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수필문학회

사랑송선주  교회 지역봉사회에서 김치 담그는 날이다. 배추 12박스 무 5박스전날 오후 배추를 사 등분으로 갈라 소금으로 절이고 몇 시간 후 한 번 뒤집어 준비했다. 산더미처럼 보이던 뻣뻣한 배추가 어느새 새 색시처럼 부드럽고 다소곳해졌다. 매 달하는 행사다.  6시 AM. 교회 새벽기도 후 차를 타고 교회 옆 건물인 김치 담그는 장소로 갔다. 이미 대여섯 명의 봉사자들이 모여 있었다. 빨간 줄무늬 장화를 신은 집사 세 명이 둘러 앉아 속이 노란 잘 절인 배추를 씻어 물이 잘 빠지게 큰 채반에 둥글게 돌려놓는다. 장화는 어느 교우가 한국에 다녀오며 사 왔단다. 배추김치 속에 들어갈 무를 써는 도마소리가 경쾌한 음악 같다. 특히 예쁜 뜨개질 모자를 쓰고 파를 일정한 크기로 얌전히 썰고 있는 집사님의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시마 양파를 끓여 우린 물로 풀을 쑤어 준비하는 분, 사과를 씻어 잘게 잘라 믹서기에 갈고 마늘 생강도 갈아 준비하는 것은 처음으로 참여한 내 몫이다. 설거지 담당자도 있다. 일상 이야기들로 화기애애하게 일하며 깔깔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옆 밭에서 싱싱한 적색 갓을 뽑아 다듬는다. 적당히 물 빠진 배추를 둘러서서 자르고, 깍두기 할 무도 깍둑깍둑 썬다. 그 도마 소리가 옛날 엄마와 언니가 마주 앉아 두드리는 다듬잇방망이 소리 같아 추억을 불러온다. 양파를 까며 눈물도 흘린다. 쑤어 둔 풀에 고춧가루를 넣어 개어 선홍색이 되면 준비한 모든 부재료를 넣고 양념을 만든다. 배추김치, 깍두기 김치를 건장한 두 장로님이 양념을 넣어 부지런히 버무리고 김치 통에 담는다. 언저리에 묻어 있는 양념을 닦아 뚜껑을 닫으면 드디어 맛있는 ‘K푸드 김치’ 완성이다. 나이 지긋한 집사님의 총지휘 아래 열심히 일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앞장서서 봉사 하던 분이 이제 연세가 많아 언제까지 더 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 희생해 온 손길이 존경스럽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절인 배추를 자르며 나온 밑동을 다듬어 양념에 버무린 일명 ‘배추꼬랑이 김치.’ 오래 보관해도 무르지 않는 다는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배추 뿌리 특유의 알큰함이 별미다.  점심을 준비한 집사님 ‘오늘의 요리’는 이제 막 만든 겉절이와 손수 주어서 만든 도토리묵과 집에서 기른 닭의 무공해 계란찜, 시원한 배추된장국이다. 물 마실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노동한 후의 따끈한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대는 아는가.  이곳에는 김치뿐만 아니라 된장 고추장 곡류 참기름 들기름 찐빵 등도 있다. 이런 식품들을 팔아 모은 이익금으로 방글라데시, 케냐 등 어려운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장학금도 보낸다. 김치 사역을 시작한 지가 14년째다. 제철 과일을 농장에서 구입하여 팔기도 한다. 여름이면 참외, 오이, 풋고추도 온다. 지난해 결산이 4만 불 이상이란다. 나도 지난가을 연시감과 단감을 사서 나누어 먹고 곶감도 만들었다.  내가 미약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못나고 뻣뻣했던 자아가 예수라는 소금에 절어져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옛날 갓 시집온 철없던 색시에게 수돗가 가득하게 쌓아둔 배추와 소금 한 통을 내놓고 절이라고 힁허케 나가시던 시어머니 뒷모습이 야속하고 막막했다. 그해 처음 해 본 김장 김치는 짭짜름하고 질겼다. 사랑으로 감싸주던 시아버지의 말씀 “올해 김치는 간간해서 좋구나.”