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역사하시는 성령 Date 2017. 2. 26
Text 1Cr 12,7-11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 세상이 만들어진 이래 오늘까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세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몸은 쉼 없이 작용하고 있지요.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가 됩니다. 창1,2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였고 시104,30에는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욥33,4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지금도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일하고 계십니다. 성자예수님께서도 요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의 말씀처럼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도 앞에서 본 성구, 창1,2 시104,30 욥33,4 말씀대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일하실 때, 우리 인간의 기도를 참조하신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시기도 하셨고(창18,17) 심판을 하시는 중에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여 그의 조카 롯을 구원하기도 하셨습니다.(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거기 의인 50명이 있다면 그 의인 50명도 함께 멸망시키실 겁니까? 40명이 있으면요, 35명이 있으면요, 그래서 의인 10명까지 내려가지 않습니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열명 때문에 심판을 시행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댔지요. 그런데 그 소돔 성에 의인 열 명도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 멸절시키는데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한 명 롯과 그의 가족들을 불벼락이 내릴 소돔으로부터 강제로 손을 잡아 끌어내서 살려주셨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삼일절기념주일입니다. 1905년에 강제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1910년에서는 아예 대한제국을 없애버리고 자기네나라에 강제로 흡수합병을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점차 우리 민족들은 온갖 수모와 수탈을 당하면서도 ‘힘이 없어 못한다.’ ‘우리는 절대로 일제에 대항할 수 없다’ ‘그냥 이대로 살 수밖에 없어’라는 극도의 패배의식과 극심한 절망감에 젖어들어 있었던 때, 그 1919년에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인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주보 칼럼난에도 썼습니다만 사실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삼일만세운동 같은 거국적 운동을 대대적으로 할 엄두를 못 냈었습니다. 헌데, 민족대표 33인이 죽음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불 지른 독립선언은 본인들도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나라를 위해 기도하던 성도들의 기도를 참조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요.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과 더불어 성령하나님께서는 저 창세 때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영원무궁토록 일하고 계십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멸망하지 않고 구원하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성령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본문 말씀에서 깨달아 알고, 믿어 사모하며, 그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7절 말씀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나오는 “각 사람”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하고 사탄을 쫓아갔던 인간들 중에, 어린 양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롭고 정결한 피로 씻어 다시 깨끗하게 하시는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다시 성령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이 7절 말씀입니다. 무엇 때문에 성령을 나타내느냐 하면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피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시면 좋겠습니다. 류마티스(rheumatism)가 너무 심해서 예배시간에도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드리다가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는데 병이 낫고 난 다음에 교회에 안 나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오토바이 타고 양말을 팔러다니느라고 교회에 못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앞에 나오는 인생들의 질고를 해결해주시도 하시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양말장사 할 수 있게 하려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의 보혈로 오욕칠정으로 더럽혀진 죄를 씻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다시는 죄의 종, 마귀의 종,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의 사람으로 살지 않고, 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타내시어서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하여 복된 인생, 승리자 인생, 나아가 거룩한 인생이 되는 유익을 주고자 하십니다.
왜요? 그래야 장차 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다른 천국성도들과 정말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영원 무궁히 복락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은 잠깐이지만 장차 가게 될 곳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이거든요.
여러분, 베드로 사도께서 첫 번째 했던 설교에서 했던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가 누군지, 그가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지, 또 왜 살아나셨는지, 그런덴 관심도 없고 오로지 지금 세상과 여기에 사는 일상생활밖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그럼 우리가 어찌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말합니다. “(38)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흐르는 그 피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신의 죄를 씻으십시오. 그리고 꼭 성령의 선물을 받으십시오. 이는 예수님의 분부이십니다. 약속이십니다.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사항입니다. 꼭 성령 받는 자리까지 가십시오.
3. 성령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성령하나님을 환영하십시오. 성령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꼭 그 성령으로 충만해지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9가지의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이 아홉 가지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성경을 보면 이 9가지 외에도 약 18가지 정도의 다른 표현도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아홉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8절에는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형태로 타나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이고 지혜는 ‘소피아’, 지식은 ‘그노시스’입니다. 로고스는 모든 존재와 변화의 원리, 이치 등을 뜻하고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지혜는 실제적인 적용을, 지식은 이론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임하면 신적 지혜와 지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이 아니라 마17,20 말씀에 나와 있는 산을 명하여 옮기는 믿음이며 히11,33절에 나와 있는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허락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인간에게 질병은 골치 아픈 것이지요. 원인과 처방이 복잡다단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그런 질병을 성령이 임하시면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은혜적 방법으로 고쳐내고 해결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10절에는 능력 행함과 예언함과 영들 분별함과 방언 말함과 방언들 통역함 등의 모습이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이것들은 모두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죤 번연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번연을 존경하는 간수가 자기가 근무하는 동안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번연이 고맙단 인사를 하고 감옥을 몰래 빠져나갔는데 얼마 안돼서 바로 돌아왔습니다. 간수가 왜 가다 말고 다시 왔느냐고 하니, 가는 중에 가지 말라는 성령님의 강력한 감동이 있어 되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번연이 다시 감방에 들어간 잠시 후 예고 없이 국왕이 교도소시찰을 오더랍니다. 간수가 ‘오, 하나님!’하고 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란 말은 바로 이런 일이 나타나게 하는 성령님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은 관념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또한 신념의 마력이나 초능력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악에 찌들고 불의에 물든 인격과 인품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품으로 바뀌도록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과 죄의 사슬에 휘둘리며 고통과 파멸 속에 있는 인생을 세상과 죄를 다스리며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행복한 인생으로 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좋지요? 네~ 아주 좋습니다.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행복을 우리 함께 누리십시다.
4.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삼일만세운동은 처음부터 누가 그렇게 기획해서 거국적 운동이 된 것이 아닙니다. 민족대표들, 특히 기독교대표들과 전국의 기독교인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짖은 기도와 믿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성령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역사하여주셨기에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기독교운동입니다. 삼일만세운동 때문에 제일 피해를 많이 본 것이 무엇인지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교회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피해를 입었고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그 뒤는 성령께서 갖가지 역사를 나타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