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맥추절에 배우는 감사 Date 2023. 7. 2
Text Lev 23,15-22
(15)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20)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1. 오늘이 2023년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1년 3차 유월절, 맥추절, 추수절 등의 감사절을 정하셔서 지키라 하셨는데 바로 오늘이 세 감사절 중 두 번째이고 중간에 있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유월절 후 일곱 번의 안식일을 지난 후에 지키라 하셔서 ‘칠칠절’이고 새해 들어 첫 곡식(보리)을 수확하고 지키는 절기라고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 하며, 오십일 째라는 의미로 ‘오순절’이라 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분다고 하여 ‘나팔절’이라 하기도 하는 감사절입니다.
오늘 2023년 맥추감사절에는 성경에서 맥추감사절에 대하여 상세하게 그 뜻과 규례를 가르쳐주고 있는 레23,15-25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은혜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2. 본문 15-21절은 맥추절의 시기와 이 감사절의 성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기는 15-16절에서 알려주는 대로 유월절 기간 중에 있는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에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요제로 드리고(11절), 그때로부터 칠 주간이 지난 다음 날 곧 5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이 시기는 유월절에 따라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5월 중순쯤이며 기독교 교회력의 성령강림절 때와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칠칠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이 모두 같은 시기이지만 우리는 성령강림절과 시기를 달리하여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시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만 의미와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 16-21절은 이 감사절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지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하여 이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16절에서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라고 하였고, 17절에 보면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떡 두 덩이라 하였으며, 흔들어 바치는 “첫 요제”라 하였습니다. 또한 18절에서는 번제로 드리는 “화제”라 하였고 19절에서는 “속죄제”라 하였음며 “화목제물”로 드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20절은 이때 드리는 떡은 “첫 이삭의 떡”이라 하였습니다. 보리를 의미하는 맥추감사절이라는 번역은 우리 식 번역으로 실제 원문에는 보리가 아닌 밀 수확(wheat harvest)입니다. 출34,22절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는 번역은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모두 보리가 아닌 밀로 바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감사절에도 다른 절기와 마찬가지로 나팔을 부는 나팔절이었다는 점입니다. 민10장에 보면 나팔을 부는 방법과 의미가 나옵니다. 민10,10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을 부는 의미 첫째는 널리 알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회집을 알리거나 전쟁이 났을 때 백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어쨌든 이 감사절은 첫 추수를 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로 동물 제물보다 곡물 제물이 중심이 되어 있고, 무교절과는 달리 누룩을 넣어서 부풀려 만든 맛있는 떡으로 드렸으며,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바친다는 뜻의 ‘요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속죄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갈 것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에서는 이 감사절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영생의 나라에 갈 때까지 상주하시면서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받은 은혜를 널리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은 우리에게 오늘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이라는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혹시 오늘에 거둔 첫 열매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잘 되었든 잘 안되었든, 우리는 오늘이라는 열매에 대하여 하나님의 작품이라 믿고 제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영주 중고등학교 교장과 이사장을 지내신 강경훈 장로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일제에 의해 보급대로 강제로 징용되어 채석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 고된 일터에서도 경건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하루는 식사 시간에 식기도를 하고 눈을 뜨니 도시락을 개가 물고 도망가더랍니다. 그래서 개를 쫓아가니 다른 일꾼들이 깔깔거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하나님은 개가 도시락을 물고 가도 지켜주지도 않는가 보네!’ 조롱하더라니다. 그런데 강 장로님이 막 개를 쫓아가는 순간 갑자기 앉았던 자리에 폭발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는데 장로님만 개 덕분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개를 시켜 도시락을 가져가게 하셨는데 알고보니 도시락을 가져가게 한 것이 아니라 믿음 좋은 강 장로를 살려주려고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첫 열매란 지금의 결과물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과 두려움, 절망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믿음으로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그게 성도의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도 그런 사람으로 살라고 이 감사절을 정하여 지키게 하십니다. 은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본문 22절은 이 감사절엔 다른 감사절과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성회를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고 감사하는 날로 삼으라고 합니다. 21절을 같이 읽습니다.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살든지 영원토록 지켜야 할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며 그들끼리 서로 만나는 날 중의 하루입니다. 무교절의 잔치를 위해서는 7일 간이 충당되는데 오순절의 성회를 위해서는 오직 하루가 지정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무교절과 추수절에 비해 맥추절은 조금 무게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거나 하나님도 사람이 바쁠 때는 사람 사정을 봐 준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농한기의 칠일보다 농번기인 맥추절 시기의 하루를 시간을 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명령은 더욱 엄격한 명령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축제는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광야에 가서 행하라고 명령했었고, 또 영구히 지키도록 명하신 절기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되새기게 한 율법을 말한 신16,16-17에서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동일한 강조로 명한 것입니다.
감사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감사 실천을 한 사람들의 뇌파 실험 결과를 보았을 때, 뇌 피로 지수가 개선되었고, 자기 조절과 심신 균형은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경우 학업성취도 높아졌고, 직장인의 경우 업무 성취도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삶이 좋다는 것은 뇌과학적으로도 검증이 되었고, 또한 성경에서도 감사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영국 출신의 성경 교사이며 개혁주의 신학자이고 성화론, 구원 신앙 등 다수의 저서로 20세기 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 중의 한 명이었던 아더 핑크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는, 첫째가 교만, 곧 내가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가 ‘비교 의식’이며, 셋째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눅17장에 예수님이 나병환자 열 명을 낫게 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명이었습니다. ‘나만 나은 것이 아니고 다 나은 것인데 뭘!’이라는 자기 중심 사고, ‘어머니!, 여보! 아들아! 저 나았어요! 나 나았다!’라며 낫게 해 주신 예수님보다 자기 가족이 먼저인 자기 중심 사고, ‘에이, 이제사 살 것 같네~ 냄새나는 것들과 함께 있어야만 했다니!’라는 자기 중심 사고가 은혜조차 원망 거리로 삼고, 이제 겨우 정상이 됐지만 앞으로 어찌 살까 하는 걱정이 우선되게 하였던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받긴 받았지만 그것이 기쁘게 느껴지지 않으니 감사가 나올 수 없지요. 끝없는 비교 의식과 만족의 밑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에 감사가 자리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영원 지옥에 떨어질 자신의 운명도 알지 못한 채 저 잘난 줄 알고 살던 나에게 먼저 찾아와 손 내밀어 영원하고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게 하신 그 은혜를 알고 느껴야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구해주신 것도 고마운데 천사도 흠모할 직분까지 주셔서 수십년 성직에 몸담을 수 있게 하시고 이렇게 은퇴하여 당장에 먹고 살 식량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하신 것 정도로도 충분히 감사할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며 살라고 오늘 맥추감사절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줄 믿습니다.
4. 마지막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감사절기 때에 늘 이와 비슷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감사절이 되라고. 뭐 사회 봉사하라는 명령일 수 있습니다만 조금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한다면 우리 마음에 이웃을 담고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119 구조를 받은 사람들 중 100명 중 3명꼴로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97명은 감사하지 않는 것이죠. 뽀빠이 이상용씨가 어린이 심장병 수술을 돕는 운동을 하며 1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수술 받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답니다. 도리어 심장재단 돈을 횡령했다는 고소만 당했다고 한 프로에 나와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에 이웃이 담겨 있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살기 바빠서,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119 구조 대원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조를 했는데, 자기 재산과 재능을 다 바쳐 수술시켜줬는데, 정작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은 맥추감사절에 이것을 우리에게 묻습니다. 대답에 따라 감사의 사람이 되어 복되게 살 수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