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알프스 새별오름
제주에 살기 시작한 지 언 1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로 넘어와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3개월의 시간을 넘어 1년 아니 2년 혹은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제주에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이 질문에 제주를 사랑하고, 어느 정도 제주 여행을 해봤다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새별오름'을 대답할 것이다. 새별오름의 가을은 높은 풀들이 따뜻한 베이지색 억새로 아름답게 이곳을 채우고,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나 또한 이 모습에 '새별오름은 가을에 가는 여행지'로 단정 지었고, 여름에 찾을 생각 없이 제주살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여름 처음으로 새별오름의 여름 풍경을 만났고, 그 풍경 덕에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새별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음 봉성리 산59-8
'저녁 하늘에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있다'하여 붙여진 새별오름은 바리메오름, 누운오름, 당오름, 금오름 등 많은 오름이 밀집해있는 서부 중산간에 위치해있다. 이 오름은 이곳 서부 중산간 오름 지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대표 오름이다. 또, 이 오름 주변으론 성이시돌목장, 왕따나무 등 사진 찍기에 좋은 관광지가 근처에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은 오름 중 하나다.


이 새별오름은 해발 519m로 높이 119m로 입구에서 약 3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조금은 가파르지만,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다. 또,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 서쪽 아름다운 해변과 비양도를 만날 수 있고, 주변으로 뻥 뚫린 초록 초원은 새벽오름을 오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멀리 보이는 협재의 바다가 아름답게 빛난다.
이곳 새별오름은 그저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가 이곳을 빛낸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이 축제는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열리는데 바로 '들불축제'가 그 축제이다. 제주도는 오래전부터 농한기에 소를 방목하기 위해 묵은 풀과 해충을 없애는 불놓기 문화가 있었다. 새별오름 들불축제는 이런 목축문화를 계승한 축제로, 100m가 넘는 오름 전체가 불에 타오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축제이다. 그 모습은 그 어느 축제보다 이색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축제는 1997년부터 시작해 201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 하여 우수축제로 지정되기도 했다. 매년 3월 정월대보름 전후로 제주도 여행을 한다면 들불축제를 즐겨보자. 새별오름 전체를 대형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들불 놓기와 화산불꽃쇼, 횃불 대행진 등 화려한 볼거리가 이곳을 가득 채울 테니


제주의 초록색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포근하다.
나는 매년 가을 제주를 여행할 때 꼭 새별오름을 빼먹지 않고 찾았다. 제주의 가을은 다른 계절보단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차분해 가볼만한 여행지가 많지 않았고, 그 중 가장 빛났던 곳이 새별오름이였기에 나는 늘 가을이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가을이란 계절에 포커싱을 맞춘 새별오름은 내가 씌운 프레임 때문에 다른 계절엔 찾지 않게 되었다.


이번 여름, 이랬던 새별오름을 찾게 되는 일이 생겼다. 제주에 놀러 온 친구가 새별오름을 가고자 원했고, 나는 그에게 새별오름은 가을에 가는 곳이라며 다른 곳에 가자고 회유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 프레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꼭 가보고 싶다며 내게 부탁했고, 나는 다시 한번 친구에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뉘앙스로 말한 뒤, 차를 끌고 새별오름으로 이동했다.


가을이 되면 억새로 가득 찰 새별오름, 여름엔 억새만큼 높은 풀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그렇게 도착한 새별오름 입구에서 나는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씌운 프레임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마저 막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되었고, 친구가 원했던 새별오름은 꼭 가을에만 와야 하는 여행지가 아닌 사시사철 아름답게 빛나는 여행지임을 깨달았다. 가을에 흔들리는 억새와는 다르게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는 또 다른 멋진 모습으로 아름답게 서있었고, 내가 어리석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새별오름의 언덕길은 약 30분가량이 소요된다.
푸른 초원의 새별오름은 왜인지 스위스의 알프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그 초록 풀 사이로 펼쳐진 산책로는 나를 하이디로 만들었다. 가을의 노란 억새도 물론 아름답지만, 여름의 새별오름도 가을의 새별오름만큼 아름다웠고, 제주의 스위스라 불러도 될 만큼 그 풍경은 놀라웠다.


산등성이 곡선이 아름다웠던 새별오름
이곳 새별오름을 한 시간가량 누비면서 내게 씐 프레임을 천천히 모두 벗겨냈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못된 프레임은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의 절반을 놓치게 만들었고, 새별오름은 그저 노란색 억새만 있는 장소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그 프레임을 벗겨내는 순간,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단편적으로만 볼 수 있던 새별오름의 반대 모습까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프레임을 벗기면 더 많은 것을 더 넓게, 더 깊게 만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나의 편협한 생각을 벗어던질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새별오름 밑 신기한 번호를 가진 자동차를 만나게 되었다.
새별오름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고, 초록빛 알프스를 닮았다. 또, 사방으로 뚫린 새별오름의 바람은 그 어느 곳보다 시원했고, 뻥 뚫린 풍경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더운 여름, 조금은 힘들 수도 있지만, 초록빛 새별오름으로 여행해보자. 가을이란 프레임에 씐 새별오름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게 다가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