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31.
방역 당국이 오미크론에 의한 코로나19가 계절형 독감에 불과하다는 억지를 반복하고 있다. 치명률이 0.1%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 유일한 근거다. 그동안 낯 뜨겁게 자랑하던 K-방역의 해체를 서두르기 위한 옹색한 궤변이다.
실제로 청소년들까지 반발했던 '방역패스'는 오래 전에 폐기해버렸고, 백신 접종 열기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국민들을 힘겹게 만들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도 허겁지겁 해제하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19를 2급 전염병으로 다시 분류해버릴 모양이다. 완전한 무장해제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계절 독감으로 부르기도 하는 인플루엔자와 전혀 다른 질병이다.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부터 다르다. 코로나19는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인 SARS-CoV-2에 의한 질병이지만, 계절 독감(인플루엔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다. 호흡기 질병이라는 공통점을 빼고 나면 코로나19와 계절 독감은 사돈의 8촌보다도 더 먼 관계다.
계절 독감의 치명률이 0.01~0.05%라는 주장도 억지다. 아마도 정부가 2009년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신종플루'의 자료를 살펴본 모양이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75만 9678명이 감염되어 270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0.036%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종플루의 경우에는 코로나19에서 사용했던 '진단키트'가 없었다. 병원에서 임상적으로 증상이 확인되어야만 감염자로 분류된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무증상으로 병원을 찾지 않은 감염자는 통계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신종플루의 실제 치명률은 정부의 통계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계절 독감을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치명률은 10%에 가까웠다.
실제로 계절 독감은 절대 가벼운 질병이 아니다. 계절 독감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감염병이다. 2017년 추정에 따르면 매년 300인~500만명이 위중증으로 악화되고, 그 중 29만명에서 65만명이 사망한다. WHO가 매년 겨울에 유행하게 될 변이를 예측해서 백신을 준비하도록 도와주고 있는데도 그렇다.
치명률이 감염병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치명률이 낮더라도 감염력이 강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재생산지수는 홍역과 비슷한 10~14 수준이다. 오미크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감염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위중증자와 사망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델타 변이가 확산되던 지난 겨울까지도 하루 10명 수준이었던 사망자가 이제는 500명 수준까지 늘어나고 있다.
30일 기준으로 국민의 24.9%가 감염돼버린 상황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전 세계 인구의 0.6%를 차지할 정도인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감염자의 30%와 사망자의 10%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몹시 당혹스러운 것이다. 정부가 섣부르게 '일상회복'과 '위드코로나'를 외칠 때가 절대 아니다.
정부가 주도한 K-방역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청와대와 김부겸 국무총리의 자화자찬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코로나19의 방역에 철저하게 실패해버린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보다 나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정부의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정치방역'에 시달려왔던 국민들은 오히려 중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대만·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국민들을 괴롭힌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부가 국민들이 기대하는 만큼 적극적이고 합리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역의 시계를 전 세계 190여 개 국가들이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했던 2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정치방역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 구중궁궐로 변해버린 청와대의 그늘에 숨어서 국민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했던 정치방역의 주역들에게 무거운 책임도 물어야 한다.
이덕환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