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선열전(八仙列傳) 8 - 선인(仙人) 장과로(張果老)
-천 년을 산 사람
장과로는 팔선(八仙) 중 한 분으로, 본명은 장과(張果)이다. <구당서>, <신당서> 등에 그의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나라 초기에 살았던 실제 인물로 보인다. 그는 불사조의 깃털과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항주(杭州) 중조산에 오랫동안 은거하였는데, 스스로 삼황오제의 요(堯)임금 시대부터 살아서 당시 천여 세가 되었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
- 농부의 아들, 신선이 되다
장과로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어린 시절에 크지 않은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아서 겨우 가족들을 부양했다. 어느 날 장과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폐허가 된 절을 보고는, 낮잠을 청하려고 들어갔다. 그가 잠시 단잠을 자고 깨어났다. 그런데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여기저기 찾다가, 아궁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가마솥을 발견했다. 그는 배고픈 나머지 당나귀와 함께 그 솥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그가 먹은 음식은 불사의 묘약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장과로와 당나귀는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선인이 된 그는 수없이 많은 시간에 가난한 이들을 돕고 선한 영향력을 베풀었다. 유명해진 장과로는 당나귀를 타고 하루에 수천만 리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 신비한 당나귀
당시 노인들은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과로가 신비한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그는 간혹 당나귀에 거꾸로 뒤돌아 앉기도 했다. 장과로는 괴짜라서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도 갑자기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발차기를 하거나 어깨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꺾는 다양한 장난기도 기록되어 있다.
그가 타는 당나귀는 하루에 만 리를 가는데, 이 당나귀는 장과로가 쉴 때 접으면 얇은 종이같이 되어 상자 안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쓰려고 할 때는 맑은 물을 내뿜으면 크고 건장한 당나귀로 변했다.
- 황제들의 부름을 사양하다
그의 명성을 듣고 당태종, 당고종 등이 그를 보려고 불렀으나, 그는 끝내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측천무후도 그를 만나보려고 수소문 끝에 사람을 보내 찾아냈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이미 죽어서 장사를 지낸 뒤였다. 분명 장사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궁산의 어느 산중에서 그가 다시 발견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는 다시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헐벗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측천무후가 다시 그를 불렀지만, 번번이 썩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측천무후는 장과로가 죽은 척한 것을 알고 분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 당 현종을 만나다
당 현종(玄宗:712~756 재위)이 또 그를 부르자, 장과로는 궁월로 가는 길에 숨이 끊어져 죽은 척했다. 그런데 사신이 이를 믿지 않고 지극정성을 다 하자, 장과로는 깨어나서 '관직을 맡기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는 부름에 응해 장안으로 올라갔다.
현종은 처음에 장과로의 모습이 폭싹 늙은 노인인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장과로가 갑자기 머리카락을 뽑고, 주먹으로 제 이를 때리며 미친 척을 하자, 현종이 물러가 쉬라고 했다. 며칠 후 다시 부르니, 장과로는 전과 달리 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에 놀란 현종이 '도(道)를 배워 신선이 되는 법'을 물었다. 하지만 장과로는 동문서답식으로 우스꽝스럽고 쓸데없는 말만 했다. 현종은 한숨을 쉬었다.
- 이적을 보이다
하루는 현종이 장과로를 불러 술을 하사했다. 장과로는 제자라는 동자(童子)를 데려왔는데, 그 어린 도사가 대작(對酌)을 하게 되었다. 장과로가 ‘술을 한 말 이상 주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현종은 시험해 보려고 한 말이 넘는 술을 동자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동자의 정수리에서 도관(道冠)이 땅에 떨어져 사라지더니, 금 술잔으로 변했다. 그 금 술잔 속에는 한 말의 술이 남아있었고, 술잔에는 ‘집현전(集賢殿) 서원(書院)’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의 전용 술그릇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장과로에게 존경심이 더욱 커진 현종은 그가 진짜 신선인지 시험해 보려고 독주를 먹이려 했다. 그는 일부러 다 마시고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잠시 사색한 후,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러자 하얗던 그의 치아들이 모두 새까맣게 변했다. 그는 시중드는 아이에게 쇠덩어리를 가져오게 해서, 치아를 일일이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다시 흰 가루약을 입에 바르자, 입 안의 이들이 모두 새로 하얗게 다시 생겨났다.
이런 기이한 일들을 본 현종은 그에게 ‘은청광록대부’의 지위와 함께 ‘통현선생(通玄先生)’이라는 호를 하사했다.
- 천 살 된 선록(仙鹿)을 살리다
하루는 현종이 사냥에서 꽃사슴을 잡아서 요리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장과로는 말하길 ‘이는 천 살이 넘은 선록(仙鹿)으로, 옛날 한무제가 사냥할 때 놓아준 것’이라며 ‘죽이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증거로 한무제가 선록을 죽이지 못하도록 왼쪽 뿔 끝에 동패(銅牌)를 걸었고, 그 후 무려 852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현종이 옛날 역사서를 확인해 보라고 명하니, 과연 그대로 정확했다.
-장과로의 내력
하루는 도사 엽법선(葉法善)을 당현종이 불러서, 장과로에 대해 물었다. 엽법선은 장과로의 내력을 말하면 천기누설죄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면서, 그때는 ‘폐하께서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를 찾아가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엽법선은 "장과로 선인이 원래 '태초의 흰 박쥐'(모든 박쥐의 원조)였다."고 말을 하고는 죽었다. 현종은 장과로를 찾아가 사죄하였다. 그러자 장과로는 죽은 엽법선의 얼굴에 물을 한 모금을 뿜어서 다시 살아나게 했다.
-장괴로의 빈 무덤
이후 장과로는 늙고 병이 들었다는 핑계로 항주(杭州)로 돌아가길 청하고는, 돌아가 중조산에 은거하였다. 현종이 다시 사자를 보내 장과로를 불렀으나, 그는 그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제자가 장과로의 장례를 중조산에서 치르고, 현종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현종은 믿을 수 없어서 사람을 시켜 장과로의 무덤을 파게 했는데, 관은 비어있었다. 현종은 장과로 무덤자리에 ‘서하관’(棲霞觀)이라는 도관을 세우고 장과로에게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장과로는 신혼부부에게는 아이를 갖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후대에 결혼한 신혼부부의 신방(新房)에는 장과로의 그림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장과로가 나귀를 타고 가는 그림에 다음과 같이 시(詩)를 썼다.
많은 사람을 들어보아도 (擧出多少人)
이 노인 같은 이는 없네. (無如這老漢)
나귀를 거꾸로 탄 게 아니라 (不是倒騎驢)
만사를 돌아보기 위함이네. (萬事回頭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