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억울하다. 태어나 꿈을 이루어가려 긴 시간 노력하며 배우고 걸어온 길이 보이는데 허망하게 떠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짙은 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가는지 묻고 싶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청춘을 바친 젊은 부부. 이제 두 아이를 카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누구의 심술인가. 6살 생일을 맞은 아들만 남긴채 생을 마감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내 가족이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이 억울하다.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지인은 애통해 했다. 함께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끝난뒤 며칠 전 생일이었던 아들이 선물로 받은 옷이 적어 바꾸려 몰을 간다는 부부와 헤어졌단다. '5분만 더 있게 잡았더라면' 그 5분. 짧은 시간이지만 그랬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신문을 보며 부모와 동생을 잃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가슴에 아프게 스며든다.
총이 문제다. 올해만 벌써 14000명이 총으로 목숨을 잃었다. 주차장에서 후리웨이에서 또 집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총기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자식같은 젊은 부부의 죽음은 충격이다. 이유도 원한도 없는데 무차별 총격에 이웃이 삶을 마감하다니 누가 마음놓고 거리를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어두운 회색 옷으로 덮힌 하늘도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바람도 분다. 쓸쓸한 날씨에 무기력해지는 나를 향해 남편이 묻는다."라구나비치에 갈래?" 오후에는 햇빛이 나온다며 재차 묻는다. 아무리 날씨가 흉흉해도 저렇게 물으면 가고 싶다는거다. 집에 있고 싶은 나는 그곳은 다음 주에 가고 헌팅톤비치나 다녀오자며 차를 탔다.
짙은 구름이 바다도 회색빛으로 칠해 놓았다. 바람이 흔들어서 일까, 파도는 거세게 몰아치며 철석거린다. 겨울이 다시 온 듯 쌀쌀한 날씨에 바닷가는 인적이 드물었다. 멍하니 바다를 보며 부부의 억울한 죽음을 떨치지 못하는데 문득 언젠가 보았던 서퍼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날도 바닷가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파티를 하는지 음악도 들리고 누군가 연설도 했다. 우리도 가까이 가보았다. 그곳에는 80여명의 서퍼들이 각자 보드를 들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꽃을 한송이씩 손에 들고 누군가를 추모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니 하와이에 사는 이다. 피어위에는 또 다른 무리가 그 사람을 그린 옷을 입고 꽃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크게 찍은 사진도 들고 있었다.
예배가 끝났다. 서퍼들은 꽃을 입에 물고 바다에 뛰어 들어 보드에 몸을 싣고 앞으로 헤쳐나갔다. 우리도 무리들을 따라 피어로 올라갔다. 바다 한 가운데 서퍼들은 큰 원을 그리며 멈췄다. 한 가운데 선 서퍼가 보드를 두드린다. 마치 인디엄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울리는 북 소리같았다. 한참을 두드리다 큰 소리로 합창하듯 외치며 보드를 하늘로 쳐들었다. 한 손으로는 물을 힘차게 치며 그들만의 의식을 치루는 그 모습은 그곳에 선 나에게도 경건하게 느껴졌다. 그들 주위로 보트가 두 대 물 기둥을 힘차게 뿜으며 함께 했다. 몇 번의 의식을 마치고 난 뒤 입에 문 꽃을 바다에 띄우며 작별을 고해 보내주고 있었다. 피어위에 있던 이도 들고있던 꽃을 바다에 던졌다. 곁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누구길래 모든 서퍼가 함께 하느냐고. 그는 오랫동안 서퍼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멘토가 되어준 하와이에 사는 목사님이란다.
처음보는 바다위의 장례식이었다. 떠나는 이도 행복했음을 안다. 좋아하는 바다위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떠나니 그 길이 외롭지 않았을것이다. 그들의 의식이 나를 압도했다. 돌아서는데 높은 파도의 물살 속에 선명하게 무지개가 뜨고 있었다.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는것 같았다.
나역시 남편에게 부탁하곤 한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가 항상 앉아 바다를 보던 그곳에 밴치를 하나 만들어주고 나는 바다에 뿌려 달라고 한다. 아이들도 엄마가 보고싶으면 그곳에 앉아 바다를 보며 잠시 삶에서 벗어나 쉬었다 가면 좋겠다. 낯선이도, 외로움에 지친 사람도 벤치에 앉아 파도속에서 들려주는 노래로 힘을 얻어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오늘은 댈라스 아울렛 주차장에서 어이없게 죽은 젊은 부부의 생이 억울하게 느껴져 울적하다. 아무 이유없이 죽음을 맞은 그들의 안식을 기도하며 바라본 바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서퍼의 행복한 이별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나 가야할 그 길, 나는 사랑하는 이들의 가는 길이 평탄하기를 기도해 본다. 적어도 아무 이유없이 억울하게 삶을 빼앗기지 않아야겠다.
바다는 오늘도 나를 품어주며 마음을 다독여준다. 어둠에 갇힌 하늘이 서서히 밝아온다. 바다도 제 빛을 찾아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래. 비록 험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이웃들이 있으니 살아갈 만 한 세상이다. 멀리 있는 소중한 아들의 하루가 주님의 축복속에서 기쁨으로 가득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아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나의 기도와 사랑이 혼자 지내는 그 아이에게 닿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파도에 실어보내며 집으로 돌아간다..
첫댓글 신문에서 기사를 보며 미국의 앞날이 불투명해짐을 느꼈어요...
그 총격 사건을 글로 쓰셨군요.
바다위의 장례식도 이례적이네요.
바다 날씨와 선생님의 마음이 잘 어우러지는 글입니다.
무고한 젊고 예쁜 가정이 무녀지며 어린 아들만 남겨져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회색빛 하늘과 또 맞닿은 회색의 바다위를 오가는 선생님의 상념에 동감을 느낍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벌어지는 총기 사고가 언제 주위에 또 발생할지 두렵습니다.
바다에서 보신 장례식은 아쉽지만 아름다운 이별, 자기가 좋아하던 일을 하며 어느정도 이루며 맞이하는 죽음은 슬퍼하기만 할 필요는 없지요. 억울한 죽음에, 내아이 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끌어안고 피투성이로 죽어간 젊은 엄아가 너무 처연합니다. 어머니날을 며칠 앞둔 이 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