께서 후배 목사들께, "예수님 잘 믿으세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좀 싱거운 말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경직
목사님께서 하셨다는 이 짧은 한마디 말씀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잘 믿는 것이 인생 일대의 중요한 일입니다.
* 1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세월이 흐르면서 정든 이들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나
갑니다. 그래서 외로움이 찾아 옵니다. 또한, 여러 노환들이 불청객으로 찾아
옵니다. 그러니 또한 괴롭습니다. 그밖에도 이런 저런 아픔과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는 진정으로 예수님 잘 믿는 일이 참
절실하게 다가 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끝날까지 떠나지 않고,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석양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회원 여러분들께서, 우리 1남선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면서
여생이 주안에서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